3. 계급투쟁과 폭력
마르크스는 계급이란 생산과정에서의 각자의 역할에 의하여 규정된다고 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노동의 분업을 통제 관찰하며 소유권의 힘으로 이득을 얻는 이들은 부르즈와지(유산자)이다. 노동력만을 소유하고 사용자에 의하여 노동의 통제를 받으며 생계유지에 필요한 임금만을 받는 이들은 무산자이다. 자산의 토지나 산업을 소유하기 때문에 자신의 노동을 스스로 통제하고 자신의 노동의 대가를 얻는 사람들은 농부와 쁘띠부르즈와지이다. 무산자와 무산자의 분리는 필연적으로 계급투쟁을 촉발한다. 유산자는 임금을 최저수준에 묶어두어 이윤을 증대시키려하고 무산자는 이윤이 줄더라도 높은 임금과 좋은 노동조건을 요구하여 두계급간의 이해관심이 충동하기 때문이다. 계급투쟁은 사실이고 이 문제에 있어서 중립은 불가능하다. 해방신학은 계급투쟁이 라틴아메리카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종교적 현실의 일부라고 보고있다. 그것은 인간이 억압자와 피억압자, 생산수단의 소유자와 노동의 결실도 빼앗기는 이들, 적대적 사회계급으로 갈라져 있기 때문이다. 이것보다 더 확실한 일은 없기 때문에 계급투쟁을 부르짖는 것이 아니라 사심을 인정할 뿐이다.
해방신학은 또한 계급투쟁에 관해서는 중립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어떤 편에 서게 되는 것이지 중간적 입장은 없다는 것이다. 계급투쟁의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그 투쟁과 그원인을 제거하자는 의지의 표현이고 자유롭고, 정의로우며 인간적인 사회를 건설하자는 의지의 표현이다. 따라서 해방신학자들은 계급투쟁의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사실을 은폐하고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동시에 지배자의 편에 가담하는것이라고 본다. 그들은 정의로운 사회의 건설에는 반드시 계급투쟁에 적극적이고 의식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함으로써 피지배자와 함께 하는 계급투쟁에의 참여를 지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지난 몇년동안 해방신학이 폭력을 옹호한다는 비판적인 글과 책자가 상당히 나타났지만, 해방신학 서적을 인용함으로써 증거를 제시하면서 해방신학의 폭력을 옹호한다는 주장을 입증한 글이나 책을 하나도 발견하지 못하였다. 대부분의 글은 아무런 증거를 제시하지도 않으면서 무책임하게 해방신학을 모함하는 가치없는 것이다. 그 법서는 자기의 주장을 인용을 통해서 입증하려고 노력한 유일한 사람이지만, 그는 세군도와 구띠에레즈의 책을 잘못 인용하고, 저자의 개념과 말을 곡해하며 부적당한 인용구를 억지로 사용함으로써 그들의 의도와 입장을 전연 그릇되게 전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려고 하였다. 그의 행동에는 학자적 신중성과 정확성이 부족하고 원문을 읽을 기회가 없고 비판적으로 생각해볼 능력이 없는 독자에 대한 존경심이 없아고 생각된다. 멕시코의 해방신학자 엘라꾸리아는 개인이나 공권력이 자행하던 폭력에 접근하는 그리스도료적 방법에는 세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첫째는 후꼬의 방법으로서 폭력에대하여 대항하여 투쟁하거나 폭력으로 맞서는것을 극단적인 경우에라도 거부하는 것이다. 이것은 극단적 평화주의적 입장이라고 말할수있다. 둘째는 루터 킹의 방법으로서, 수동적 순응에 머물지 않고, 그러나 증오와 복수심에 빠지지 않으면서 비폭력적인 직접적이며 표과적인 행동을 통해서 투쟁하는 것이다. 이것은 비폭력적인 투쟁의 접근이라 보인다. 셋째는 까밀로 또레스의 방법으로서, 우선 비폭력적 방법은 모두 이제 무용하게되고 무력만이 오직 하나의 남은 길이기 때문에 무력을 사용하는 것이다.
해방신학은 제도적 폭력이든 대항적 폭력이든 폭력을 윈칙적으로 배격한다.
그러나 가해적 폭력에 대하여는 비폭력적 투쟁을 제일 적합한 것으로서 보지만 극단적인 한계상황의 경우에 무력투쟁을 배격하지않는다. 계급투쟁과 폭력에 관해서 해방신학의 입장은 마르크스의 입장과는 다르다. 해방신학의 접근법은 가롤릭의 전통적 노선을 반목하고 있는 최근 교황청의 입장과는 일치한다고 보인다, 라칭거 추기경은 86년도 교서에서 폭력에대한 교황청의 접근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교회 교도권은 개인의 기본권과 공동선을 심대하게 손상시키는 명백하고도 장기화된 폭정을 종식시키는 최후의 수단으로서 무력투쟁을 용인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수단의 구체적인 적용은 극히 엄정한 상황분석이 이루어진 다음에야 고려할 수 있다. 사실, 지속적인 폭력기술의 발달과 폭력사용에 따르는 심각한 위험의 증대로인하여 오늘날 「소극적 저항」이라고 하는 것이 도덕원려에 더욱더 부합되는 길이며 바로 성공의 전망을 보여주고 있다.
어느누가 자행하든, 일반국민들에 대한 보복ㆍ고문이나 테러 수단 그리고 민중시위중에 사망자들이 나오도록 하는 계획적인 도발과같은 범죄는 용납될 수 없다.
Ⅲ. 결론
우리는 이글에서 해방신학의 방법론적 측면을 일부설명했으나 그 내용은 거의 다루지 않았다. 여기서 다루어진 해방신학의 내용은 폭력에 관한것에 불과하다.
해방신학이 방법론적 측면에서 교황청 라칭거 추기경의 비판을 받는것도 사실이지만 교회의 공식도 문헌의 내용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것도 부인할 수 없다. 라틴아메리카교회의 공식문헌인 1968년의 메델린문헌과 1979년의 푸에불리문헌, 1971년의 세계주교대위원회의 문헌, 1984년과 1986년의 라칭거 추기경의 교서들을 검토해보면 해방신학의 중요성과 핵심적인 신학개념들이 수용되어 사용되고 있다는것을 발견한다.
이것은 가롤릭 교회가 해방신학의 공헌을 상당히 인정한다는 증거라고 보인다. 몇가지 예를 들면 하느님과 예수는 해방자라는 개념, 사회적ㆍ정치적 해방을 포함하는 구원관, 정의와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 사랑의 개념, 정의활동을 본질적 구성요소로 가지는 복음화의개념, 가난한 이를 위한 선호적선택, 가난의 성서적 개념 등이 해방신학에서 수용되고있다. 이러한 모든점들을 고려하면 해방신학을 배격하는 사람은 다시한번 생각해보게되고 수용하려는 사람에게는 도움이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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