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벌써 오랫동안 우리들의 마음 속에 일치에의 염원을 불태워왔고 그에 따라 여러 차례 신구교 합동으로 기도회를 갖기도 하면서 일치을 위한 우리의 노력을 성심성의껏 바쳐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일치에의 길은 더욱 멀고도 험하게만 느껴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지난번 7ㆍ4 공동성명이 발표된 후 우리 민족은 지상 최대의 염원이었던 남북통일이 바로 눈앞에 다가온 것처럼 환호성을 올렸지만 불과 몇 달 되지 못해서 역시 남북통일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공동성명이 발표되기 전보다 더 큰 실의에 빠지기도 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남북통일에 대한 우리 민족의 염원이 그만큼 컸기 때문에 그에 따른 실망 역시 걷잡을 수 없이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공의회 직후에(지금도 별로 다를 바 없지만) 일부의 신자들은 일치운동에의 조짐을 보고 모든 교회들이 하루아침에 그리스도안에 하나가 되리라고 성급하게 기대했었기 때문에 오늘날 날로 어려워만가는 멀고도 험한 일치에의 가시밭길에서 벌써 지쳐 계신지도 모르겠습니다.
불과 30년간 남북으로 분단되어 서로 등을 돌리고 있던 우리 민족이 하나로 뭉친다는 것이 이렇게 어렵고도 요원한 과업임에야 수백 년 수천 년을 갈라져 각기 제 나름대로의 길을 걷고 있던 교회들이 일치한다는 것은 얼마나 더 어렵고도 고통스러운 과업이겠습니까?
그러나 일치를 회복하려는 노력이 이렇게 어렵고도 요원한 숙제임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맨 처음에 오직 하나의 교회를 세우셨으니 끝내는 모든 것이 다 오직 한 분의 주님이신 그분께로 일치되리라는 희망 속에 믿고 있습니다. 이 희망은 믿음을 더욱 굳게하고 영구히 존속시키는 힘입니다. 우리에게 희망이 없다면 우리는 벌써 일치운동이라는 어려운 과업을 불가능한 것으로 여기고 포기했을지도 모르고 제자들 모두가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요한 17ㆍ21) 청하신던 예수님의 기도 역시 전혀 무가치한 것으로 받아들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 희망은 1년 2년 혹은 20년만 잘 간직하고 있으면 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혹시 하느님께서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우리의 희망을 성취시켜 주실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우리 세대가 다 지날 때까지 성취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결코 교회 일치에 대한 우리의 희망을 버려서는 안되겠습니다.
제2차「바티깐」공의회의「일치운동에 관한 교령」은 우리가 가야 할 진로를 명백히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바리사이적인 이기주의와 배타심을 버리고 관용으로써 갈라진 형제들을 포용해야 합니다.
둘째 공의회는 참된 일치운동은 내적 회심 없이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두 말할 필요도 없겠거니와 교회 일치는 예배당을 공동으로 사용하고 한 자리에 모여서 기도회를 갖는 등 외적인 행사로써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외적인 행사에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내적인 회심에 의한 진정한 형제애입니다.
셋째 사회활동에 대한 모든 그리스도 신자들의 협력은 일치운동을 촉진하는 훌륭한 촉진제의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특히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신도들이 사회를 위해서 서로 협력할 때 예수께서 함께 계실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은 이미 우리가 전부터 관심 있게 보아오고 또 실천해온 것들입니다. 이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일치에 대한 우리의 염원을 실현하기 위하여 중단하지 않고 끈기 있게 기도와 희생을 바치는 일입니다. 실망은 금물입니다.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기도하며 우리의 생활을 끊임없이 쇄신하여 나갈 때 교회 일치라는 우리의 목표는 보다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고 우리는 확신하는 바입니다.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 속에 하느님의 사랑을 부어넣어 주셨기 때문입니다.』(로마 5ㆍ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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