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바티깐 공의회가 끝나고 20년이 되던 지난해(1985년 11월 25일)에 세계 주교대의원회의가 열렸었다. 공의회가 폐막되고 지금까지 각국에서 어떻게 공의회의 가르침을 수용했는지 또는 어떻게 실천에 옮겼는지를 점검하기 위해서였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대의원주교들은 대체로 만족의 뜻을 표명했고 소수의 저항을 제외하고는 대다수 신자들은 공의회를 열렬히 환영했다고 말했다. 극소수의 신자들은 공의회의 참 뜻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나 비록 소수의 저항이 있다 하더라고 공의회의 가르침을 계속 따를것을 거듭 촉구하고 그 실천을 촉진시키기로 했다.
그럼 한국교회는 과연 공의회를 어떻게 수용했으며 어떻게 실천했던가. 우선 한국 주교단이 교황좌에 제출한 의견서를 보면『교회의 모든 분야에 적극성과 활력을 주었다. 평신도들이 적극적으로 교회일에 참여하게 되었고 성직 만능주의가 감소되었다. 사회문제에 대한 교회의 참여가 증가되고 선교가 급진전되고 성소가 증가하였다. 수도자들과 평신도들의 신학에 대한 연구심이 높아졌다』하고 되어있다. 과연 그렇다.
도처에서 성서연구나 신학연구 세미나 등 전에는 볼 수 없었던 현상이 일어났다. 한국교회로 봐서 아주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의회의 가르침을 주관적으로 해석하고 수많은 옳지 못한 학설들을 마치 교회의 가르침인양 주장하는 사제들이 있는가 하면, 그런 교리를 배워서 입교한 대부분의 신자들
은 정통교리에 대해서 마치 낡아버려 쓰지 못할것인양 배척한다. 특히 교회법에 대한 자가해석으로 공의회후에는 모든 금기가 해소된양 설쳐댄다. 그뿐아니라 윤리문제에 대해서 양심ㆍ정의 등을 주관적으로만 해석하고 상황윤리를 정당하게 보는 경향들이 생겼다.
교회전체가 어떤 테두리를 벗어나 자유분방한 단체로 까지 보여졌다. 쉽게 신앙생활을 하려는 사제들은 언제부터인가 성무일도를 읽지않게 되었고 신자들은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야한다는 인식이 없고 주일을 마치 공휴일과 혼동하는 경향이 생겼다. 고백성사 보는 통계는 옛날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줄었다. 준법정신이 희박해지고 적당주의가 모든 교회생활에 침투되었다. 사제들이 전례규정을 어기는 것은 다반사고성사집행에 많은 남용이 있었다.
신심활동 단체가 많이 생겼으나 신심단체보다 활동단체가 더 많고 그나마 신심단체 중 몇몇 단체는 마치 샤머니즘을 본따서 만든것 같은 느낌이다. 외국에서 시작했을 때는 그렇지 않았으리라 믿는데 한국에서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본다. 예를들면 성령운동이 마치 만병통치의 마술을 부리는 단체같이 보여질 정도이다. 흔히 나도는 말과 같이『공의회 후부터는 괜찮다더라』『이제 그런것 쯤은 문제없대』하는 표현은 한국교회의 신앙생활을 말해주는 것 같다. 신앙생활을 쉽고 주관적 생각만으로 하려는 느낌을 준다. 이상하게도 보다쉽고 용이하게 하려면 마치 공의회가 그렇게 가르친양『공의회 후』란 말을 사용한다. 관면혼배는 공의회 후에는 재판도 없이 쉽게 해소된다는 말을 필자 자신도 여러번 신자들한테서 들었다. 누가 시작한 말인가 사제들의 입에선가 아니면 모든 것이 쉬워졌다고 생각하고 아무것이나『된다』고 하는 신자들 자작의 소린가.
이 많은 현상들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공의회의 가르침은 오히려『초세기 순수한 신앙으로 되돌아가라』는 것이었다. 신앙은 순수했던 옛 것을 찾아라는 것이고 생활은 현대에 적응하라는 것이 공의회의 가르침이다.
공의회의 참된 정신을 알아듣지 못하고 피상적으로만 알아들었기 때문에「현대로의 적응」이란 말을 이완되고 그릇된 양심에 비추어 주관적으로, 그리고 편리할대로 해석했다 하겠다. 사실 공의회 이전의 규범들 보다 이후에 많이 폐지되고 완화된 것이 있다. 그러나 그 외의 것은 그대로 지켜야 할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제 공의회 정신에 입각하여 새로운 교회법전도 나왔다. 그 내용을 보더라도 한국교회는 보다 더 공의회에 대해서 공부해야겠다. 첫째, 공의회 문헌의 올바른 해석을 위해 해석서나 문헌이 더 보급되어야 하겠다. 동시에 모든 신자들로 하여금 공의회에 대해 다시 배울 것을 권고하고 교회당국은 그런 것을 배울 기회를 배려해야 할 것이다. 특히 신학교나 수도단체마다 공의회 문헌에 대한 재교육을 실시해야 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주교님들의 의무다. 또 성직자들은 주교님들의 외침에 적극 호응해야 할 것이다. 사실 공의회 이후에 생기는 부작용의 많은 부분은 주교님들의 책임이다. 그 이유는 최고 책임자이기 때문이다.
교회를 다스리고 가르치고 판단하는 권한을 가진 주교들은 걱정만 할 것이 아니라 방법을 모색하고 각종 위원회를 통해 제출되는 의견을 참작해서 결정짓고 추진해야 할 것이다. 한국 주교회의 산하에도 여러가지 위원회가 있다. 그 위원회를 소집해서 활용하는분이 계시는지 모르겠다. 교회에 관한 것, 신학교에 관한 것, 신심단체에 관한 것, 일치문제, 전례문제, 교회의 사회참여문제, 선교문제, 수도자에 관한 것, 교구간의 협력문제 등 열거하자면 수없이 많은 문제들이 있다. 이런 문제들을 그냥 둘 수는 없다. 성소가 많고 입교자가 많은 것이 지도층의 훌륭한 생활의 모범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모든 성직자들은 자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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