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백성들은 처음부터 하느님께서 모든 생명의 근원이요, 주인이심을 믿었고(창세1, 11~12), 기원전 3세기부터는 신앙때문에 순교한 분들의 부활을 믿기 시작하였다(다니12, 2:Ⅱ마카7, 9). 예수시대의 사두가이파는 부활을 믿지 않았지만 바리사이파와 에세니파는 부활을 믿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여러번 예고하셨고(마르8, 30:9, 31:10, 33~34), 기적을 요구하는 유대인들에게 요나의 고사를 인용하여 부활을 시사하셨고(마태12, 40),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안에 다시 세우겠다』하셨는데 이는 당신의 몸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었음을 제자들이 주의 부활 후에 깨달았다고 한다(요한11장).
예수의 참된 구세사명을 이해하지 못한 제자들은 예수의 처형을 목격하고 크게 실망하였음을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의 입에서 들을 수 있다(루가24, 21). 예수의 빈무덤을 발견했다는 사실은 제자들이 예수의 부활을 믿기에는 너무나 빈약한 증거였다. 그것은 사람들이 몰래 시체를 가져갔다고 설명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루카24, 11~12). 무덤을 경비하던 병사들도 지진과 천사를 보고 까무라쳐서 부활의 순간을 포착하지 못하였고, 또 그리스도의 부활은 라자로의 부활처럼 물리적 부활이 아니고 초자연적 현실이기 때문에 부활사건 자체를 과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예고하신대로 부활하셨고 제자들이 그의 부활을 믿는데 도움을 주시기 위하여 여러번 제자들에게 나타나셨고(사도1, 3:13, 31), 제자들은 예수와 함께 이야기하고 먹고 보고 만졌다(요한20, 19~29, 루까 24, 29~30). 그러나 주께서는 문이 잠겨 있는 제자들의 방에 발현하심으로써 그의 부활한 몸이 현세의 물리적 몸이 아님을 알려 주셨고, 만져보지 않고서는 믿을 수 없었던 도마에게 자기를 만져보라 하시고 보지 않고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하시면서 부활에 대한 신앙을 강조하셨다(요한20, 24~29).
주님은 당신이 선택하신 증인들에게만 발현하셨고(사도2, 32:Ⅰ꼬린15, 8), 그들을 사도로 삼으시어 복음을 전하도록 파견하셨고, 사도들은 가는데마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증언선포하였다. 예수께서 인간들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희생제물로 죽으셨지만 하느님은 그를 부활시키시고 그를 통하여 인간들의 정신적 부활과 종말의 부활을 보장함으로써 우리가 구원된다는 것이 베드로와 바오로와 필립보의 설교의 골자였음을 사도행전에서 여러번 볼 수 있다. 사도들은 예수의 부활이 구약에서 약속된 구원의 실현이라고 단언한다(사도13, 26~32).
그리스도의 지상생활은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그의 부활은 성부로 말미암은 영광스러운 승리이다(사도2, 22~24:로마8, 1).
예수의 강생에서 십자가에 이르기까지의 구원행위에 대하여 하느님께서 확인도장을 찍으신 것이다. 부활로써 예수는 주님이시요, 그리스도이시며(사도2, 36)만인의 심판주이시요(사도10, 42) 하느님의 아들이심이(로마1, 4:사도13, 33)확인되었다.
이제 그분은 영광의 주님으로서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을 당신 몸에 모으시고 약속한 성령을 보내시어 교회 안에서 기적과 성령의 은사를 통하여 당신의 영광을 현양하신다.
라자로의 무덤 앞에서『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 것이요,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으리라』(요한11, 25~26)하신 말씀대로 당신의 부활을 믿는 자들에게 당신의 부활하신 생명에 참여 할 능력을 부여하셨다.
바오로는 우리가 믿고 세례를 받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해서는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영신적으로 부활하여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생명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골로2, 12:로마6, 4).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생의 보증이요 우리 신앙의 근거가 된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전한 것도 헛된 것이요, 여러분의 믿음도 헛된 것이다』(Ⅰ꼬린15, 13~14).
또 그리스도의 부활은 종말에 있을 우리의 부활에 대한 희망의 토대가 된다. 『아담으로 인하여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살게 될 것이다』 (Ⅰ꼬린15, 21~22:로마8, 11:Ⅰ데살4, 14). 이러한 확신은 이미 현세에서 영생에 대희망으로 살게해 준다(필립3, 10~11).
그리스도의 부활과 우리의 신앙의 실존적 관계는 신앙의 구체적 윤리생활의 원리가 된다. 『이제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으니 천상의 것들을 추구하시오』(골로3, 1). 신앙인의 생활은 힘겨운 노력으로 인생의 길을 터득하는 생활이 아니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그의 생명에 참여케 하는 성령의 은총으로 지탱되는 것이다. 세례로써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에 결합되어 성화되었으니 성인답게 살아야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에 근거를 두고있는 우리의 신앙은 종교를 윤리의 극대화라고 생각하는 동양의 종교관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종교관을 가지고 있다.
윤리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도리이고, 종교는 인간과 하느님 사이의 도리이기 때문에, 아무리 윤리가 고상하고 확대되어도 종교일 수가 없다. 인간이 인간에게 할 도리를 다 해도, 인간이 하느님께 해야 할 도리는 따로 남아 있는 것이다. 윤리적으로 약점이 많은 신자일지라도 윤리적으로 도덕군자라는 인정을 받는 미신자보다 훨씬 하느님께 가까이 있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인간은 하느님의 은총과 그 은총에 힘입은 신앙으로 영생을 얻는 것이지, 윤리적 덕행이나 공로로 구원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로마1, 17).
그렇다고 신앙인은 윤리를 무시하고 마구잡이로 살아도 구원된다는 말은 아니다. 참된 신앙인은 그 신앙이 가르쳐주는 윤리도 충실히 따를 것이다. 다만 참된 신앙이 윤리적 덕행의 원인이지, 덕행이 신앙의 원인일수가 없다는 말이다. 신앙이 있어야 덕행도 구원에 이바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인은 매사에 있어서 먼저 하느님의 뜻을 살피고 따른 연후에 사람들의 요구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주 그리스도 참으로 부활하셨도다. 알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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