ㅂ은 아무도 없는 곳에서 마음껏 소리라도 지르고 싶어 교외선 열차를 타고 서울을 빠져 나갔다. 가슴을 짓누르는 그 무엇을 확 터뜨리려 했는데 막상 초목이 융단처럼 깔려있는 그 고요한 자연앞에서는 숨소리조차 크게 내쉴 수가 없었다. 지지난해 그 어느날 오후 무시로 마음속에 왓다간 숱한 생각들, 뚝뚝 가을 마른가지 부러지듯 부서져 내리던 ㅂ의 마음이었다.
어머니와 들어가 살게 된 새 아버지 집. 그곳에는 거친 성격의 남매가 있었다. 어머니를 뺏긴것 같은 서러움속의 K와 사사건건 마찰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었다. ㅂ 또한 그들보다 잘하고 싶은 경쟁심과 적대감 등이 똘똘뭉쳐 어머니마저 미워지기도 하는 한편 죄책감으로 괴로와하하기도 했다. 세 성씨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무리라는 생각이 들어 헤어진 아버지께 돌아갈까 생각해 보았지만 새 엄마와 또 그 동생들 틈바구니에서 편안할것 같지도 않았다. 누가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했는가. 끝까지 책임지지도 못할 생명을 무엇때문에 잉태했는가. 아버지, 어머니, 새 아버지, 새 어머니, 이복·이부형제들 속에서 ㅂ은 그냥 폭발할 것만 같았다. 학교를 졸업하면 독립하리라. 그러나 그날은 또 얼마나 멀리 있는가. 아무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것 같은 부끄러움과 이 아픔을 모르고, 제 친부모밑에서 티없이 자라면서도 불만을 가득 가진 친구들의 사치한 고민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친구를 집에 데려올 수도 없었고, 환경조사서에도 언제나 엄마와 단둘이 사는것처럼 기재할 수 밖에 없는 은폐된 생활은 ㅂ을 더욱 암울하게 만들었다. 있는 그대로 드러낼수 없는 표피적인 만남은 ㅂ을 달팽이처럼 움츠러들게 하는 것이었다. 때때로 ㅂ의 공격성이 들어날 때 주위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표정들을 지었지만 황야에 홀로 서있는데 맹수들의 침략을 무방비상태로 받아들일 수만은 없지않느냐 하는 심정이었다. 투쟁과 도피에 의존해온 나날들이 심리적 정서적 휴식처를 찾는것은 지극히 정상이다. 복잡한 감정적 대립을 피하기 위하여 ㅂ은 학교공부에 완전히 몰두하곤 했다. 그런데 성적 나쁜 동생을 몰라라하고 네 공부만 할 수 있느냐는 새 아버지의 질책에 ㅂ은 노여움과 미움으로 견딜 수가 없었다. 『네가 누구덕에 공부하는데』하는 공치사가 불쾌하고 치사하기만 했다. 「그러면 나는 누가 돌봐주었나」과거의 대가족 생활에서는 공동체의 한계가 부모와 자녀에 제한되지 않았으므로 부모에게 일어나는 변화가 바로 어린 자녀들에게 근본적인 불안과 고독을 안겨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부부의 애정관계를 중심으로 한 현대적 소가족 속에서는 부부의 이혼이나 병 또는 불의의 사고에 의한 죽음 등이 자녀들을 갈 곳없는 고아로 만들기도 한다.
인간은 남의 도움없이 살 수 없는 존재이다. 남의 도움을 받지않고는 일어설 수도 없는 존재, 백지와 같은 상황에서 어린아이는 그와 가장 가깝고 책임있는 사람들에 의해 길러져서 정서적으로 성숙하도록 도움받을 때에 의무감 생산성 독립성 사랑이 증진된다. 결혼 1년안에 이혼하는 부부가 15%나 된다는 보고도 있었지만 한생명을 하느님으로부터 위탁받아 키워야 할 부모됨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들이 사회의 변동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일들로 떠넘겨지지 않을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간절하다. 항상 살아가고 사랑하고 미워하는 동기들이 오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