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돈 좀 빌려주세요』 O의 눈빛은 적개심이 가득했다. 친구들과 어울려 슈퍼마켓에서 캔쥬스, 과자, 쵸콜릿 등을 슬쩍 하기를 수차례 했는데 오늘따라 재수 없이 걸렸다는 것이다. 당장 그날로 돈을 가져오지 않으면 학교에 알리겠다는 주인의 위협에 두려워서라기보다 귀찮으니까 해결해야겠는데 친구들 용돈을 다 모아보았자 어림도 없다는 것이다.
『돈을 줘야 한다는 것은 알아요. 그런데 그 아저씨는 굉장히 화를 내면서 진짜 우리가 가져온 것보다 훨씬 많이 요구하잖아요. 지금까지 일부러 모른척 했대요. 글쎄, 모른척하기는 뭘 모른척해요…』 O은 추종자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걱정마, 상담실에서 해결해줄거야. 상담실이 뭐하는 곳인데, 청소년문제 해결해주라고 나라에서 월급도 주는거잖아』하면서 친구들에게 큰소리를 쳤지만 상담자 앞에서 O의 당돌하고 당당한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다.
대개 청소년들의 절도는 물건을 얻기위해서라기 보다는 절도행위 그 자체에 대한 충동적인 욕구에서 물건을 훔친다. 절도행위 이전에 긴장감이 고조되며, 행위후에 쾌감을 경험한다. 발각되더라도 충분히 보상할 경제적 능력을 가진 경우도 많다.
그러한 충동장애는 신체적, 사회문화적 요인이 있으나 O는 사랑과 인정에 대한 유아적인 소망을 지니고 있었다. 언니 오빠들과 뚝 떨어져 8살이나 아래인 O은, 늘 우연한 임신으로 어쩔 수없이 태어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조금만 눈에 비껴나도 『아휴! 저걸 내가 왜 낳았지?』하는 어머니, 가뭄에 콩나듯이 만나는 바쁜 아버지, 싸늘한 성품의 이기적인 언니, 집안의 골치덩어리라며 구박하는 오빠, 『자기네들은 얼마나 잘났기에…』식의 허전한 마음은 넉넉한 용돈으로도 채워질 수없었다.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폭력과 한탕주의, 찰라주의는 끝없이 손짓하고 있었다. 무단결석, 폭행, 금품갈취 등등…만일 검거되었더라면 처벌을 받았을 숨겨진 비행을 꽤 많이 저지른 O이지만 그 부모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모든 가족들이 O을 화풀이 대상으로 삼고 있었다. 가정의 문제를 모두 그의 탓으로 돌린다면 올바른 성장을 기대할 수는 없는 것 아니던가. 속죄양으로 희생당하고 있던 O은 자연스레 자신및 타인을 해치는 행동으로 탈출구를찾으려 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자신의 마음속에 자기를 좋아하고 지지해 주는 부모나 그밖에 어떤 사람의 像을 갖고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고 덜 고독해 한다. 소년교도소에서도 지켜주는<어머니 상>이 있는 소년수는 교도소생활을 끝까지 감내하지만 그러한 像이 없는 경우에는 뛰쳐나가고, 파괴하고 만신창이가 되는 모습을 가끔 본다.
한때 잘못을 저질렀다고해서 문제청소년으로 낙인찍어 재생의 기회를막아버린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질 것이다. O의 경우엔 과실에 대해 무조건 비난하고 힐책하기보다는 심기일전하도록 도와, O의 가능성을 인정해주고, 자신감을 고취시킬 수 있도록 긍정적인 보강을 계속 하기로했다
겹겹이 닫혀있던 O의 마음은 봄장미 첫송이 한겹한겹 열리듯이 노여움과 외로움과 비뚤어진 경쟁심을 풀더니 양심의 가책에서 해방되고 싶어했다
그날 우리는 함께 슈퍼마켓에 갔다.
그리고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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