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와 믿음의 강화
신앙은 하느님의 계시에 원천을 두고있다. 따라서 이 신앙의 은총에 협조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성서를 계속 읽고 공부해야 한다. 성서 속에서 하느님의 계시된 진리가 가장 참된 모습으로 우리에게 전수되기 때문이다.
계시헌장(21) 은 『하느님의 말씀은…신앙의 힘, 마음의 양식, 영신생활의 깨끗하고 마르지 않는 생이되는 힘과 능력을 간직하고 있다』고 가르치며 히브리서(4, 12)는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사실 교회는 언제나 성서를 성전과 더붙어 「신앙의 최고 규범」으로 여긴다.
공의회는 『성서에 대해 무식한 것은 그리스도에 대해 무식한 것』이라고 한 성 에로니모의 말씀을 되풀이 강조한다.
또한 성서를 읽는것 뿐만 아니라 성서를 읽을때 기도해야 한다고 권장한다. 성서를 읽지 않고 믿음이 강해질 수 없다.
◆여러가지 분열들
크리스찬 신앙문제에 있어서 여러가지 분열들이 있었다.
첫째 것은 동방 그리스도교의 분열이다. 소위 1054년의 동방 대이교(大離敎)로 교회와의 친교가 끊어지고 정교회가 생겨난 것이다. 둘째로 일반적으로「종교개혁」이라 불리는 사건으로 프로테스탄이 갈려나가고 이어서 영국 성공회가 분열되었다. 바로 크리스찬 「신경」의 내용이 침범된 것이다. 공의회는 『이 같은 분열은 분명 그리스도의 뜻에 위배될 뿐더러, 세상에는 걸림돌이 되고 모든 조물에게 복음을 전할 사명수행에 지장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아버지, 이 사람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라고 그리스도께서는 간절히 기도하셨다. 오늘의 모든 크리스찬들은 이 기도 말씀을 깊이 묵상해야 한다. 특히 오늘의 역사적 상황 아래 「신경」을 욀 때 이 말씀은 일치에 대한 불타는 갈망을 우리 안에 불러일으킨다.
◆「나는 하느님을 믿나이다」
하느님에 대해 이야기 하기 전에 몇가지 질문에 답할 필요가 있다.
첫째, 왜 하느님에 대해 말하는가? 또 이보다 앞서는 질문들이 있다. 하느님이 누구냐? 우리 인간조건 속에서 참되게 그분을 알 수 있는가? 하느님 앞에 우리 피조물은 누구인가? 만일 하느님께서 계신다면 왜 세상에 그토록 많은 악이 존재하는가? 왜 악인은 성공하고 의인은 짓밟히는가? 하느님의 전능과 우리의 자유와 책임과의 관계는? 이러한 질문은 인간이 하지않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하느님에 대해 말하게 된다.
둘째, 어떻게 하느님에 대해 올바로 말하느냐? 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 먼저 하느님 자신이 세상과 역사 속에 자신에 대해 남기신 진리의 표징들에 열려 있어야 한다. 즉 지성의 정직성을 첫 태도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하느님 친히 이성의 자연적 능력을 훨씬 넘는, 자신에 대한 놀라운 기록을 인간이성에 제공하신다. 이것이 소위 「계시」라는 것이며 이「계시」는 성서에 담겨 있다. 성서는 하느님이 당신 백성과의 관계를 적은 진짜 하느님의 일기다.
우리는 하느님에 대해 말하기 위해 이 하느님의 일기를 이용할 수 있다.
그 다음에 하느님의 참된 기록은 살아있는 성전을 통해 전해지는데 모든 공의회들의 결정이 근본적으로 그에 해당된다. 교회의 전례 기도문들과 성인들의 삶도 하느님에 대해 말해준다. 따라서 우리는 그저 하느님에 대한 질문만 퍼붓고 가설적ㆍ추상적 대답만 얻는게 아니다. 둘째로 요구되는 근본적 태도는 양순하고 은혜로운 태도다. 거룩하신 그분에 대해서 우리는 깊고 온전한 존경심을 가지고 흠숭 가운데 그분에 대해 말해야한다.
◆하느님은 위대한「실존자」
우리는 하느님을 믿는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자신을 으뜸존재, 위대한 「실존자」로 우리에게 알려주셨기 때문이다.
이 믿음은 이성의 추리로 뒷받침 된다. 그렇다고 하느님의 존재를 실험 과학적으로 증명하지는 못한다. 감각적 사물이 실험과학의 대상인 까닭이다. 그러나 과학자는 이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세상 속에서 그것을 능가하는「존재」를 긍정할 이유들을 발견할 수 있다.
◆원인과 목적추구
인간의 이성은 가장 기본적인 질문을 피할 수 없다. 우주를 있게하고 지탱시키는 원인이 무엇인가? 세상의 모든 역동성과 더불어 세상을 창조했고 그것을 있도록 계속 유지시키는 「존재」를 받아들일 때만 대답을 얻을 수 있다.
또한 물질의 구조 속에서 발견되는 와전한 유기성을 보고 그것을 생각해낸 더 우수한「지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생명있는 존재들의 진화는 목적을 드러낸다. 이러한 목적은 그것을 창조한 「정신」을 전제한다. 인간도 자기가 자기 운명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자기가 자기 자신을 만들지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 존재의 발전 과정에 있어서 사건의 과정을 지배하는 능력 조차 자신이 갖고 있지않다.
마지막으로 하느님의 「존재」를 인정하도록 이끌어 주는 것은 아름다움이다. 자연의 아름다움, 예술 작품속에 표현되어 있는 아름다움, 인간의 아름다운 마음과 아름다운 윤리적 행위는 모두 그 원천인 하느님의 초월적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찬미하도록 이끌어 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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