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가난을 극복하고 돈을 번 사람도 아닙니다. 크나큰 역경을 이겨내고 영광스런 성공을 한 사람도 아니예요.
한마디로 말해서 저는 이「절망은 없다」시간에 등장할 만한 자격조차 없는 여자인지도 모릅니다. 아직도 나는 그 절망의 아픔을 겪고 있다고 볼 수도 있으니까요.
여하간 세상에는 이런 얘기도 있구나 하고 그냥 참고삼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화엄사 골짜기에 동백꽃 만발하고 반야봉이 아름답게 솟아있는 지리산 기슭 구례, 그 구례의 물새 우는 강촌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4남 4녀의 세째 딸로 태어난 저는 겨우 국민학교를 졸업했을 뿐 중학교 진학은 꿈도 못 꿀 만큼 가난한 농부의 딸이었죠. 저뿐이 아니라 그곳의 처녀들은 모두 국민학교를 나오면 엄마 언니를 따라 밭에 나가 밭 매고 논에 나가 김 매고 산에 올라 나물 캐다 장날이면 읍에 내다 팔면서 시집갈 나이가 되면 가난한 농부한테 시집가곤 했습니다.
그러나 철없던 저는 그런 생활이 싫었습니다. 열다섯 살 어린 나이에 단신 서울로 와서 제품공장에 이른바「시다」로 취직을 했지요. 나는 기술자가 되려는 꿈을 안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러나 불과 2년 만에 같은 동료들이 연탄가스 중독사고로 목숨을 잃는 것을 목격하고 너무나 끔찍해서 그만 고향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저는 사촌 오빠에게 토끼장을 지어달라 부탁해 놓고 읍내를 갔습니다. 토끼라도 기르며 고향에서 곱게 자라기로 작정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토끼 새끼를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였습니다.
『어머 저게 누구지-누군데 어깨는 축 늘어지고 고개를 푹 숙인 채 힘없이 걸어가고 있지?』
시골 사람 같지는 않고 도회에서 대학이라도 다닌 듯한 그 사람의 얼굴은 몹시 창백해 보였습니다. 나는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토끼 새끼를 꼭 안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튿날 아침 나는 어제 그 청년이 숙이네 사촌 오빠이고 요양차 전주에서 온 청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숙이의 소개로 그 청년을 알게 되고 우린 숙이 오빠의 기타 반주에 맞추어 곧잘 노래를 부르며 즐거운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희야 고맙다. 우리 오빤 네가 이따금 이 강가로 나와주는 게 여간 고마운 게 아닌 모양이야. 말동무가 돼 줘서…그래 그런지 요즘 건강이 많이 회복된 것 같다.』
숙이의 말을 들은 다음 주부터 나는 그 청년의 병이 어떤 것인지는 몰라도 그분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곁에 있어주고 말동무가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결에 가을이 가고 겨울이 왔읍니다. 눈이 포근히 내린어느날 우리는 참으로 오랜만에 강가에서 만났읍니다
『희야 나와 줬군』
『오래 기다리셨나요?』
『아니 여기서 눈뭉치 하나 만들 정도로』
『그래요?』
『자 이거 받아』
나는 그분이 준 눈뭉치를 받아서 멀리 강가로 던졌습니다.
『아니? 희야』
『왜요? 왜 그런 섭섭한 얼굴을 하세요』
『나는 오래 간직해 줄 줄 알았는데』
『미안해요. 내가 다시 하나 뭉쳐볼게요』
나는 눈뭉치를 뭉쳐서 그의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그는 그 눈뭉치를 오래 가지고 있었습니다.
『내 손에서 녹는군. 오래 간직하고 싶었는데 희야가 만들어 준 것이니까. 오래』
『눈은 앞으로 또 오지 않나요? 내년에두 또 내년에두』
『글쎄 내년에도 이렇게 눈을 만질 수 있을까?』
그의 얼굴에 갑자기 어두운 그림자가 덮였습니다.
우린 강 얼음이 풀리고 봄이 올 때까지 계속 만났습니다. 그의 나이는 스물두 살 대학 2학년까지 다니다 건강이 나빠져서 큰댁에 요양 온 김석이라는 이름의 청년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나의 마음은 끝없이 그를 향한 그리움으로 부풀어갔습니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온 어느날 그가 술이 만취되어 강가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희야 미안해. 이제 우린 다신 만나서는 안 돼-나는 나쁜 놈이야 나는 나는 영 고치기 힘든 결핵환자란 말야』
『네 나도 알고 있었어요』
『뭐 알고 있었다구』
『네 그래서 만나드리고 또 도와드리고 싶었던 거예요. 우리 약속해요. 절대로 앞으로 담배와 술을 끊겠다고 약속해요』
『고마와-너무 고마와 희야』
나는 갑자기 그가 토해내는 피를 치마로 닦아주며 계속 그를 돕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어느날 숙이네 집에서 자기가 먹던 수저로 태연하게 밤을 먹는 나를 보던 석은 정말 살아보기로 결심을 한 듯 싶었습니다. 열심한 요양으로 그의 병세는 계속 호전이 되어 갔습니다.
우리는 병이 완쾌되면 결혼을 하기로 약속했습니다. 나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마침내 그는 군에 입대하게 되었습니다. 3년만 기다리라는 말을 남겨놓고 그는 벽 앞에서 나와 헤어졌었지요. 그러나 불합격이 되어 다시 돌아온 그는 자포자기 해서 문을 걸어 잠그고 유서를 쓰는 등 모든 사람들을 괴롭혔습니다. 나는 그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 모든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피 묻은 그의 입에 입을 대면서 그에게 용기를 가져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그는 퇴원을 결심했고 얼마 후 기적 같이 그의 병이 완쾌되었습니다. 6개월 만에 퇴원하고 1년 만에 병이 완쾌되었으니까 모두들 기적이라 하더군요. 그의 어머니도 찾아와 주셨고 고마와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전주에 있는 아가씨와 선을 보고 약혼을 했습니다. 석이 어머니는 진정으로 석이를 사랑한다면 석이를 단념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서로 갈 길이 서로 따로 있는 법이라고 그러면서 석이를 위해 애써준 일은 절대로 잊지 않으시겠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석이가 떠난 강가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냥 떠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앓던 병을 내게 선물로 주고 갔으니까요. 그것이 바로 3년 전. 나는 서울로 올라와 오빠의 도움으로 꾸준히 치료를 받고 지금은 완쾌되었습니다. 지금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토끼를 기르며 살고 있습니다. 내 얘기 무척 바보 같다고 느끼지 말아 주세요. 나는 곧 내 상처를 씻을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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