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문학」이란 무엇일까. 이 물음에 고정된 어떤 틀을 갖는 정의로써 대답하기는 매우 어렵다. 특히 제2차 바티깐 공의회 이후 가톨릭교회가 거의 무한히 개방된 안목으로 세상을 보게 되었으므로「가톨릭문학」이 어떤 한정적 개념을 띠기가 더욱 어렵게 되었다.
지나날에는 가톨릭 문학을 말할때 흔히 모리악, 베르나노스, 그레암 그린 등의 작품세계를 내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서구문학 속의 가톨릭 작품들만으로는 오늘의 세계에 보편적으로 소통될 가톨릭문학의 개념이 성립되기 어렵다. 오히려 일본 작가 엔도슈사꾸(遠藤周作)의「침묵」과 라틴아메리카의 사제(司祭)시인 에르네스또 까르데날의 시에 문제의식과 생동감이 있다. 그리고 한국 사회 안에서도 가톨릭문학이 촉진되어야 한다.
지구상의 각 지역과 민족들이 지니는 문화적 특성과 현실은 가톨릭의 보편성과 균형있게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성교회의 총명은 한 민족과 다른 민족 사이의 특성과 차이점을 무시하지도 과소평가하지도 않는다. 각 민족은 그 차이점을 신정한 유산으로 생각하고 어떤 희생을 바쳐서라도 그것을 지켜야할 정당성이 있다. 교회는 통일성을 원하나 그 통일성은 모든 이에게 작용하는 초자연적 사랑에 바탕을 둔 통일이다>(요한 23세,「어머니와 교사」181)<교회는 여러형태의 문화와 만날 수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교회와 여러 형태의 문화가 함께 풍요해진다.>(「사목헌장」58」
이렇게 현대 가톨리시즘은 세계 각지역 문화의 균형과 조화, <다양성 안의 일치>를 추구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는 하느님 백성 전체가 곧 교회라는 관점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 가톨릭문학의 영역적 의의를 두고 볼때, 현대세계 가톨릭 문학 안에서 분별되는 점은 20세기 전반기 서구의 가톨릭문학과 20세기 후반기 제3세계 지역의 가톨릭문학이 지니는 성격의 어떤 일면이다.
가령 그레암 그린의「사건의 핵심」「권력과 영광」등은 한 인간의 온갖 과오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자비에 의탁하는<개인적 구원>의 주제를 담고있다. 그런데 엔도 슈사꾸의「침묵」에서는 선교사 로돌리꼬 신부가 자기 때문에 거꾸로 매달려 죽어가는 세 농부를 살리기 위해 배교의 형식을 받아들인다. 그리스도라 하더라도 남들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배교까지라도 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신부가 내심으로 생각하는 바<나는 그리스돌르 결코 배반하지 않았으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형태로 그분을 사랑하고 있다>는 의식이 이 소설의 주제이다. 이것은 개인구원만이 아니고 오히려<이웃사랑>의 실천이 문제되는 치열한 문제의식의 차원이다. 이러한 경우 그레암 그린의「권력과 영광」에서는 위스키 신부가 자기 때문에 이질이 되어 죽어가는 사람들 숨어서 목격하면서도 끝내 자수를 하지 못하고 도망을 다닌다.
「침묵」의 이웃사랑 주제에 비해 까르데날의 시는 담담하고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도 단호한 혁명의 시가 되어 있다. <우리를 자유케 하소서/저들의 정당이 우리에게 자유를 안겨줄리 없나이다./ 가는 곳마다 저들의 무기가 도사려 있고/기관총과 탱크가 우리를 에워싸며/주렁주렁 훈장 찬 살인자들, 우리를 모욕하고/사교장에서 축배들며 날이면 날마다/칵테일 파티 속에 생활하는 저들/판자집에서 흐느끼는 우리를 모욕하나이다.>(까르데날,「우리를 자유케하소서」에서)오늘의 세계에서는 이러한 혁명시까지도 가톨릭문학으로 보아야하게되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서구의 깊이를 세계의 가톨릭 문학이 함께 누려야 하는점도 있다. 시의 미학에 있어서는 자끄 마리땡이 탐구한 깊이가 있다. 존재의 원천으로서 <인간본성>을 언제나 거점으로 삼고, 인간이 자기완성을 추구하는 본성적이고 자발적인 운동의 지적 섬광을 시에 있어서의<직관>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그 원천으로부터 마음으로만 듣는 음악이 일어나고, 그 전의식(前意識)비개념적 생명감이 마침내 언어를 분출시켜 종이위에 안배되는 시 창작의 과정을 무시하고, 야생적이거나 단순히 주관적인 감정으로 인정하지는 않아야 할것이다.
더우기 칼 라너에 이르러서는 시인을 사제에 맞먹는 이로 여긴다. 시의 어어는 인간의 사고(思考)가 육화된 것으로서 영혼을 지닌 존재라고 그는 말한다. 시의 언어는 채집된 곤충처럼 사전 속에 진열된 죽은 언어가 아니고, 하늘을 날으는 산 언어로서 인간들 사이의 굳어진 벽을 허물고 우리의 정신을 어둠으로부터 인간적인 밝음에로 끌어내는 일을 한다.
이러한 언어는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원초적 언어로서 늘 하느님에의 향수(響愁)를 지닌다. 그 향수를 달래어 위안을 주는 것이 바로 시이다. 이러한 시는 구원의 약속이며 희망이다. 칠혹의 밤 바다에서 찾은 먼 등대처럼.
오늘의 한국 가톨릭 문단에서 시가 암울한 회의와의 싸움이거나 관념적인 사랑의 남용인 경우는 라너의 영성신학이 밝혀낸, 성소와도 같은 시의 사명을 각성해야 할것 같다.
오늘의 한국문단에는 여러가지 문제점이 있다. 이속에서 가톨릭 신자 문학인들의 수가 상당히 증대되어 한국에서의 가톨릭 문학이 모색되고 추구될만한 형세에 있다. 가톨릭 교회는 문학 예술분야에 대해서도 하나의 원리론을 마련해 제시하고 있다. <문학 예술은 인간본연의 자질을,자신과 세계를 이해하고 완성시키는 데에 요구되는 인간의 과제와 체험을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역사와 세계 안에서 인간의 위치를 발견하고, 인간의 불행과 기쁨,필요와 능력을 밝혀주며, 인간의 보다 나은 운명을 개척하려고 노력한다. 이리하여 문학과 예술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여러 모양으로 나타나는 인간 생활을 향상시킬수 있다.>(「사목헌장」62) 문학에 대한 신뢰와 기대를 담은 이러한 원리론은 한국 가톨릭문학의 실제에 적용되어야 할것이다. 이 원리론은 신자문학인들의 피상적 소재주의 또는 관념적 존재론에의 경도를 지양케 할수 있다. 또한 일반 문단에 대해서는 순수 참여 논쟁이라든가 이데올리적 기회주의를 떠나서, 역사와 세계안에서 인간의 운명을 개척하고 향상시키는 창조적 작업 지포를 제시해줄 수도 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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