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아버지 창조주
이제부터는 신정의 첫구절「나는 하느님을 믿나이다」,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 창조주를 믿나이다」를 보고자 한다. 이 다음에 이어지는 모든 신경구절들은 하느님에 관한 맨앞의 기본진리와 유기적으로 일치되어있다. 하느님은「알파요 오메가」다. 그분은 우리 신앙의 시작이요 마칠이기도 하다. 이 신앙의 하느님은 우리 신앙의 조상이신 아브라함의 하느님이다.
그리고 그분은 무엇보다도「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로마서15, 6참조)」하느님이다. 이 아들안에서 우리 신앙의 하느님은 결정적으로 아버지로서 확인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은 위격적 하느님이다.
그분은「나」로서 우리에게 자신을「열어놓아」우리는「너」로서 그분께 향할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 하느님은 동시에 예수께서 친히 부르신「하늘과 땅의 주인(주님)(마태오11, 25)」이시다. 그분은 사실 창조주이다.
◆하느님의 본질은 존재와사랑
「나는 하느님을 믿나이다」라고 할때 무엇보다 하느님이 존재하신다는 확신을 표명한다. 하느님이 존재하신다는 진리는 인간 이성으로도 알 수 있다. 하느님은 보이지 않지만 그분의 작품들을 통해 그분께 도달할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드러내시는 분은 존재하시는 분이다. 존재하는 자만이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법이다. 하느님은「나는「내가 있다」하는 자다」라고 대답하심으로써 당신의 본질이 존재하는 것임을 밝히셨다. 이스라엘의 전통에 따르면 이름은 본질을 표현한다. 성서는「주님」「사랑」「자애로우신 분」「충실하신 분」「거룩하신 분」이라는 이름도 말하고 있다. 그러나 모세에게 하느님 친히 밝히신 이름은 이모든 이름들의 뿌리와 같다.
교황 바오로 6세는 1968년 6월 30일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 순교 1900주년에 발표한「하느님 백성의 신정」에서「하느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신대로「계신 그분」이시며 요한이 우리에게 가르치신대로「사랑」이시다.이 두 이름이야말로…하느님의 형언할 수 없는 본성을 말해준다」고했다. 이 두 이름은 가장 본질적으로 하느님에 관한 진리를 표현하고있다.
◆존재하도록 부르시는 분
「나는 내가 있다 하는자」인 하느님은「하늘과 땅의 창조주」이기도 하다.
「창조하다」라는 말은「비존재로부터 존재에로 부르는것」이다. 따라서「창조된다는 것」은 자기 자신 안에 자기 존재의 원천, 자기 존재의 근거를 갖고있지 않고 그것을「타자로부터」받는다는 뜻이다.따라서 그런 존재는「타자로부터의 존재」이다. 창조하시는 분-창조주-은 자기 자신안에,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존재를 소유하고있다.
「있다는 것」은 그분의 실체에 관계된다.그분의 본질은「있는 것」이다. 그분은 자립존재이다. 바로 이때문에 그분은 있지않을 수 없다. 그분은 있지않을 수 없다. 그분은「필연적」존재이다. 그와 달리 그분으로 부터 존재를 받는 것들, 즉 피조물들은 있지 않을 수 있다. 존재가 그들의 본질이 아니다. 그들은 우연적 존재들이다. 하느님은「자립존재」인만큼 세상에 대해서 완전히 초월적이다. 존재의 절대적 충만, 따라서 모든 완전성의 절대적 충만인 까닭이다.
◆하느님의 존재는 신앙의 신비
하느님은 세상을 창조하셨지만 세상에 대해서 완전히 초월적이다. 어떠한 표징도, 어떠한 창조된 표상도 그러한 하느님의 본질을 드러낼 수 없다. 하느님은「말로 다 할 수 없이 높으신 분」이다. 그래서「하느님의 본질」은 어떤 정의안에 가둘수 없다. 인간의 언어는 사실 하느님에 대해서「누구냐?」를 적절하게 또 끝까지 표현하기에게 충분하질 않다. 하느님에 관한 우리의 개념들과 말들은 그분이 무엇인지 보다는 오히려 그분이 무엇이 아닌지를 말하는데 도와줄 뿐이다. 만일 하느님에 대해 사고할 때「존재」의 범주로서 우리가 존재의 유비를 사용한다면 이것으로써 우리는 닮은 점보다 훨씬 더「안닮은 점」을, 비교할수 있는 점보다 훨씬 더 필조물과 비교할 수 없는 점을 드러내게 된다.
우리는 구약과 신약의 계시를 통해 하느님의 신비에 대한 더 깊고 완전한 지식에도 상당히 들어높여졌지만 하느님을 충분히 그리고 다 파악할수는 없다. 사실 그분은 본질적으로「불가해한 분」이다. 예언자들과 당신아들을 통해서 당신 자신을 계시하신 이 하느님은「숨어계신 하느님」으로 머무신다. 그분은 불가사의한 신비이다. 이것은 신앙의 신비이다.
「나는 하느님을 믿나이다」라는 신경의 첫 구절은 신앙의 첫 기본진리를 표현한다. 그것은 동시에 첫째가는 기본적 신앙의 신비이다. 하느님은 계시를 통해 알려진 분이며 동시에 불가해한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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