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 본원에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한국적 성탄 구유가 전시됐다. 조각가 김경란(마리아·52·대전 주교좌대흥동본당)씨가 제작해 12월 3일 설치한 이 구유는 내년 2월 초까지 전시될 예정이다.
이 한국적 성탄 구유 안에는, 야트막한 언덕을 마주하고 중앙에는 짚으로 지붕을 올린 구유와 아기 예수가 자리하고 있다. 초가집과 기와집, 논과 밭이 펼쳐진 구유 속의 조선 땅 곳곳에는 신앙을 전하다가 순교한 앵베르 주교, 샤스탕ㆍ모방 신부 등 10분의 성인, 두봉 주교를 비롯한 선교사들과 김대건 신부, 세상을 떠났거나 생존해 있는 사제들의 모습이 형상화돼 있다. 또한 도포자락을 날리는 선비, 물동이를 이고 가는 아낙네, 지게를 지고 가는 농사꾼 등 조선의 사회상과 교회를 보여주는 정겨운 모습들이 담겨 있다.
“아기 예수님의 구유 풍경은 강생의 신비를 일깨운다는 면에서 신앙인이자 조각가로서 늘 매력적인 주제였습니다. 구유가 자리한 풍경을 한국적으로 해석하는 실험적 작업의 일환이지요. 더욱이 한국적 구유를 외국에, 그것도 한국교회의 복음화에 큰 몫을 한 파리외방전교회 본원에 전시하게 돼 기쁩니다.”
김경란 작가가 한국적 구유를 본격적으로 시도한 것은 이미 지난 2017년의 일이다. 그해 11월 22일 서울 명동 갤러리1898에서 가로 세로 3~5m의 대형 구유 전시회를 가진 바 있다.
“프랑스에서 유학하면서, 지역마다 본당마다 독특하고 재미있는 구유들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 부러웠어요. 사실 그때부터 우리나라에서도 지역마다 특색 있는 구유들이 다양하게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그 전시를 관람한 파리외방전교회 한국지부장 임경명(Emmanuel Kermoal) 신부가 이듬해인 2018년 말에 파리 본원에 한국 성탄 구유를 전시할 것을 제안해 왔다.
63명에 달하는 구유 속 인물들은 철사 등 선재나 합판 등 면재를 이용해서 뼈대를 만들어 그 위에 일종의 플라스틱인 스컬피(sculpey) 소재로 작업해 완성했다. 예술적 영감과 교회사적 성찰, 예수 성탄의 의미 등을 두루 고려해야 했기에 기도와 묵상은 항상 전제 조건이었다.
김 작가는 파리국립미술학교(ENSB-A) 조소과를 졸업하고 파리국립1대학(팡테옹-소르본느)에서 조형예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인천가톨릭대학교에 출강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