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는 옛부터 알려진 김 고장…. 조상 대대로 완도 사람들은 약간의 어업과 겨울에 생산하는 김 양식으로 생계를 유지해오고 있었다.
그러나 생산 실적이 좋은 해는 그럭저럭 견뎠으나 급변하는 기후 뜻 아니한 재해를 당하면 속수무책으로 헐벗고 굶주려야 하는 것이 완도섬 사람들이었다.
완도 태생인 김경순은 어려서부터 이런 이웃들의 가난한 형편을 보며 언제나 가슴 속에서 떠나지 않는 생각이 있었다. 겨울에만 나는 김, 알량한 바다 생선에만 의존 말고 우리의 생계를 튼튼하게 할 무슨 방도는 없을까?
김 흉년이 들어도 우리 살림이 흔들리지 않게 할 수 있는 딴 작물은 없을까?
적령이 되어 그는 군에 입대한다. 월남에 파병된다.
「퀴논」의 한 수녀원에서 그는 탐스럽게 열린「파인애플」을 발견했다.
그때 그의 머리 속에는 이미 제주도와 통영지방에서「파인애플」생산에 성공했다는 기사가 떠올랐다.
통영에서 재배가 성공했다면 완도에서도 가능하다. 만약 완도에서「파인애플」을 생산할 수만 있다면 여름엔「파인애플」겨울에는 김, 1년 내내 생산에 종사할 수 있지 않을까!
제대하자 그는「파인애플」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다. 통영에 가서 그곳 독농가의 설명을 듣는다. 자기집 보리밭이 적지임을 확인하고 삽질을 시작한다.
그러나 대뜸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친다.
『이놈아 이 밭을 파헤치느니 차라리 이곳에다 날 묻어라!』
동리 사람들도 그를 미친 사람 취급을 한다.
그러나 그 정도로 물러서기라면 애초부터 착수도 하지 않았을 그였다. 그는 통영에서 우선 5백 주의「파인애플」묘목을 사들여서 심는다.
경험 부족 때문에 여러 가지 고비를 넘긴다.
노지 재배(露地載培)에는 지온(地溫) 건습 조절(乾濕調節) 그리고 시비(施肥)의 3요소가 적절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에는 적잖은 고초를 겪어야 했다!
여름은 그래도 괜찮았다. 가을이 되자 비닐 하우스를 설치해야 하는데 돈이 없었다!
아버지도 외면했고 동네 사람들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그는 배를 타서 그 임금으로 비닐 하우스 값을 충당할 수밖에 없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기후 조건을 조절하기 위해서는「파인애플」재배지에 붙어 있어야 하건만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아야 하는 안타까움, 풍랑으로 배는 위태로운데 그는 자기 목숨과 더불어「파인애플」의 생사에도 마음을 조여야 한다!
다행히 비닐 하우스를 설치하는 데 성공한다. 그 겨울에 거적을 덮어주고 터널 하우스를 설치하는 등「파인애플」을 갓난애 키우듯 키운다. 그런데 해동 무렵이었다. 새벽 같이 하우스에 달려가 보니 문이 열려 찬 바람이 사정 없이 하우스 안에 들이친다.
알고 보니 누군가 한 20여포기를 훔쳐간 것이었다.
그는 훔쳐간 그 소행보다 도둑 맞은「파인애플」이 시들어 버릴 생각에 가슴을 저미는 아픔을 느낀다.
『차라리 내 팔을 잘라 가지 그것을 훔쳐 가다니 살리지도 못하면서』
그는 근동을 두루 헤매었으나 끝내 찾지 못하고 자식을 유괴 살해 당한 부모의 심정으로 남은「파인애플」을 기른다.
고난은 이것뿐이 아니었다.
4월 때아니게 태풍이 몰아닥쳤다. 하우스는 만신창이가 되고 기둥마저 흔들린다. 그는「파인애플」을 살릴 오직 그 일념으로 비닐 하우스 기둥을 붙들고 늘어진다. 그리고 의식을 잃는다. 하우스 밑에 깥려버린 것이다!
이때 이 집념을 비로소 아버지는 인정한다. 그의 어머니가 입원한 아들에게 약속한다.
『안심해라 너 누워 있는 동안 내 네 동생들과 함께「파인애플」을 추위에서 지켜줄 테니까. 그 파인애플은 네 자식들이자 내 손주 새끼들인 것을…』
퇴원해 돌아가보니 파인애플은 모두 무사했다. 그 추운 꽃샘바람에도 모두 무사했다. 비닐하우스가 모두 부서졌는데도 기적적으로 싱싱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가 낡은 치마로 혹은 헌 이불을 찢어서 일일이 감싸주었던 것이었다.
그는 식물 재배에도 따뜻한 사랑이 어머니의 자애로운 사랑 같은 그런 사랑이 없으면 좋은 수확을 올릴 수 없음을 새삼 깨닫는다!
이 진리를 깨달은 그에게는 이미 난관이 없었다. 난관이 있어도 극복할 수 있는 정신이 있으면 이미 난관이 아니잖는가!
그는 지금 3천5백 주의 파인애플을 재배하는 부농으로 자라고 있고 그의 고향 완도를 사시절 돈 벌 수 있는 부유한 섬으로 만들 기틀을 잡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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