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읽고 난 편지 끝에 여백이 있기만 하면 가위로 그것을 잘라 놓으신다.
『신부님 그것을 무엇에 쓰시겠습니까?』 『야아 계산 같은 것을 할 때 필요하지요』다 쓰고 난-치약 튜브를 정성껏 모아두신다. 『신부님 그깟것 무엇에 쓰겠습니까?』 『야아 알미늄 만들기 위해 너무 고생들 합니다.』
이래서 신부님 침실은 부엉이집처럼 이것저것 수북하다. 병뚜껑을 위시해서 깡통 빈 병 약통 녹쓴 쇠붙이 등등. 어두운 저녁식사 시간에도 불 켜는 일이 없으시다. 『야아 불은 보는데 필요하지 먹는데 필요하지 않아요』 부주의로 소등을 안 한 곳이 있으면 번개 같이 끄신다. 그 철저한 절약정신에 늘 열린 입이 닫혀지지 않는다.
어쩜 그렇게 철저히 절약정신이 습성화될 수 있을까! 흉내조차 낼 수 없다.
깨끗한 수단을 유심히 살펴보면 사방에 쪼각을 이어 붙였고 잘 닦인 구두는 20년이 넘었다 한다. 수십 년 통경하신 성무일도 책은 새 책과 같다. 책장을 넘길 때 윗 모서리를 조심성 있게 넘기시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리도 좋아하시던 맥주를 큰 축일에 단 한 병 즐기실 뿐 흥청대며 낭비하신 일이 없으시다. 그러나 꼭 쓸 곳이 생기면 아무리 큰 액수라도 주저하지 않으신다. 이런 생활은 경 신부에게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내가 모시었던 13명 사제 중 9명이 외국 사제였는데 한결같이 그러했다.
그 검소ㆍ검약의 정신은 피 속에 젖어 있어 자연스럽다. 이런 것을 소위「청빈」이라 하는 것일 게다.
우리에게도「청빈」「자선」따위의 용어가 있기는 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소유욕의 절제」를 바르게 훈련 받은 바 없어 머릿속에서만 남아있는 말들 같다.
그래서 소유욕을 포기할 때의 불안이 변형된「정신적 사치」로 타락할 위험을 안고 있다. 꼬집는 말은 아니지만 나는 많은 내국인 성직자에게서 외국인 성직자가 보이는 그런 의미의 청빈을 발견할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포기하는 것과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갑자기 심기일전으로 될 수 있는 그런 것도 아닐 것 같다. 우리의 환경 및 교육 요소가 청빈의 생활을 자연스럽게 해 나갈 수 있게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의 덕성이 몸에 젖기 위해서는 많은 세대의 협력과 강박감 없는 수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청빈이 사실상의 우리네 덕행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학적 교육학적 면에서 더 연구되어진 다음의 것이어야 할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선 신성한 서원이 자기 내면 깊은 곳의 동의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자선」이란 아름다운 용어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위에서 지적했듯이 우리는 어려서부터 소유욕에 대한 충족, 포기, 절제에 잘 훈련되어 있지 않다. 거기에다 시대적 병인 황금만능의 탁한 기류에 싸여 사는 것이다. 아무도 나는 그런 탁한 것에 오염되지 않았다고 자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자선, 조건 없는 자선, 받아 행복하기만 하면 되는 그런 자선이 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주는 자에게는 우월감 혹은 묘한 정신적 응보를 요구하는 마음 같은 것이 생기게 되고 받는 자는 비굴감 혹은 열등의식에 찬 맹목 반발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나의 경우, 도움을 받을 때 부끄러움이 지나쳐 어느 때는 맹렬한 반발이 생긴다.
겸손치 못한 병일까?
14년 전 내 아우의 학비 관계로 어느 내국인 자선가(?)의 협조를 의뢰 받아 찾아간 일이 있다.
아우를 위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찾아간 그 짧은 대화중에 구토증이 치밀어올라 사양하고 급히 나와 버렸다. 답답한 심중을 전해 들으신 경 신부님, 서슴없이 학비 전액을 쥐어 주셨다. 조건 없는 담박한 태도에 콧날이 시끈했다. 우리에게 있어서는(외국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수 있겠지만) 자선의 바른 정신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친척에게서도 형제에게서도 차츰 더 찾기 힘들게 되어간다.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그 자선을 숨겨 두시오』(마태오 6ㆍ3) 수없이 읽어 머리에만 남아 있는 성귀지만 피 속에 제대로 스며들지 않아 슬프다.
(계속)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