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이 사랑의 일종이란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는 것이나 서양에 있어서 동정이 주로 슬픔을 전제하는 데 비하여 동양의 동정은 기쁨까지도 함께 하는 보다 적극적인 형태인 점이 흥미롭습니다.
사랑은 결국 일치를 지향하는 것이며 동정은 그 일치의 구체적 동정을 포함하지만 동정은 결코 사랑의 한 양식인 때문입니다.
사랑을 인간관계의 가장 고귀한 것으로 보는 나는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관계와 인간과 인간과의 보다 친밀하고 포섭적인 관계라고 보고 싶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랑의 관계는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관계로 그 원형을 삼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러한 사랑을 인간은 자기 주위에서 손쉽게 찾아볼 수 있으므로 하느님의 원형적인 사랑에 대하여 별로 개의하지 않는 버릇이 언제부터인지 생기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한편에서는 그것을 순수히 인간 중심으로 생각하게 되어 남자와 여자 형제간 부자 모자 간 또는 사제 간 등과 같은 형식으로 자아(自我)의 합일하는 형식으로 생각하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신(神)의 계시에 무조건 순종하는, 말하자면 신의 뜻에 복종하는 것으로 다소 인간 소외적인 태도까지도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것은 전자가 인간 중심적인 사랑인 데 대하여 신(神) 중심적인 사랑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인간 중심이든지 신 중심이든지 사랑을 양자의 일치로, 결합으로 합일하는 것으로 볼 때의 사랑하는 양식은 한쪽의 희생관 봉사 관용을 필수조건으로 하는 것입니다. 가령 동정적인 사랑의 양식에서 볼 수 있는 하향적 (아가페적) 사랑이나 공유적ㆍ평등적 (필리아적) 사랑의 경우에도 한쪽이 다른 쪽에 대한 희생 봉사 관용의 태도를 표현하거나 전제하지 않는다면 결코 성립될 수 없습니다.
갑돌이가 을순이를 사랑한다고 할 경우 (동정이라도 좋다) 거기에는 어느 한쪽의 희생 봉사 관용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실상 따지고 보면 이 관계는 결코 독립적인, 일방적인 희생 봉사 관용이 아닌 것은 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사랑은 거래 (기브ㆍ엔드ㆍ테이크) 라는 형식이 있는데 일방적이 아니라고 하는 말은 그런 뜻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각설하고 희생과 봉사라고 하는 것이 일치ㆍ합일ㆍ결합을 지향하는 사랑에 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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