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1 신해(辛亥)년 여름, 진산에서 모친상을 당한 진사 윤지충은 그의 외종형 권상연과 상의, 모친의 유언과 교회의 명령에 따라 유교식 전통상례를 배척하고 천주교 의식에 따라 장례를 치루었다. 그 해 11월, 윤지충과 권상연을 충효사상을 거스린 대역죄로 호남 제1성(城) 남문(壹南門) 밖 현재 전주시 전동1가 200번지에서 장렬한 순교의 월계관을 받게 됐다.
그로부터 10여년의 세월이 흐른 1801 신유(辛酉)년, 박해의 매서운 칼바람이 일어나면서 그해 9월「호남의 사도」라 일컬어지는 유항검을 비롯한 그의 아우 유관검ㆍ윤지헌(윤지충의 아우)ㆍ김유산ㆍ이우집 등 신앙선조 다섯 분이 육시(六屍)와 참수형으로 신앙의 길을 밝힌 순교의 형장, 그 위에 찬연히 세워진 전주교구 전동성당.
이같이 초대 호남지역 신앙선조들이 이곳에서 흘린 장렬한 순교의 피는 그 후 90년 만에 전동본당 공도체가 형성되는데에 큰 밑거름이 됐으며, 이 공동체가「성소의 온상」으로서 일익을 담당하는데 소중한 자양분이 되고 있다.
1889년 전주지방을 책임맡고 온 윤(尹沙勿ㆍbaudounet Xavier) 신부가 소양면 대성동(大成洞ㆍ당시지명)에서 사목 활동을 펼쳐지면서 1891년 현재 전동 성당 부지를 구입, 본당 공동체 현성의 토대가 마련된 전동본당은 사제 18명과 남녀 수도자 수백명을 배출, 전주 교구내「성소의 못자리」로서의 우치를 튼튼하게 지켜오고 있다.
특히 1800년대 말과 1900년대 초에 건립돼 신앙의 유산을 보존해오고 있는 전국 각지의 유수한 본당들 가운데 공업ㆍ산업화의 물결에 편승한 이농현상으로 공동체 구성원의 수가 줄어듦에 따라, 근래들어 성소자 배출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본당들이 상당수가 되는 현실을 감안해 볼 때 전동본당은 전북지방의 중심지인 전주시 중심가에 위치, 미래 한국교회 성소자 배출의 큰 원동력으로서의 위치를 계속 견지해 나갈 수 있는 지리적인 잇점도 가지고 있다.
현재에도 전동본당에는 9명의 신학생이 사제의 꿈을 안고 수학하고 있으며, 또한 근래들어 매년 2~3명의 본당 젊은이들이 전국 각지의 남녀 수도회에 입회하고 있다는 본당 신자들의 증언은 이러한 관점을 보다 현실적으로 증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08년 성전 건축계획을 세운 윤신부는 서울 종현성당(現 명동대성당)의 설계자 박(朴道行ㆍVictory Poisnel) 신부에게 설계를 의뢰하고 중국인 기술자를 동원하여 성전건축에 착수했다.
당시 성전건립에 본당공동체 모두가 물심양면으로 적극 동참하고, 멀리 장수지방 신자들의 자진 노력봉사에 힘입어 공사비 도난ㆍ횡령 등으로 공사가 중단되는 어려움을 당하기도 했으나, 착공 6년만인 1914년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게 됐다. 이렇게 하여 건립된 전동성당은 고딕식ㆍ로마네스트식ㆍ비잔틴식의 장점을 종합한 복합양식의 동ㆍ서양 건축미를 잘 조화시킨 건물로 1918년 사적 제288호로 지정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성전 건립의 대과업과 함께 윤신부는 일찌기 교육 사업에 눈을 돌려 서당(書堂)을 설립, 지역 사회의 문맹을 퇴치에 앞장서면서 후일 전동공동체내에서 많은 성소자가 배출될 수 있는 밑거름을 마련했다.
당시 윤신부의 교육 사업에 대한 열정은 1931년 전라도가 감목대리구로 설정될 때 감목대리직을 겸임한 본당 제5대주임 김양홍 신부가「해성학원」을 설립, 1938년「해성학교」인가를 받아 명실공히 완전한 교육기관의 면모를 갖추게 됨으로써 그 결실이 이뤄지게 됐다.
그 후 해성학교는 해방 후 1946년 당시 교구장 김현배 주교의 노력으로「성심여학원」으로 발전 했으며,이 성심여학원은 오늘날 전주 성심여자 중ㆍ고등학교의 태좌(胎座)가 됐다.
또한 본당 제14대 주임 강윤식 신부 재임시절인 1960년 2월 본당 내 강당(지금은 헐려져 없어짐)에서「해성중학교」가 문을 열고, 이어 1962년 전주 해성 공업고등학교(64년 학칙 개편으로 인문고가 됨)가 개교, 지역 사회 인재양성과 아울러 신자 청소년들의 성소계발에 중요한 토대가 이뤄지게 됐다.
한편 성소자 육성과 계발에 대한 본당 공동체의 지속적인 관심과 주일학교 교육 중에 담당수녀 및 교사들의 성소의 길에 대한 권유ㆍ격려 등이 많은 성소자를 배출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점으로 나타나고 있다.
전동본당 출신 범선배ㆍ영배 신부의 부친 범창규(63ㆍ베드로)옹은 강윤식 신부 재임 시절 때『본당에서 주일학교 어린이들을 지도했던 권수녀는 교리시간에 성소에 관한 많은 얘기를 어린이들에게 들려 주었고, 당시 전교회장 김발바라씨도 성소 후원금을 모금하여 신학생을 위한 생미사를 봉헌하는 등 본당 공동체 모두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호소했다』고 회상하면서『실제로 이러한 노력과 정성이 후일 많은 성소자를 배출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지 않았겠느냐』고 반문했다.
『사제의 부모가 되려면 우선 자기 자신부터 기도와 희생의 생활을 게을리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강조했다는 김발바라 전교회장의 한마디 권고를 미래 성소자 육성의 한 근본 원칙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한편 호남교회사 연구소를 통해 확인된 전동본당 출신 사제 명단은 다음과 같다.
고경훈(이리 창인동 주임)ㆍ김병엽(용안 주임)ㆍ이수현(이리주현동 주임)ㆍ김병운(관리국장)ㆍ안용기(정주 시기동 주임)ㆍ유장훈(군산둔율동 주임)ㆍ범선배(광주가톨릭大 교수)ㆍ이태주(서독)ㆍ이종원(정주 연지동 주임)ㆍ한기호(무주 주임)ㆍ소순형(휴양)ㆍ이순성(서학동 주임)ㆍ범영애(신태인 주임)ㆍ이상섭(상관 주임)ㆍ방의성(페루)ㆍ양경배(고산 주임)ㆍ이기순(작고)임인교(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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