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많은 신흥종교들이 민족종교로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두드러진 활동을 나타내는데 종교는 증산교계(甑山敎系) 종교들이다. 증산교는 일제시대에는 1백여개의 교파와 수백만의 신도수를 호칭할 정도로 큰위세를 떨쳤으나, 그 후에는 침체와 쇠퇴의 과정을 보여왔었다. 그러나 70년대에 들어서면서 각 교단들이 교리를 체계화하고 조직을 정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현재, 이 계통의 종단 수효는 이십만명을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주요 교단으로서는 일제시대부터 계속되어온 보천교ㆍ증산교본부ㆍ법종교ㆍ삼덕교ㆍ태극도를 비롯하여, 근래에 창립된 증산진법회ㆍ대순지리회ㆍ증산도장 등이 있다. 이중에서 대순진리회는 「평화의 댐」모금과 수재의연금 모금운동에 각각 6억원 이상을 헌금하여 사회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켰으며, 증산진법회와 증산도장은 증산교의 교리와 사상에 관한 많은 서적간행과 학술발표회 및 공개강좌를 얼어 학계의 관심을 끌고있다.
증산교는 창시자인 강일순(姜一淳, 1871~1909, 號는 甑山)의 호를 따서 부르는 명칭이다. 강일순은 일본의 침략이 본격화된 1902~1909년까지 주로 갑오농민전쟁에 참여했던 동학교도들을 대상으로 하여 전라북도 지방에서 전도하였다. 따라서 이 종교의 교리와 사상에는 동학과 유사한 점이 상당히 발견되기도 한다. 증산교에서는 강일순을 상제(上帝) ㆍ천사(天師) ㆍ천주(天主) ㆍ한울님ㆍ하느님 등으로 호칭한다. 필자가 파악한 바로는 그 호칭은 23개에 이르고 있는데 그 모두가 최고신ㆍ구세주 등의 의미를 내포한다. 얼마전에는 그의 생애가 영화화되어 상영된바 있으며, 소설로도 출판된 바 있다.
증산교의 중심교리는 「천지공사」(天地公事)이다. 천지공사란 천ㆍ지ㆍ인(天地人) 삼계(三界)를 주재하는 절대신인 강일순이 이 세상에 내려와 자신의 권능으로 인간과 신명(神明)의 모든 원한들을 해원시키고 우주의 운행질서를 뜯어고침으로써 후천선경(後天仙境)의 토대를 마련하였다는 것을 말한다. 증산교의 교리에는 한국고래의 종교적 유산들이 거의 모두 포함되어 있는것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특히 교리에서 일관되고 있는 해원상생사상(解寃相生思想)은 한국인의 종교적 심성의 근간을 이루는 해원사상을 보다 발전시킨 것으로 학계의 주목을 끌고있다. 강일순은『선천에는 상극지리(相克之理)가 인간사물을 맡았으므로 모든 인사(人事)가 도의에 어그러져서 원한이 맺히고 쌓여 삼계에 넘침에 마침내 살기가 터져나와 세상의 모든 참혹한 재앙을 일으키게 되었다』고 하면서, 새로운 사회통합의 원리로서 상생지도(相生之道)를 제시한다. 그는 모두가 더불어 사는 이상세계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인간이 신(神)보다도 고귀한 존재로 인정되는 인존사상(人尊思想)이 구현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의 인존사상은 인간존엄성을 고취시킨 평화사상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가톨릭의 입장에서 볼 때, 한가지 흥미로는 것은 증산교의 교리에서는 마테오리치 신부(17세기초 중국에서 선교활동을 하였던 이태리 출신의 예수회 신부, 『天主實義』의 저자)가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증산교본부를 비롯한 여러교단에서는 리치 신부의 위패를 모셔놓고 매일 청수(淸水)를 올리는 등 치성을 드리고 있다. 이것은 강일순이 설명한 자신의 강세(降世) 이유에서 근거한다. 그는 리치 신부는 서양으로 돌아갈 때 동양의 문명신을 거느리고 돌아갈때 동양의 문명신을 거느리고 돌아가 서양에다 지상천국을 건설하려 하였고, 그에 따라 서양사람들의 알음 귀(耳)를 열어 주었지만 그 결과 이루어진 것은 인간의 교만함과 난폭함만을 키워준 서양의 기술과 과학문명이였고 이것은 인간을 재앙에 빠뜨리는 원인이 되었는데 여기에 책임을 느낀 리치 신부가 모든 신성(神聖)들과 불타(佛陀)와 보살(菩薩)들을 거느리고 인류와 신명계의 겁액을 구천에 하소연하므로 자기가 이들을 구원하기위해 몸소 이세상에 강림하게 되었다고 설명하였다. 또한 그는 인간과 신명의 구원사업인「천지공사」를 행할때, 리치 신부에게 중요한 역할을 담당케 하였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교리에서 본다면 리치 신부는 모든 성인 중의 으뜸이고 하느님의 인류구원사업에 있어서 중요한 조력자의 한명이 되는 것이다.
증산교는 일제시대에 대단한 위세를 떨쳤다. 특히 강일순의 제자였던 차경석(車京石)은 「홈치교」또는 「차천자교」라고불리우던 교단을 만들어 자신이 동방연맹의 맹주로 등극하게 될 것이라고 선전함으로써 3ㆍ1운동직후에 흩어졌던 민심을 자기에게 끌어 들였다. 실제로, 그는 1921년 경상남도의 황석산(黃石山)에서 천제(天祭)를 올리고 국호를 「시국」(時國)이라고 선포하고 황제위(皇帝位)에 오르기도 하였다. 이교단은 한때 6백만의 신도를 호칭할 정도로 큰 세력을 가졌었지만, 그후 무리한 사업확장과 교단내의 불화로 인해 무수한 교파로 분립되고 말았다. 증산교의 여러 교단들은 최근에도 전라북도 모악산 금산사일대에 밀집하고 있다. 이 지역은 강일순이 종교활동을 전개했던 지역으로서, 상당수의 신도들은 선천시대의 승지(勝地)는 충청남도의 계룡산이었지만 후천시대의 승지는 모악산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이곳에서 세계를 통치할 정부가 수립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대부분의 큰 교단들이 서울이나 대전, 또는 본부를 옮기고 있으며, 학계와의 대화를 모색하고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선교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오늘날의 증산교단은 후천개벽만을 기다리는 소규모의 교단과, 자신들의 교리와 이념을 사회속에 구현시킴으로써 민족종교로 성장하려는 교단의 두가지 형태로 뚜렷이 구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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