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이젠 「송장과장」졸업하시고 「놀이과장」도 좀 해보세요。 쉬시면서 노인대학에 나가실 때도 됐잖습니까」
요즘들어 둘째 아들로부터 귀가 따갑도록 이런 권유를 자주 듣는다는 최선의 (64ㆍ안젤라) 할머니.
아주 바지런한 인상으로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최 할머니는 서울 신당동본당에서 세례를 받으면서 곧바로 연령회원으로 활동을 시작, 오늘까지 30여년을 오롯이 선종봉사에 바쳐온 활동파 신자이다.
이제는 시신을 대하면 산 사람을 대한 것보다 훨씬 맘이 편해진다는 최 할머니는 하느님은 사람마다 몫을 주시는 것 같다면서 활동을 시작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30년이 지났다고 말을 꺼냈다.『이상해요. 섣달 그믐날ㆍ정월초하루ㆍ8월 한가위 날이면 거르지 않고 초상이 생겨요. 할 수 있나요. 그럴땐 또 제몫이지요』
주님께 나아가는 신자들의 마지막 자리를 지켜주느라 자신은 명절한번 제대로 지낸적이 없지만 하느님이 주신 생명을 다시 되돌려드린다는 각오 하나로 초상집을 좇아다녔다고 지난날을 회고한다.
이런 할머니의 정성은 전교의 결실을 맺어 임종을 지키며 대세를 준 사람은 근 1천여명. 미신자가 대세를 받으면 대개 5~6명의 가족이 같이 입교를 하는 것이 통례이기 때문에 연령회 활동을 하며 전교를 한 사람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신당동본당 연령회부회장과 구역반장의 중책을 지고 열심히 활동한 끝에 재작년에는 한해에 32명을 전교한 공로를 인정받아 본당에서 전교메달을 수여받기도 했다.
최 할머니가 이렇게 온몸을 투신하는 각오로 선종 봉사에 발 벗고 나선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8 . 15 해방직후 남한실향민으로 고향을 잃은 인간적 슬픔과 병이란 병을 다 앓으며 죽음의 문턱까지 가본 육체적 고통을 한꺼번에 겪은 뼈아픈 체험이 있기 때문.
『각기병 신장병 심장병 거기에다 임신중독까지…병원에서 나가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혹독한 시련을 겪었읍니다. 커다란 남자고무신을 신고 온 몸이 팅팅 부은 채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39살에 영세했읍니다』
신기하게도 영세한 다음부터 몸이 낫기 시작했고 최 할머니는 곧장 선종봉사에 뛰어들어 죽음 직전에서 살아난 자신의 새 삶을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들을 위해 나눠주기 시작했다.
다부진 각오로 첫출발은 했지만 생각보다 감당하기 어려운 난관이 닥쳐왔다. 봉사하러 갔다가 돌팔매질을 당한적도 있었고 한밤중에 대세도구를 챙겨서 외인집에 대세를 주러갔다가 가족들에게 쫓겨 온 일도 셀 수 없이 많았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최 할머니가 임종봉사를 계속 할 수 있도록 디딤돌이 된 것은 「선종봉사가 곧 전교」라는 굳은 신념과 임종자에 대한 인간적인 마음 씀씀이 때문이었다.『초상이 나서 망자를 입관하기 전에 수세를 하는데 가족들이 잘 돌보지 않아 때가 많이 끼었거나 암환자 등 특별히 험한 모습의 시신을 깨끗이 치우고 나면 그렇게 마음이 가뿐해요. 마치 그 분의 생전이 죄를 작으나마 내손으로 치워드리는 마음이 듭니다』
최 할머니는 『이렇게 정성스럽게 시신을 돌봐주면 십중팔구 외인들은 반드시 입교를 한다』며 『3년 전 시아버지장례를 도와주는 언령회원들을 보고 감명을 받은 개신교 신자가족이 한꺼번에 영세한 것이 제일 뿌듯한 순간이었다』고 기억한다.
가난한 상가집에 가면 주머니를 털어줄 정도로 열심히 봉사한 덕분에 전교자로서의 뿌듯한 보람을 맘속 깊이 갖고 있지만 나이만은 어쩔 수 없는 듯 3일씩 밤을 새우고 나면 코피가 터지고 온몸이 쑤시는 통에 가족들은 『이젠 그만하시라』며 만류하는 목소리가 높다。그래도 최할머니는 『지금도 관을 내손으로 떠나보내지 않으면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면서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봉사활동을 하겠다』고 힘주어 말한다.
평양이 고향인 최선희 할머니는 8ㆍ15직후 고향을 떠난 실향가족으로 3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슬하에 2남 2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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