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의 죄 탓도 아니고 그의 부모의 죄 탓도 아닙니다. 하느님의 놀라운 일이 저 사람에게서 드러나기 위한 것입니다. 해가 있는 동안에 나를 보내신 분의 일을 우리는 해야 합니다. 이제 밤이 올 터인데 그때는 아무도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내가 세상의 빛입니다』
(요한 9장 1~5절)
1975년 5월-푸른 하늘이 너무나 아름다운 날이었다. 병실의 흰 시트는 눈이 부시고 나는 눈물로 범벅이 된 채 밀어닥친 절망에 허덕이고 있었다. 6살 난 아들이 백혈병의 진단을 받은 것이다. 현대의학으로도 정복 못할 병이라는 희귀한 병을 앓게 된 것이다. 자식을 가진 부모라면 그때의 엄마의 심정이 어떡했을지는 짐작이 갈 것이다.
『주여 나에게 무슨 죄가 있어 이런 불행을-』하면서 나의 죄업을 한탄하였고 저 어린 생명에 무슨 죄가 있어 이토록 가혹한 운명을 씌우느냐며 얼마나 많은 통탄의 눈물을 쏟았던가.
기적을 바라는 처절한 기도 속에서도 생명을 주신 주님께 끝없는 의문과 회의를 던지던 나날들.
어떻게 해서든지 찾아야 했던 내 위로의 자리를 위해 펴든 성서 속의 이 구절. 이것을 다 읽었을 때 나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했고 위로가 풀잎에 내린 이슬 같이 온몸을 적시었다. 여태껏 찾아 헤매던 해답과 위로가 거기 있었다. 그렇다. 이 아이의 투병을 맡는 것은 나를 보내신 분의 일을 내가 맡는 것이다.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내가 세상의 빛입니다』얼마나 위대한 약속입니까. 이 약속이 있는 한 어떠한 방황도 주저함도 절망도 없다. 오로지 사명만이 남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깨우침이었다.
그날로부터 용기롭게 아이의 투병에 온 정성을 기울이게 되었다.
그간 2년여의 투병생활에서 수없이 많은 은총을 준비해 주셨고 실로 기적 같은 쾌유의 희망을 심어 주셨다.
아직도 지나온 만큼의 투병 기간이 남았어도 이 성구를 외우며 넘어지지 않고 끝까지 갈 것이며 나와 같은 처지의 부모들을 위해 이 성구를 암송해줄 것이다. 주께서 이루시려는 일에 끝없이 나를 바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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