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오로도 설교로써 신자들을 가르쳤다. 특별한 필요성을 느낄 때 서간을 써보냈다. 그러므로 서간은 사도 바오로가 하신 설교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전한 말이나 써 보낸 글을 통해서 여러분에게 가르쳐준 전통을 굳게 지키십시오』(데살로니카 후서 2, 15). 『그대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얻은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나에게 들은 건전한 말뜻을 생활 원천으로 삼으시오』 (디모테오 후서 1, 13).
여기서도 보면「전한말이나-」「나에게 들은」내용은 성경에는 없는 내용들이다.
뿐만 아니라 고린토 전서 이전에 벌써 사도 바오로는 여기에 서간을 띄운 사실이 있다.
『내가 여러분에게 쓴 편지에서 음란한 사람들과 사귀지 말라고 했지만…』 (고린도 전서 5, 9) 이 내용을 보면 고린토인에게 보낸 서간이 하나 더 있었던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오늘에는 고린도 전서와 후서 밖에는 남아있지 않다. 그리고 골로사이서에 보면, 『여러분이 이 편지를 읽고 나서는 라오디게이아 교회도 읽게 나서는 라오디게이아 교회도 읽게 해주시고 또 라오디게이아 교회를 거쳐서 가는 내 편지도 꼭 읽어주십시오』(골로사이 4, 16) 란 말이 있다.
이 내용에 의하면 사도 바오로는 「라오디게이아」 교회에도 서간을 써보냈음이 확실하다. 그러나 오늘에는 그런 서간이 없으니 그것은 분명히 분실된 것이다. 그러므로 분실된 성경은 오늘까지 전해지지 않고 있다.
교회 가르침 통해 성전 드러나
성전은 오늘도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성경과 구별하기 위해서 「그 전해내려 오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 내용들은 교회가 보존하고 있는 갖가지 신경, 공의회의 문헌, 교부들의 가르침, 교회전례가 가르치는 모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성경에 명기되어 있지 않는 내용을 교회가 전통적으로 가르치는 것을 말한다.
성전의 내용을 몇 가지 예를 들어본다면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요한3, 5)
여기서 세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마는 구체적으로 세례를 어떻게 베풀 것인가에 대해선 말이 없다. 그리고 어린이들이 세례를 받을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도 성서는 침묵만 지킨다.
성전은 聖母敎理 가르쳐
이마에 물을부으면서 세례를 집행하는 세례의식은 성전에서 나온것이다. 그리고 성모님이 무염시태교리 성모승천교리 연옥에 관한 교리 등이 모두 성전에서 유력하게 가프치고 있다.
특히 일요일을 주일로지내는 교회의 관습도 성경에는 아무런 말이 없다. 이런것들은 예수님으로부터직접 교육받은 사도들의 가르침에서 연유된 것이다.
오늘 전 세계 기독교인들이 일요일을 주일로 지내는 관습은 바로 천주교회의 전래에 의한 것이다. 구약성경에는 오히려 안식일 토요일이 주님의 날이었다. 그것이 신약에 오면서 달라진 것은 곧 예수님의 부활과 성령강림의 축일이 일요일이었기에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기 휘해서 일요일을 주일로 정한 것이다.
그리고 앞서 말한바있는 성모님에 관한 가르침도 성서에 명확히 기록이 없지만 초대교회에서 사도로부터 물려받은 가르침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다.
성서 말씀을 쉽게 풀이해
그러므로 성전은 첫째로 성경에 없는 하느님의 가르침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두 번째는 성서에 기록되어있는 사실을 더욱 정확하게 명료하게 밝혀준다. 그러므로 성전은 성서해석의 바탕이 된다. 성서에 나타나는 어려운 하느님의 말씀은 성전을 통해서 쉽게 풀이 될 수 있다 . 그리고 그것을 더 풍요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곧 성전의 내용이다.
『우리들 사이에서 일어난 그 일들을 글로 엮는 데 손을 댄 사람들이 여럿 있었읍니다. 그들이 쓴 것은 처음부터 직접 눈으로 보고 말씀을 전파한 사람들이 우리에게 전해준 사실 그대로입니다』 (루가1, 1~2).
여기서 전해오는 성전은「사람들이 우리에게 전해준 사실 그대로」를 쓴 것이 성경이고 가르침 없이 그대로 입으로 전해오는 성전이 있음을 루가 성인은 명백히 밝히고 있다. 결론적으로 성경과 성전을 보존하고 있는 교회는 더욱 풍부한 하느님의 가르침과 더욱 성스러운 전례를 통해서 신도들을 가르치고 다스린다.
개신교는 聖傳 부인
개신교에서는 이런 성전을 부인한다. 성전을 인정하게 되면 가톨릭의 권위와 가톨릭의 가르침을 그대로 수용해야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톨릭에서 성경을 가지고 간 그들이 성경의 원천인 성전을 부인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모순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가르침에 권위가 없고 성서 해석상의 바탕이 되는 성전의 뿌리가 없는 교회는 다시 말해서 사도들로부터의 공식 가르침이 없는 교회는 너무나 인간적인 요소가 강하게 흐르게 되고 결국은 분열의 고배를 마셔야 되게 마련이다.
하느님이 가르침을 체계화하는 소위「신학」의 바탕은 일차로 성경이고 이차로 교회의 전통가르침인 성전이다. 그래서 성경과 성전을「계시의 원천」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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