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충만이신 하느님은 영이시며 굉장하시고 보이지 않는 분.
1. 『하느님은 영이십니다』이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시카르에 있는 야곱의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중에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 비추어서『나는 하느님을 믿나이다.』라는 신경의 첫째 진리에 대한 교리해설을 계속해봅시다. 특히 제1차 바티칸 공의회헌장「하느님의 아들」의 제1장 「모든 사물의 창조주 하느님」에 나오는 공의회의 가르침을 참고합시다.『예언자들을 시켜』(히브리1, 1)말씀하시면서 자신을 계시하신 이 하느님께서는『세상의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당신이 창조하신 세상과는 본질적으로 구별 됩니다』. 그분은 앞의 교리에서 설명된 바와 같이 영원하시며 반면에 창조된 모든 것은 우연적이며 시간에 예속됩니다.
2. 우리 신앙의 하느님께서는 영원한 분이시기 때문에 그분은 생명의 충만함이시고 그런 분으로서 볼 수 있는 세계 속에 살고 있는 모든 것과 구별됩니다. 영이신 하느님, 순수 영이신 하느님에 대해서「생명」이
라고 할 때에는 그 단어의 가장 고상한 뜻으로 이해돼야 합니다. 그래서 1차 바티칸 공의회가 가르치듯이 그분은 굉장하시고 볼 수 없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창조되고 볼 수 있는 세계와 인간생활의 지나감을 표시하는 시간의 판단기준을 따라 잴 수 있는 어떤 것도 그분 안에서 발견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물질위에 계시며 그분은 절대적으로「비물질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 존재의「영적인 본성」은 우리가 부정적인 방법에 따라 즉 비물질적 본성으로만 도달할 수 있는 것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사실 긍정적인 방법에 의해서 나자렛의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하느님은 영이시다』(요한4, 24)라고 대답하실 때 영적인 본성이 하느님 존재의 한 속성임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3. 우리가 언급하는 1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은 교회가 고백하고 선포하는 하느님에 관한 교의를 두개의 기본적인 단언으로 긍정하고 있습니다.『하느님은 극히 단순하시고 변화될 수 없는 분, 오직 영적인 본채 이십니다』그리도 또 하나는『하느님은 지성과 의지와 모든 완전성에 있어서 무한한 분이십니다』라고 했습니다.
계시에 의해 건너온 하느님 존재의 영적인 본성에 대한 교의는 「존재의 명칭」으로 이 문헌 속에 명백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영적인 본체」라는 정식(定式)속에 나타납니다. 사실「실체」라는 말은 존재철학의 언어와 관계됩니다. 이 구절로써 공의회 문헌은 본질이 창조된 세계 전체와 구별되는 하느님께서 자립 존재이실 뿐 아니라 그런 분으로서 자립영이기도 하나는 것을 표명하고자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존재는 그 본질 자체로서 절대적으로 영적입니다.
4. 영적인 본성은 지성과 자유의지를 의미합니다. 하느님은 무한대로 완전하심인 것처럼 무한대로 지성이시고 의지이시고 자유이십니다.
하느님에 관한 이러한 진리들은 우리가 성서와 성전에서 발견하는 계시의 사실들 속에 여러 차례 확인되어있습니다. 현재로서는 하느님 존재의 무한히 완전하신 지성을 강조하고 있는 성서 몇 구절만 언급하겠습니다. 그 다음에 우리는 하느님의 무한히 완전하신 자유와 의지를 다루겠습니다.
먼저 로마서에 나오는 성 바오로의 놀라운 외침이 마음에 떠오릅니다. 『오! 하느님의 풍요와 지혜와 지식은 심오합니다. 누가 그분의 판단을 헤아릴 수 있으며 그분이 하시는 일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생각을 잘 안 사람이 누구였겠습니까?』(로마서11, 33이하)사도의 말씀은 구약의 지혜서들 가운데 나오는 가르침의 강력한 메아리로 울립니다. 시편146(147, 5)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그 지혜로우심은 헤아릴 길 없어라』하느님의 엄위로우심은 그분의 지혜와 결합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위대하시고, 크게 기림직하옵시고, 그 위대하심은 측량할 길 없나이다.』. (시편144/145, 3). 『아무도 주님의 하시는 일에 밸 수도, 더할 수도 없고 아무도 주님의 신비하심(놀라우신 일들)을 알아낼 수 없다. 사람이 모두 마쳤다고 생각했을 때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면 이제는 다 알았다고 생각하면 더욱 몰라진다.』(집회서6~7). 그 다음에 그 현자는『그분은 자기가 이룬 모든 언적위에 계신 분』(집회서43, 28)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그분은 전부다』(집회서43, 27)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지혜 문학적』성서저자들이 하느님을 「그분」이라는 삼인칭으로 말하는데 비해 예언자 이사야는「나」라는 일인칭으로 넘어갑니다. 이사야는 자기를 감도하시는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도록 합니다.『하늘이 땅에서 아득하듯 나의 길은 너의 길보다 높다. 나의 생각은 너의 생각보다 높다』(이사야55, 9).
5. 하느님의「생각」과 그분의 「지식과 지혜」속에는 그분 존재의 무한한 완전성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당신의 한계 없는 지성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당신 밖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최고로 능가하십니다. 어떠한 피조물도, 특히 어떠한 인간도 이 완전성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사람이 무엇이기에 감히 하느님께 따지고 드는 겁니까? 만들어진 물건이 만든 사람한테「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소?」하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옹기장이가 진흙덩이의 주인이 아닙니까?』라고 성 바오로는 묻습니다.(로마서9, 20)이러한 사고방식과 표현방식은 구약에서 물려받은 것입니다. 비슷한 질문과 대답이 이사야(29, 15:45, 9~11참조)와 욥서(2, 9~10:1, 21참조)에 나옵니다.
이번에는 신명기가 이렇게 선포합니다. 『너희는 우리 하느님께 영광을 돌려라! 하느님은 반석이시니 그 하시는 일이 완전하시고 가시는 길은 곧바르시다. 거짓이 없고 미쁘신 신이어라 다만 올바르고 곧기만 하시다』(신명기32, 3~4). 하느님의 무한하신 완전성을 가리는 것은 그분의 지혜를 고백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분의 정의와 온전하심 즉 그분의 윤리적 완전성을 고백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6. 산상설교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도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마태오5, 48)고 촉구하셨습니다. 이러한 촉구는 하느님은 완전하시다. 그분은 다음에『무한히 완전하시다』(1차 바티칸 DS3001)는 것을 고백하라는 초대입니다. 하느님의 무한한 완전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 속에 끊임없이 나옵니다.『하느님은 영이시다…진실하게 예배하는 사람들은 영과 진리 안에 아버지를 예배해야 한다…』(요한4, 23~24)라고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신 예수께서는『선하신 선
생님…』이라고 말하면서 당신께 온 청년에게『왜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선하신 분은 오직 하느님뿐이시다…』(마르꼬10, 17~18)라고 대답하셨을 때 의미심장한 방법으로 자신을 표현하셨던 것입니다.
7. 하느님만이 선하시고 그분은 선의 무한한 완전성을 소유하고 계십니다. 하느님은 모든 선의 충만함이십니다. 그래서 그분이 존재의 온갖 충만으로「존재 하시다」이듯이 마찬가지로 그분은 선의 온갖 충만하심
으로「선하시다」입니다. 그분의 지성과 지능의 무한한 완전성이 그분의 아심과 그분의 있으심이 같은 것으로 그분의 지성에 의해 알려져 있는 그 만큼 그 안에 자립하는, 진리의 절대적 충만과 상응하듯이 마찬가지로 이선의 충만은 그분 의지의 무한한 완전성에 상응합니다. 하느님은 무한히 완전한 영이시고 그 영을 통해 그분을 알게 된 사람들이 그분의 참된 예배자들이 됩니다. 그들은 영과 진리 안에 그분을 예배합니다.
진리의 절대적 충만함이신 하느님, 이 무한하신 선은…『그분의 흘러넘침입니다(est diffusivum su-i)』. 이것으로써도 하느님께서는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계시는 자신을 진리로서 건네주시는 동일한 선이십니다.
자신을 계시하신 이 하느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건네주고 싶어, 표현할 수도 없는 최상의 방법으로, 자기 자신을 주고 싶어 하십니다! 이분이 계약과 은총의 하느님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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