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1842년에 동양에 처음으로 사진기가 들어와 사용됐다는 사실로 알고 남경조약사진도 구하여 작품을 마무리 지었다.
1972년 4월 한국 가톨릭 미술협회 61회 전시에 출품된 화제(畵題)「용덕(勇德)」(인천출신 장사 박순집ㆍ베드로의 성화)은 오기선 신부님께서 사료를 제공하셨다. 더욱이 16세에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원에 입회하여 90여세에 선종하신 박순집의 딸 박 사베리오 수녀님(7873~1960)의 생생한 기록과 함께, 기해교난 때 한강 새남터 형장에서 군문 효수된 앵베르 범 주교, 모방 나 신부, 샤스땡 정 신부 유해를 무인(武人)박순집이 목숨을 걸고 이장하는 광경은 감동적이었다.
◆동서(東西)간의 천주교 전래에 있어서의 느낀 점
조선에 전파된 천주교는 2백년의 역사가 더 되는 것 같다.
13세기 몽고의 세계제패로 동서간의 무역로가 터였을 당시 교황 이노첸시오 4세와 불란서 국왕 루이 9세는 몽고「바투」의 아들「살타크」가 천주교에 입교한 사실을 축하하기 위해 몽고에 사신을 파견했다. 또 1271년에는 교황 그레고리오 10세가 원(元)나라에 마르코폴로 부자(父子)를 파견했다.
1295년 마르코폴로의「동방견문록」이 발표되었으며 이 책에는 중국(中國)동쪽에 황금의 나라(고려)가 있다는 기록도 있어 원(元)나라와 고려의 문화교류가 빈번히 이루어졌던 당시의 상황으로 봐서는 종교문화도 이미 암암리에 고려의 상류사회에 수입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여겨진다.
한편 1659년에는 프란치스꼬 사베리오의 영향으로 일본(日本)에서 천주교가 번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덕천가강이 17세기 초 금교 정책을 시행한 후 일본(日本)의 천주교는 모진 박해를 받고 지하로 숨어들었다.
당시 임진왜란으로 조선인 포로가 일본(日本)에 많이 있었는데 강화교섭으로 그들 중 일부가 귀국하였다. 귀국한 사람 중에는 천주교 신자가 적지 않아 천주교 관련 서적을 소지하고 들어온 경우도 있다고 후세의 사가(史家)들은 전한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기초로 할 때 15ㆍ16세기에 이미 조선에 천주교신자가 존재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임진왜란 때 소서행장휘하에 세스페데스 신부가 종군하여 활동한 예와 대륙과 일본(日本)사이에 놓인 조선으로 예수회 소속 신부들이 복음전파를 계획하고 조선에 입국코자 무진 애를 쓴 기록도 나타난다.
1636년 병자호란의 비극으로 인조가 삼전도에서 청태종 앞에 굴복하였다.
이어 왕세자 소현세자ㆍ봉림대군 등이 인질로 청나라로 잡혀갔다. 세자가 북경에 억류되어 있을 때 예수회소속 신부(神父) 아담ㆍ샬과 친교를 맺어 많은 성물과 성화를 얻어 1644년 귀국시 가져왔다. 이러한 천주교서적과 성물 등이 국내의 학자들로 하여금「서학」을 알게 한 동기가 되며 또한 동지사와 같은 사신 왕래도 학자들과 서민층에 이르기까지 암암리에 천주교를 신봉하게 된 동기가 되는 듯하다. 한편 나름대로 학자들은 서학연구를 하게 되었다.
다 아는 사실이나 조선의 천주교는 신자와 신앙이 앞서 터전을 마련하였고 성직자는 나중에 들어온 것이 다른 나라의 천주교 전래와 다른 점이다.
당시 서학(천주교)이 조선학자층에 소개되어 연구의 진전이 보여졌을 때는 주자 학파적인 유교에 싫증을 느끼던 때였다. 이수광 (1562~1628)은 마테오리치의 「천주실의」를 소개하였고 유몽인은「천주실의논평」과「어우야담」을 저술했다. 유몽인은 어우야담에서 허균 (1569~1618) 이 교인임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단편적인 사실만으로 천주교의 전래가 2백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허균 등 교회창설이전의 신자들에 관하여는 고증할 사료가 없기 때문이다.
◆천주교 전래이전의 성화작품
제1도안~1275년 마르코폴로 동방견문기.
제2도안~1552년 성 프란치스꼬 사베리오와 명(明)나라.
제3도안~1581년 마테오리치신부와 북경성당.
제4도안~1593년 세스페데스신부와 임진왜란.
제5도안~1605년 일본(日本)에서 돌아온 7천여 명의 조선인 포로들.
제6도안~1595년 소서행장과 오다 쥴리아.
제7도안~1595년 임진왜란과 귀무덤.
제8도안~1598년 일본(日本) 장기(長崎)에서의 조선인 포로의 매매.
제9도안~일본(日本)의 조선인교우포로의 십자가상의 화형.
이상의 성화 1백26점을 내고 느낀 것을 기록해 보았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1백3위 성인의 실황으로 성화를 정리. 발표하고 싶은 야망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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