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은 계명도 교회법도 많이 물러졌다』교구들 특히 영세한 지 오래된 교우들을 만날 때 자주 듣게 되는 소리이다. 정말 그렇까? 그렇지 않다고 아무리 설득해 봐야 수긍하려 들지 않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법의 참정신 없이 법 세칙 준수만을 익혀왔기 때문이다. 즉 아직도 신자 대중은 광명이 임하지 않은 구약시대를 살며 로마서에서 외치는 사도 바오로의 음성(주님의 음성이기도 하지만)을 들을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법에 묶여 있는「죄의 상태」(로마 3ㆍ19)에서 법을 초극한「은총의 상태」(로마 6ㆍ14)에로의 도약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지나친 말일까. 법 준수의 참 마음을 선행 교육하지 못한 상황에서 법 세칙의 완화는 위험한 결과를 만든다.
「토요 특전미사」가 한가한 사람들의 주일 기피로 이용되고「합동고백」은 고백성사 회의론으로「주일 파공 특별관면」은 농번기 미사 불참을 당연한 것으로 만들었다. 또 관면혼인이 교우혼인과 똑같은 대접을 받게 되자 교우끼리의 혼인이 뜻을 잃게 되어 자녀 종교 교육의 중대한 의무를 간과하게 된다. 그뿐인가. 교구이면 당연히 하였던 기도생활이 간소화에만 치우쳐「의무기도하기운동」이란 별난 운동을 생기게 한다. 이런 예는 너무 많아 열거할 기분이 아니다.
법 세칙의 완화는 법을 물러지게 하려 함이 아니라 더 성숙된 우리의 의지를 요구함에 있는 것이 아닌가? 법 세칙을 물결치며 약삭빠르게 살아가는 좀생원의 생활 태도에서 기쁨과 긍지를 갖고 살아가는 책임성 있는 용사로 지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은총의 사람」이 되도록 재교육이 절실히 요구된다. 17년 전 봄비 나리는 날. 찬 시냇물을 건너 U공소에 갔다. 부활 판공성사를 주기 위해 신부님 모시고 미사 짐(미사 드릴 때 필요한 일체의 성기와 성물이 든 짐) 지고 봄비 맞으며 갔다. 도착하니 미리 기다리던 교우들이 반긴다. 모두 공소에 들어가 함께 장궤하고 사제를 보내주심과 그간의 공소 평안을 감사하는 감사기도를 드리고 나서 이들을 위한 사제의 강복이 있었다.
모두의 얼굴에는 명절 같은 기쁨이 있고 부산한 교회의 분위기에 싫지 않은 설레임이 마을 전체로 번진다.
그런데 그날 밤. 저녁기도가 끝나고 모두 돌아갔는데 맹랑한 일이 벌어졌다.
처음 보는 청년이 화가 난 얼굴로 쉬고 있는 방에 불쑥 들어와『신부님 저는 냉담하고 있는 베드로입니다. 서울 가서 있었기 때문에 처음 뵙습니다』. 소개하고 나서『어제 고향에 모처럼 왔는데 오늘 부모님이 성당에 다녀오셔서는 저를 몹시 꾸중하시며 실망하고 계십니다. 제가 관면 없이 외교인과 혼인하였다 하여 제 부모의 성사길을 막으셨다고 말입니다.』
여기까지 말하고서 더욱 상기된 얼굴로『사회법에도 자식의 잘못을 그 부모에게 씌우지 않습니다. 그런데 박애정신을 표방한다는 교회가 그 자식의 잘못을 부모에게 씌운다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닙니까?』제법 조리 있게 보이는 공박이다.
갑작스런 반발(그때만 해도 교우들은 사제에게 정면으로 공박하는 일이 잘 없었다)이라 신부님께서 주저하고 계신 동안 성급하게 가로질러 말했다.『베드로씨, 베드로란 당신의 세례명은 어떻게 얻으신 것입니까? 당신이 아직 철이 없을 때 당신의 부모님이 당신을 신앙인으로 교육시키겠다는 서약 아래 교회는 당신에게 베드로란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런데 당신의 부모님은 그 의무를 다하지 못하셨습니다. 그리고 사회법에 자식의 잘못을 그 부모에게 씌우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그것은 형법상의 문제일 뿐 자식의 잘못이 그 부모의 수치로 변하는 도덕상의 죄책은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단체이든지 단체법이 필요한 듯이 하느님의 단체인 교회에도 교회법이 꼭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교우에게 교회법 준수를 명하고 이를 준수치 않을 때 벌을 줌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
그는 끄덕이며 나갔다. 일 년 후 그의 부인이 영세하였고 같은 날 그들은 하느님의 제단 앞에서 혼인성사를 받았다. 비로소 조당이 풀린 부모의 눈에 기쁨의 이슬이 빛났고 내게 가까이 온 그는 내 손을 힘주어 잡았다.
옛날에는 교우들에게 법은 있었으나 법정신이 없었고 지금은 법도 정신도 없어지는 것 같아 걱정이다.
(계속)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