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에는 일치의 사랑에서 빼놓을 수 없는「만남」에 대하여 한마디 해야 하겠습니다. 어떤 일치나 합일도 우선은 만남의 계기가 마련되지 않고는 성립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나와 너의 관계나 나와 그의 관계에서 성립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만남」의 근본적인 관계에서 성립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 없는 너가 무의미하며 너 없는 나가 무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언제나「나」는「너」이거나「그」또는「그들」을 전제로 해서만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너」「그」「그들」도「나」없는 곳에서는 설립되지 않는 것이지요.
바로 만남이 없이는 나도 너도 있을 수 없는 것을 말합니다.
부버(MㆍBuber)는 이세상에 나타나는 근원어(根源語)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나-너」와「나-그것」의 양식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나」안에는 근본적으로 두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데 하나는「나-너」에 있어서「나」이고 다른 하나는「나-그것」에 있어서「나」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너」라고 할 때도 그 안에는「나」가 동시에 내포되어 있고「그것」이라고 할 때도「나-그것」의「나」가 포함되어 있는 양식으로써만 이해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관계의 세계로 규정하게 되고 이 관계의 세계는 세 가지 유형의 공동생활 양식으로 나타난다고 보게 됩니다. 첫째는 자연과의 공동 생활인데 여기에서는 관계의 세계가 암흑 속에 쌓여 있어 우리가 자연 생물들을 향하여「여보! 생물들」혹은「당신네 생물들!」이라고 아무리 소리 소리쳐 봤자 아무런 대꾸도 없습니다. 그러나 대꾸가 없다고 이 초기 단계의 자연과의 관계는 피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둘째는 타인과의 공동생활을 말하는데 이 관계의 세계는 활짝 열려진 관계를 말하는데 말을 가지고 대화적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 단계에서 나는 너를 부여해주고 너는 다시 나를 부여해주게 되는 것입니다.
세째 영적(靈的) 존재의 공동 생활인데 이 관계의 세계는 구름 위에 가리워져 있습니다. 그러나 말이 없이도 말 이상의 의미를 알게 되고 부르지 못하고 말하지 않지만 부르고 말하는 것보담 더 큰 외침을 들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영혼과 영혼이 맞부딪힘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 단계에 이르러 인간은 가장 순수한 형태의 만남에 직면하게 되며 스스로 희열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불교에 있어서 면벽수도(面壁修道)나 선(禪)이라고 하는 경지는 이것을 목적하는 것이며 기독교에 있어서 묵상이나 통회는 바로 이런 만남을 지향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나와 너가 하나가 됨이며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을 위하여 헤어지는 수도 없는 바 아니나 그 헤어짐은 더 높은 차원에서 더 굳은 하나를 약속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둘이 아니고 하나임은 이런 이유에서인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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