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동안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고 생활화하기 위해 많은 교구에서는 사순절 특별강론이 개최되고 있다. 이에 본보는 사순절 매주 토요일 오후 5시 명동대성당에서 열리고 있는 서울대교구의「그리스도의 고난」을 대주제로 한 사순절 특별강론(연사=정일우 신부ㆍ예수회)을 매번 요약하여 게재한다. 이번 강연초는 사순절 동안의 신앙생활에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주리라 믿는다. (편집자註)
매년 맞이하는 사순절이지만 오늘 우리는 금년 사순절이 특별한 은총의 기간이 되도록 사순절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고난은 무엇인가? 고난의 참의미는 무엇인가? 를 함께 생각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겠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알기 위해 우리는 우선 그리스도가 무엇 때문에 사형을 당하셨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당시 유대교 지도자 즉 대제관들과 율법학자 바리세이들은 예수님이 당신 자신을 메시아라고 했기 때문에 빌라도에게 넘겨준 것은 아니다. 그들은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으나 자기들이 원하는 메시아가 아니었으므로 예수님을 죽이려 했던 것이다.
그들은 죄의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 즉 창녀ㆍ세리ㆍ가난한 자ㆍ죄인들이 자기들보다 먼저 천국에 갈 것이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 때문에 예수님을 미워했다. 그들이 용납할 수 없었던 또 하나의 사실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당신과 동등하다고 하신 점이었고 이 점이 유태 지도자들과 예수님의 근본 쟁점이었다. 그들은 모세법(율법)을 숭배하는 자들이었고 하느님께서 모세법을 초월하지 않는다고 굳게 믿었다. 법률보다 더 크고 무한한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보여 주시고 가르치셨지만 그들은 믿지 않았고 이것은 현재 우리도 믿기 어려워하는 점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가장 근본적 이유는 그분의 생활방식 사고방식 때문이었으며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예수님의 고난에 제일 중요한 부분은 고통이 아니다. 만일 구세사업에서 고통이 핵심이었다면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고통과 죽음을 숭배하는 자가 되고 말 것이다. 역사상 십자가상에서 고통스런 죽음을 당한 사람들은 수없이 많았지만 그들의 죽음이 예수님의 죽음과 같을 수가 없기 때문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고통이 아니라 고통을 받으시는 순간 하느님 아버지, 온인류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인 것이다. 즉 사랑 때문에 구원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완전한 대답은 아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했기 때문에 자기의 목숨을 바친 사람도 역사상 매우 많다. 김대건 신부, 전태일씨(동료 근로자들의 근로 개선을 위해 분신 자살)의 죽음도 사랑으로 목숨을 바친 좋은 실례이다. 예수님의 고난의 핵심은 새로운 생명, 부활이다.
새로운 생명, 부활로 가는 길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고통을 통해 구원된 것이다. 만일 예수님이 고난 없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였다면 우리들이 따라갈 길도 못 될 뿐더러 하느님의 신비를 계시하는 길도 될 수 없다. 이렇듯 고난은 바로 부활로 넘어가는 길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사순절은 무엇인가? 무엇을 해야 하는 기간인가? 다시 생각해 봐야 하겠다. 사순절은 성찰하는 기간이다. 양심을 성찰하기보다 고통 속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앞에 우리 삶을 평가받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고통을 겪고 있다면 그 고통은 어디서 온 것인가? 진리와 정의를 증거하고 있기 때문에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려고 하기 때문에 오는 고통인가? 그런 고통이라면 굉장히 값진 것이다.
이 시간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생각ㆍ가치관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이 사신 방식대로 살고 있는지, 부활로 가는 길이 고난이라는 진리를 깨닫고 믿는 것인지 예수님 앞에 깊이 반성해야 하겠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과 현재의 우리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돌이켜봐야 하겠다.『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이것은 예수님이 그리스도교도들을 박해하던 사울에게 하신 말씀이다. 이 말씀에는 ①예수님께서 당신을 따르던 제자들과 하나가 되셨고 ②사울의 박해는 당신에게 한 박해이며 ③당신의 고난은 이 세상 끝날 때까지 계속되리라는 뜻이 포함돼 있다. 선과 악, 빛과 어두움의 싸움은 현재 또 미래에도 계속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고통이 예수님의 고난과 관계가 있고 그 고통으로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선과 악, 빛과 어두움의 싸움에서 고통을 당할 때만이 에수님의 고난에 참여한다는 의식이 중요한 것이다. 우간다의 성공회 대주교, 로디지아의 선교사들 킹 목사 김대건 신부 등은 모두 진리 때문에 빛과 어둠의 싸움 속에서 죽어간 증거자들이다. 그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선과 악의 싸움에 참여한 훌륭한 본보기다. 우리는 가난 때문에 전쟁 때문에 그 밖의 여러 가지 이유로 받는 고통을 운명으로 돌리고 체념해서는 안 된다. 말없이 당하시던 예수님의 고난을 수동적인 것, 체념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오류를 범해서는 더욱이 안 된다. 예수님의 생애가 고난을 이기고 그 고난을 사랑으로 완성하고 끝내는 부활의 길에 도달하신 영광스런 생애를 닮아 현실에서 부딪히는 고통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는 깊고 높은 진리를 믿고 따르는 것이 현재 우리가 가야 할 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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