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이 막바지에 이른 1945년 초 무렵 동부전선에 내가 배속돼있던 독일공군 지상부대는 날이 갈수록 괴멸상태가 돼가고 있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우리부대 병사들은 일반보병으로 배속돼 최전선에서 창호를 파서 지키는 일을 해야만 했다. 우리가 동프로이센지방 어느 숲의 가장자리 최전방에서 러시아군과 대치해 그들의 공격을 저지하고 있었을 때였다.
그때 나는 참호 속에서도 운 좋게 살아남아 전쟁이 끝난 뒤 고향에 돌아가서 성직자로 서품되는 것을 공상하면서 언제나 성경책과 묵주와 성모님의 메달을 지니고 있었다.
그 무렵 전방진지 근무에서 교대될 때마다 우리들은 참호에서 약 수백m떨어진 후방의 숲속벙커에 들어가곤 했는데 어느 날 고향에서 새로 징용된 5명의 예비병을 배속 받았다. 그러나 그때 우리 벙커에서는 신규 예비병을 수용할 준비가 안 돼 있었다.
벙커는 갑자기 매우 비좁아졌고 다 들어 갈 수가 없었다. 결국 우리는 옆에다 두 번째 벙커를 파기로 결정했다.
우리들이 벙커굴착작업을 거의 끝낼 무렵인 오후쯤 갑자기 소련군의 포격이 시작됐다. 모두들 제각기 두개의 벙커 속에서 엄호물을 찾았다. 나는 아직 미처 깊이 파지 못해 바닥이 높은 새로 만들고 있던 벙커 속으로 몸을 숨겨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새 벙커에는 이미 몇몇 병사들이 엎드려 있었다. 또 다른 병사들은 모두 오래된 원래의 벙커 속에 들어가 있었다. 나는 새로 판 벙커로 들어가려고 엎드리는 순간 맑고 똑똑하며 강렬한 목소리를 들었다. 그 목소리는 이렇게 말했다.『그 벙커엔 들어가지 마라. 다른 곳으로 가라!』순간 나는 근처에 누가 있는지 부근을 멀리까지 살펴봤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고 목소리는 아주 가까이 바로 앞에서 말하는 듯 가깝게 들렸었다.
약간 무시무시한 느낌이 들었지만 곧장 30m쯤 떨어진 곳에 있는 오래된 벙커에 몸을 숨기기 위해 포탄소리와 유탄이 나르는 가운데를 뛰었다.
약3분이 지나고 소련군의 포격이 멎은 후 새 벙커로 가보고는 곧장 직격포탄이 새 벙커에 맞아 벙커 속에 있던 병사가 모두 죽었다는 보고를 하러 본부로 뛰어갔다.
그 순간 나는 전율을 느꼈으나 곧 마음속에선 말할 수 없는 감사와 감동이 솟아났다.
성모님 스스로 아니면 그녀가 나를 위해 보낸 천사가 마지막 찰나 죽음으로부터 구해준 것일까?
오늘날 까지도 나는 감사와 놀라움을 갖고 있고 벌써32년이 지난 지금도 그 의문에 대해서는 결론을 얻지 못하고 있다.
25세가 좀 넘어섰을 때부터 나는 군복무 시의 소망대로 신부로서 일하고 있지만 성모님의 크신 능력을 찬양하는 일에 지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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