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강론 내용은 유다스의 심리와 사고방식, 오늘날 우리에게 숨어있는 유다스와 같은 사고방식에 대한 것이다.
유다스가 주님을 배반한 지 1천9백년이 넘는 지금까지 많은 신학자 성직자 작가들은 글과 강론으로 유다스를 분석해왔다. 그 결과 유다스는 악마보다 더 악질적이며 히틀러보다 더한 악의 상징이 돼버렸다. 과연 유다스는 그렇게 나쁜 사람이었는가?
예수님이 공생활을 시작하신 그때부터 많은 사람들처럼 유다스도 예수님에게 매력을 느끼고 제자로서 따르기로 했다. 그리고 많은 제자들 중에 예수님의 12사도로 뽑혔다. 이렇게 시작된 예수님과 유다스의 관계인데 어떻게 유다스는 예수님을 배반하게 됐을까? 성서를 아무리 살펴봐도 구체적인 설명이 없으므로 우리 나름대로 유다스의 선택과 배반의 동기를 따져볼 수밖에 없다. 먼저 유다스의 선택 동기는 ①종교적인 것 ②이기적인 것 ③정치적ㆍ애국적인 것 ④사회적인 것으로 구분해볼 수 있다. 그러나 유다스가 선택한 예수님은 유다스가 바라고 생각했던 예수님이 아니었다.『나를 따르려거든 십자가를 지고 따르시오』『오른빰을 치거든 왼빰을 내주시오』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상과 복보다는 오히려 박해를 받고자 하셨고 약자가 되고자 하셨다.
이런 예수님은 유다스에게 별볼일 없는 인물, 위험하고 방해되는 인물이라는 생각과 하느님을 시험하고자 하는 배반 동기를 갖게 한다. 어쨌든 유다스는 분명히 예수님을 팔았다.
약 1년 전 내가 잘 아는 한 청년이 결혼을 했다. 그는 소위 일류대학을 나온 유능한 청년으로서 결혼한 지 1년 만에 27평짜리 아파트를 샀다. 아무리 자기 능력으로 된 일이지만 단 둘뿐인 부부가 27평을 차지한다는 것을 당연하다고 넘겨버려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이 신혼부부를 유다스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며 또 그렇게 부르고 싶지도 않다. 다만 냉정히 객관적으로 분석해보면 유다스의 행동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단 한 평을 얻지 못해 숱한 비극이 일어나고 있는데 혼자 13평을 차지해도 괜찮겠는가? 아무 생각 없이 그렇다고 긍정하는 바로 여기에 모순과 문제점이 있다.
상식적으로 보더라도 이러한 사고방식은 착각이며 극도의 개인주의적 생각이다. 복잡하고 미묘하게 얽힌 오늘날의 경제 사회 구조는 모든 사람이 직접ㆍ간접으로 관계되어야만 어떠한 일이든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나 혼자 돈을 벌어 나 혼자 잘 살면 된다는 이 생각 가치관이 끝까지 고집된다면 그 사회는 반드시 망하게 된다.
한마디로 이 모든 사고는 사회풍조와 유행을 뒤쫓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여기서 우리는 예수께서 가르치시는 핵심,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과 이런 사고가 얼마나 다른가를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까를로ㆍ까레또(수사ㆍ예수의 작은 형제회)는 그의 저서「사막에서의 편지」에서『청빈은 오늘날 너무 중요하다. 청빈이란 돈을 갖는다거나 갖지 않는다거나 얼마나 가난하게 아니면 부유하게라는 문제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청빈은 하나의 참된 행복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그것은 하나의 존재양식이고 사고방식이며 사랑의 표현이다. 그것은 성령의 은혜이다. 청빈은 이탈이며 자유이며 진리이다. (中路) 자유가 없는 아니 이 유행의 노예는 많은 그리스도인을 강하게 묶어버리는 악마이다. 마음으로 가난하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유행이라 불리는 것으로부터의 해방이다. 그렇다! 청빈의 정신은 자유이다』라고 그리스도인의 청빈을 정의했다.
오늘날 사회 분위기와 풍조, 매스콤의 선전은 필요없는 물건을 필수품으로 만들고 있다. 정말 아무 생각이나 평가없이 선전과 풍조를 따라가기에 바쁜 세상이 되었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말과 잘 살고 싶다는 말은 일치되는 것이 아니라 상반되는 것이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것은 좋은 것이며 하느님도 그것을 원하신다. 그것은 물질적으로 잘 산다는 말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세계인구문제ㆍ공해ㆍ자연오염문제 및 자연자원의 한계문제에서 검소하게 살지 않으면 온인류가 멸망할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상식적으로도 이런 결론이 나오는데 하물며 상식을 넘어선 생활이 요구되는 우리 크리스찬 생활은 어떠해야 하는가? 검소한 생활에 머물러야 하는가? 아니다! 우리에게는 검소한 생활을 넘어서는 가난한 생활이 요구되며 나아가 그것을 스스로 택해야 하는 결론밖에 없다.
우리는 유다스를 통해 우리 삶을 평가해야 한다. 그보다 이 세상에서 없는 자의 고통ㆍ비극을 통해 우리 생활을 평가해야 한다. 정말 지금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주님처럼 주님의 계명대로 살고 있는가? 심각한 질문이고 심각한 문제이다. 이번 사순절 동안 이런 각도에서 우리 삶을 반성하고 평가하지 않으면 이 사순절을 아무런 의미없이 보내고 말 것이다『나는 예수님의 제자다』『나는 가톨릭 신자다』라고 말하면서 이웃의 불행ㆍ가난을 외면한다면 그보다 더 큰 모순은 없다. 크리스찬인 우리는 고통을 받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고통을 나누어 당함으로써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 정말 예수님의 훌륭한 제자가 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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