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의 독립투사 안중근 의사가 천주교 신자였던 것은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의 신앙 상태가 최근에 발간된 서적을 통하여 세상에 자세히 알려지고 있다. 이 글은 안의사의 자전적 수기의 일부로서 최근에 발간된 김상현편「실록 민족의 저항」(한샘문화사) 제1권에 실린 것을 옮긴 것이다. <편집자>
◆천주교도가 되다
그 무렵 나의 아버지는 널리 복음을 전파하여 원근에서 입교자가 날로 늘어갔다. 전권속이 모두 함께 입교해서 천주교를 믿는 사람도 있었다.
나도 또한 입교해서 프랑스 선교사 홍 신부(洪 神父-빌헴름)에게 영세(領洗) 받고 본명을 다묵(多默-도마)이라 했다. 성경을 강습하고 교리를 익혀온 지 이미 오래어 신덕(信德)은 굳어졌고 믿음에 의심이 없이 천주야소기독을 숭배하였다. 수년을 지냈을 때 교회 사무를 확장하기 위해 나는 홍 신부와 함께 여러 곳을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전교하였다.
천주께서 말씀하시길 한 집안에 가주가 있고 한 나라에는 국주(國主)가 있듯이 하늘과 땅 위에 천주가 있다. 시작이 없고 끝이 없으며 삼위일체의 전능(全能) 전지(全知) 전선(全善) 지공(至公) 지미(至美) 천지만물 일월성신을 조성하고 선악을 상벌한다. 오직 하나며 둘이 없는 대주재(大主宰)가 바로 이것이다. 한 집안의 지아비 된 자는 가옥을 건축하고 산업을 일으켜 그 아들에게 주어 누려서 살게 한다. 그 아들이 방자하여 스스로 우쭐해서 아버지에게 섬기는 길을 알지 못하면 바로 이보다 더 무거운 불효가 없으며 그 죄는 가히 무거운 것이다.
한 나라의 군주의 정치가 올발라서 모두 생업을 보호하고 신민(臣民)과 태평을 같이 누려야 하는 것이어늘 신민이 그 명령에 복종하지 않고 서로 총애의 마음이 없으면 그 죄야말로 가장 무서운 것이다.
천지간의 대부대군(大夫大君)이신 천주께서 하늘을 만드셔 나를 덮으시고 땅을 만드셨다. 이로써 나를 비추어 주시고 만물을 만드셔 나에서 누려 쓰게 하였다. 그 은혜가 이토록 큰 것이다. 만약 인류가 망령이 들어 스스로 존대해지고 충효를 다하지 않고 보본(報本)의 의(義)를 잊으면 바로 이것이 가장 죄가 많고 가장 두려운 것이다. 참으로 조심할지어다.
아버지에게 아들이 말하기를, 하늘에 죄를 지으면 기도할 곳이 없다. 천주는 지공(至公)하고 착해서 죄가 없는 자에게 악이라고 해서 벌하지 않는다. 공죄의 판가름은 몸이 죽는 날 이루어진다. 선한 자의 영혼은 천당에 올라 영원무궁의 즐거움을 누리며 악한 자의 영혼은 지옥에 들어가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괴로움을 받는다. 한 나라의 군주에게 또한 상벌의 권한이 있거든 하물며 천지의 대군(大君)에서이랴. 천지의 대군이 무슨 까닭에 천주가 현세에서 선악을 상벌하는 응보(應報)를 하지 않는냐고 묻는 자가 있다면 대군이 말씀하기를 현세의 상벌은 끝이 있으나 선악은 끝이 없으며 한 사람을 죽이면 그 시비를 판단하여 한 몸으로 갚을 것이다. 만약 한 사람이 수천만 사람을 죽일 경우 죄가 있다면 한 몸으로써 이를 때우게 할 것인가?
만약 한 사람이 수천만 명을 살릴 수가 있으면 잠시 동안의 이 세상 영화로써 어찌 이를 다 갚을 수 있을 것인가? 더구나 인심은 세월이 감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가? 지금 선을 행하고 나중에 악을 행하거나 오늘 악을 행하고 내일 선을 행하거나 그 선악에 따라 그 상벌을 받으려 한다면 바로 이 세상의 인류가 밝음을 보존키 어렵다. 또 현세의 벌은 그 몸을 낫게 하지만 그 마음은 낫게 하지 못한다. 천주의 상벌은 그렇지 않다. 전능, 전지, 전선, 지공, 지의하므로 인명을 관대하고 세상 종말의 날에 선악의 경중을 심판한다. 연후에 영원무궁한 상벌을 받게 된다. 상은 천당의 영복이며 벌은 지옥의 영원한 고통이다. 오르고 내림이 일정하고 또 옮기기 쉬운 것이다.
참으로 사람 목숨은 길어야 백 년을 넘지 못한다. 현명하고 어리석음을 가리지 않고 귀하고 천함을 가리지 않고 발가벗은 몸으로 이 세상에 나서 발가벗은 몸으로 저 세상으로 돌아간다. 이것이 바로 공수래 공수거(空手來空手去)인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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