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회 카르네이로 주교는 마카오에 주교관이 없으므로 목조로 간단하게 주교관을 짓고 그곳에 거주하며 수용소를 설치하여 걸인을 구제하고 병원을 짓고 환자들을 치료하여 주었다. 예수회 수사원 부근에 초등학교를 설립하여 교육에도 힘을 기울였다. 카르네이로 주교는 광주에 두번이나 가서 거류신청을 하였으나 모두 거절당했다.
카르네이로 주교는 1583년에 서세하고 레오나르도 데 샤주교가 1581년 마카오 주교로 부임하였다. 1585년 샤주교는 고아에서 회의를 마치고 마카오로 돌아오던중 해적에게 붙들려 포로가 되었다가 1596년에야 석방되어 돌아왔다.
1573년 예수회 총장은 안목이 넓고 학식이 많은 알렉산더 발이냐노(중국명 范禮安) 신부를 총장대리겸 동양의 순찰사로 임명하였다. 발아냐노 신부는 1574년 예수회 선교사 38명을 대동하고 포르투갈의 수도「리스본」을 출발하여 그해 9월 6일 고아에 도착하였다. 마카오에 도착된 것은 그로부터 4년후인 1578년 7월이다.
명나라말기 폐관자수정책(閉關自守政策)을 썼으므로 외국인은 정식사절 이외는 절대로 입국할 수 없었고 해안이나 육지에 경계가 삼엄하므로 발이냐노 신부는 중국대륙을 바라보며 이런 말을 했다고한다.『바윗돌! 바윗돌! 동벽철벽을 언제나 개방할런고!』
발이냐노 신부는 고아관구장에게 그동안 마카오에서 중국에 대하여 느낀바를 설명하고 중국에 파견될 선교사에게 중국어를 학습하게 하라고 서신을 띄웠다. 고아 관구장은 미카엘 루지에리(중국명 蘿明堅) 신부를 마카오로 발령을 내리는 한편 중국어를 학습하게 하였다.
발이냐노 신부와 루지에리 신부는 어떻게하여 중국의 굳게 닫힌 문을 열 수 있었던가. 발이냐노 신부와 루지에리 신부는 총명한 마태오 리치 신부를 중국으로 영입(迎入)해들였다. 발이냐노 신부와 루지에리 신부 그리고 마태오 리치 신부는 중국 천주교회의 창시자이며 위대한 파종자(播種者)이다.
발이냐노 신부는 일본을 시찰하기 위하여 1579년 7월 7일 마카오를 출발하여 동년 7월 25일, 일본의 아리마(有馬)에 도착하였다. 당시 일본의 선교사가 모두 59명이고 신부가 28명이었다. 일본을 3개의 선교구로 분할하고 각각 수도원을 세우고 선교하여 1580년 일본에 신자가 13만명에 달하였다. 1580년 3월 아리마(有馬) 군주 하루노브(晴信)는 발이냐노 신부에게서 영세를 받았으며 아리마의 주민 4천여명도 영세를 받았다.
발이냐노 신부는 로마 교황을 알현할 사절단을 조직하고 이또오 오께마스(伊東祐益)를 단장으로 임명하였다. 이 사절단의 명칭은 천정견정사절단(天正遣政使節團)인데 사절단원은 모두 16세 이하의 소년이었다한다. 일본선교의 성과를 구주에 보임으로써 일본선교의 열을 더올리고 소년들에게 구주의 높은 문화를 보임으로써 장차 훌륭한 선교사를 만들기 위함도 있었다. 발이냐노 신부는 이 사절단을 이끌고 1583년 고아에 도착하였다.
이 사절단은 1587년 스페인왕과 교황을 알현하고 귀중한 예물과 인쇄기를 받아가지고 고아로 돌아왔다. 1588년 발이냐노 신부와 사절단이 마카오에 도착하였다.
1587년 도요또미 히데요시(豊信秀吉)가 천주교 박해를 일으켰는데 그 원인은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식민지를 확장하므로 위험을 느꼈기 때문이다. 도요또미 히데요시의 금지령이 내린 후에도 사실상 천주교 교세는 확장되어 갔다. 도요또미 히데요시의 박해때 영주들이 신자들을 보호해주어 영주에게 도망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일본 전국이 통일되자 영주들의 몰락으로 선교사들과 신자들이 피해갈 곳이 없게 되었다. 1643년에는 선교사가 일본에 한사람도 남지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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