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손톱밑에 가시가 박히면 그 아픔을 금방 알아차리고 뽑아낸다. 그러나 가슴을 앓는 소리는 높지 않아서인가 모양새가 드러나지 않아서인가, 그냥 스쳐 지나가는 것이 보통이다. 요즘 전통적인 가부장제 권위가 변화되고 있음을 느끼지만 아직도 예속적인 현모양처의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버지들로 해서 일어나는 문제들이 많다. 가장, 남편, 아버지의 역할에 너무 무지해서인지는 몰라도 자기 가정의 문제가 곪을대로 곪을 때까지 인식조차 못하거나 안하다가 비로소 큰 문제가 발생하면 수습은 못해 절망해 버리는 경우들이 있다.
가족관계를 연구하는 학자들에 의하면 부모의 관계가 원만한 가정에서 자란 자녀들은 성인이 되었을 때 그들 또한 원만한 가정을 이루게 된다고 한다.
어린이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세계속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좋은 모델이 되는 주위의 의미있는 인물들에 둘러싸여 자라면서 각각의 역할기대에 따라 행동하도록 훈련된다.
ㄴ의 아버지는 사회적으로 유능하고, 경제적으로도 탄탄한 기반을 닦은 자수성가한 분이다. 고학으로 대학을 마쳤다고 한다. 굶기를 밥먹듯 하던 보릿고개이야기를 자주 하시면서 부족한 것 하나도 없는 학습환경을 만들어 주었으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아버지 만큼만 따라와 달라는 바람이었다. GNP 2천불이 넘는 시대에 백불도 안되던 시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대화가 통할리 없다. 더구나 가부장제의 권위가 대단한 아버지는 고등교육을 받은 어머니에게도 물가에 내어놓은 아이 다루듯 한다. 콩나물값이 얼마인가까지 따져서 생활비를 준다. 가죽운동화 하나 사고싶어도 어머니의 지갑은 늘 비어있기 때문에 아버지의 허락이 떨어져야만 한다.「부자 아버지와 가난한 어머니의 관계」-
자상한 남편, 아버지이기보다는 좁쌀영감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내하고 인내하다가 때로는 슬픔이 어리는듯하지만 정이 많은 어머니가 2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섭섭다하지 않고 아버지 방식대로 따르는 것으로만 생각했는데 어느날 어머니의 화장대 서랍에서 발견한 약봉지를 보고 ㄴ은 충격을 받았다. 끓어오르는 울화를 달래느라고 약물에 의존해온 어머니를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았던 것이다.
유난히 허약하신 어머니라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ㄴ은 모의고사에서 성적이 뚝 떨어졌다. 원인이야 어디 있든간에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인 ㄴ에게 아버지는 나가 죽어버리라고 소리소리지르고, 어머니에게도 자식하나 건사못한다고 무섭게 힐책하는 것이었다.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었다.
전기대학 시험을 불과 한달 남겨둔 지금 정신과에 입원해버리고 싶다는 ㄴ은 눈물이 글썽글썽하더니 펑펑 울기 시작했다. 엉엉 소리내며 한참울던 ㄴ은 그치더니『선생님 울어도 됩니까』하고 묻는다.『울어서 해결될 일이라면···』『우리 아버지는 남자는 절대로 울어서는 안된다고 했어요. 이 비참한 심정을 누구에게 털어놓을 수 있겠습니까』
건강한 체격의 ㄴ의 울음은 가슴이 찢기는 아픔이었다.
아버지의 바쁜 사회생활로 어머니 중심 가정이 늘어나면서 아버지가 가정의 주변인으로 남게되는 경우의「부성실조아」들도 문제지만, 과잉기대하다가 미치지 못한다고 버림받는 자녀들은 어디에서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자녀들의 정신건강을 위해 가정에서의 각자 역할에 대해 보다 깊은 사려가 있어야 하고 바쁜 아버지들도 바깥에서의 성취를 위한 노력에 못지않은 가정을 위한 노력과 아울러 좋은 부모가 되는 공부 또한 게을리하지 않아야한다.
부모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들에게만 자녀를 낳을 권리가 주어진다면 어떻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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