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과는 다른 생활의 싸이클 속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시장 상인들.
보통 새벽 1시쯤 일어나 5~6시간 동안 모든 물건을 바쁘게 매매하는 시장 사람들은 밤낮이 바뀐 그 독특한 생태로 인해 대부분 주일미사에 참례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서울 가락동시장에서 청과물 도매업을 하는 정옥기(45ㆍ안드레아)씨는 이러한 시장 상인들의 어쩔 수 없는 현실을 조금이라도 도와주고자 거센 반발과 방해를 무릅쓰고 하느님의 성체를 시장 한가운데 모시는 눈물겨운 노력을 기울여왔다.
아침 6시쯤 자기의 일을 끝내놓고 그때부터 밤 11시까지 1만명 이상되는 가락동 시장상인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전교활동을 실시한 것이 거의 매일.
미사를 봉헌할 수 있는 조그만 장소라도 마련해 보기 위해 시장관리사무실과 경찰서 등을 오가며 뛰어다닌 정씨는 때때로 그 지나친 열성(?) 때문에『데모 주동자』로 몰려 형무소 생활을 경험하기도 했다.
냉담 교우들 가운데는「바쁘다」는 핑계로 수차 찾아오는 정옥기씨를 돌려보내는 경우가 부지기수였고 몇몇 사람들은『시끄러운 시장 안에서 무슨 미사냐』고 완전한 반대의사를 표명, 혼자의 힘으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하는 정씨에게 많은 좌절을 안겨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 어려움 속에서도 마침내 시장안의 허름한 한 창고를 빌어 탁구대위에 제대를 차려놓고 첫 미사를 봉헌할 수 있었을 땐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모두가 부둥켜안고 뜨거운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그때는 정말 모든 어려움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느낌이었읍니다. 수많은 좌절과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이 꼭 이루어 주리라는 믿음만은 버리지 않았던 결과였읍니다』
「로만칼라를 하지 않은 신부」소리를 들을 만큼 평소 열심한 봉사활동과 신앙생활을 지켜온 정옥기씨가 이렇게 가락동시장안의 상인들을 위해 발벗고 나선 것은 그의 어린 시절의 철저한 교육때문이기도 하다.
독실한 가톨릭신자집안의 장손으로서「기도를 하지 않으면 밥도 먹지 말라」는 엄격한 가르침 속에서 자라난 정씨는 주일미사조차 제대로 지킬 수 없는 시장상인들의 모습이 그렇게 안타까울 수 없었다.
집안에서 장손이라는 책임감 때문에 신학교에 가지 못했던 지난 과거를 보상이라도 하듯 정씨는 그래서 직접 미사시간을 적은 안내 벽보를 만들어 곳곳에 갖다 붙이고 이집 저집을 방문하기도 했다.
『지금은 새우젖 장사하는 할머니에서부터 생선가게 아저씨까지 모두 1백50여명이 미사에 참여하고 있어요. 지난 가을에는 이곳에서 11명의 첫 영세자가 나와 내 생애 최고의 기쁨을 맛보기도 했읍니다』
자기를 필요로하는 곳이면 어느 곳이든 달려가는 성격탓으로 현재 모두 17개라는 막중한 직책을 동시에 맡고 있기도 한 정씨는 평소의 성실한 태도 때문에 어디서든지『없어서는 안 될 인물』로 꼽히고 있기도 하다
「기도의 생활화」를 위해 매일저녁 부인과 자녀들이 함께 저녁기도를 바치고 있다는 정씨에게 새해 소망이 있다면 좀더 많은 사람들이 미사를 봉헌할 수 있는 조그만 성당을 시장 안에 마련하는 것.
정씨는『그날 벌어서 겨우 살아나가는 아주 영세한 사람들도 성당을 마련하기위해 과부헌금을 하고있다』면서『조그만 방이라도 임대해서 성당으로 사용하고 지도 신부님을 모실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은총이 어디 있겠냐』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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