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문제는 시대적 상황과 여론의 동향에 따라 비교적 소상히 밝혀진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 개운치못한 뒷맛을 남긴채 슬쩍 넘어가기가 일쑤였다. 특히 공권력 개입이 논란이 된 경우, 사건의 은폐ㆍ조작여부를 둘러싼 공방전이 끊이지 않았던 만큼 정부의 일방적 발표만으로는 그 진위를 확인하기 어려울뿐더러 아예 발표되지 않은 것도 허다해 더더욱 의구심을 더해주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금년 노사분규의 현장에서 일어났던 무수한 인권유린 사태와 철거현장에서의 인권유린은 대기업에서 보다 주로 중소기업에서 많이 발생했지만 공권력의 인권유린 상황도 자못 심각한 정도에 이르렀다.
부산 국제상사, 울산 현대중공업 등 국내 유수 대기업에서 발생한 소위 구사대의 농성근로자 무차별구타, 대우조선 이석규씨의 최루탄에 의한 사망 등은 우리의 대기업들이 얼마나 근로자들의 인권을 경시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며, 또한 공권력이 이를 비호 내지 직접 개입했다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한 사례였다.
이 사건과 관련, 국내 언론매체들은 일제히「농성장에서 노동자들 폭력」등 편파적 보도를 하거나 정부의「제3자 개입금지」발표만 되풀이해, 가뜩이나 천시받던 근로자들의 인권은 단적인 사실만을 접한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또 한번 매도당해야 했다.
그러나 대기업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철저히「상품」또는「기계」이기를 강요당해왔던 중소기업 근로자들은 이 정도의 보도에서나마 제의돼야 했다.
남성전기(주)를 비롯한 구로공단내 수많은 중소기업에서 농성 근로자를 해고시키고 강제납치, 유기시켜도, 빠이롯트(주) 등 알려진 기업에서 구사대를 동원, 근로자들을 이간시키고 폭력을 사용해도 이들의 인권을 걱정하는 활자나 화면은 어느 한곳도 없었다.
그리고 노사분규 이후 선거의 열풍이 몰아쳐 올때까지 각 사업장에 노사분규를 주동했던 수많은 근로자들이 해고, 부서이동, 근무지 이동 등을 통해 사용자측으로 부터 부당요구를 받고 있고 또 이를 이겨내기 위해 얼마나 처절한 생존투쟁을 벌이고 있는지 전혀 알길이 없다.
마찬가지로 철거현장에서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엄청난 인권유린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상계동, 창신동, 사당동, 신당동, 학익동 등 주로 서울과 인천 수도권지역에서 자해되고 있는 인권유린은 노동현장과 유사하게 공권력의 비호 또는 직접 개입에 의한 것이라는 점에서 맥을 같이 하고있다.
철거깡패를 동원한 신종철거수법은 주민들, 특히 세입자들에게 극한 공포와 수치심을 안겨주면서 생존권리마저 강제로 빼앗아가고 있다.
또 저항하는 비무장 주민들에게 최루탄, 심지어 가스총까지 난사하는 사례 또한 이미「알려진 비밀」로 파다하게 나돌고 있다.
저항해야 할 비인권상황이 누구보다 많으면서도 정작 이 사회 어느 누구보다 저항권이 적은 근로자와 빈민들.
교회는 이들에 대해 어떻게 저항하라고 가르치기보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는「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이라는 점에서「함께」하려는 점을 분명히 하고있다.
노동법 위반혐의로 사제가 구속되고 철거현장에서 깡패들에게 사제가 폭행당해도 교회는「아픈」이들과 함께 하기위해 오늘도 기도와 만남을 계속해 나가고 있다. 인권상실의 암울한 마음들을 공동체의 따뜻한 손길로써 치유코자함이다.
그러나 이같은 노력들은 아직도 가려진 진실만을 믿고 또 애써 외면하는 많은 공동체 가족안에서 질시와 제약을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왜 신부들이 기도나 하지 않고 쓸데없이 불온한데 끼어드느냐』『돈이나 모아주면 됐지 그이상 무슨 소용이 있느냐』….
많은 사제들은 이같은 인식부족이 교회내 상당부분 깔려 있는데 대해 교회가 스스로 가난해지지 못했고 또 말 이상의 실천이 없었던 때문으로 풀이하고 있다. 또한 교회 지도자들의 사회복음화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결핍도 큰 몫을 차지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제 가난한 이들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겨울이 찾아왔다. 추위에 떨고 빼앗긴 인권에 몸부림치며 제도적으로 차단된 사회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릴 뿐, 이들에게 대림은 아무 의미가 없을 수 있다.
교회가 관심과 온정을 보내지 않는다면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그들의 바람 또한 무의식속에서 차단될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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