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에서는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드는 명절이 많이있지만 그중에서도 크리스마스는 가장 기대에 부푸는 대축일이죠. 아이들이 방학을 하는 10월에 접어들면 벌써 본당 레지오에서는 캐롤송을 연습하고 크리스마스 트리도 만들기 시작합니다』
전국민의 80%가 신자이고 4백여년에 이르는 가톨릭교회 역사를 갖고있는 필리핀은 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가톨릭 국가답게 성탄은 커다란 국가적 명절로 당연시되며 이를 전후한 재미있는 풍습도 많이 남아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왕립대사관에 근무하는 가장을 따라 지난 85년 8월 한국에 이주해온 벨가라씨댁 가족도 대림 2주를 맞으면서 기쁜 성탄을 준비하느라 몸과 마음이 부산하다.
필리핀에서 대림절과 성탄은 각 지역이나 본당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공동체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웬만한 가정에서는 대림환이나 대림초를 별도로 준비하지 않을 정도여서 신앙심이 깊은 벨가라씨 가족도 대림초를 준비하고 가족기도를 바치는 것이 성탄준비의 중심.
학교선생으로 근무 했다는 부인 프리실라 엘벨가라(39)씨는『보라 핑크 노랑 초록색의 대림초를 마련했고 매일밤 아들 프란시스(9)와 남편까지 세 가족이 다모여 그날그날의 복음을 읽으며 묵상을 합니다. 기도와 생활나누기는 대림절동안 제가 이끌고 있어요』라며 대부분의 필리핀 가족들이 이와 비슷할 것이라고 덧붙인다.
필리핀에서는 각 가정마다 응접실 부엌 침실 등 편한 곳에 작은 테이블과 십자가 묵주를 놓고「알터」라불리는 기도소를 마련해두기 때문에 대림때는 온가족이 이곳에 모여 함께 기도하는 것이 관례라고.
이렇게 각 가정에서 모아진 기도의 정성은 12월 16일부터 성탄전야제의 의미를 갖는 심야미사「미사데깔로」가 시작됨에 따라 한층 그 열기를 더하게 된다.
미사는 24일 성탄 전날까지 이어지고 때 맞춰 대부분의 신자가 참가하는 9일기도「무비」가 그막을 올리기때문에 한껏 무르익은 대림분위기는 갖가지 재미난 풍물을 자아낸다.
『사람들이 새벽 3시반이면 벌써 일어나 거리가 시끌시끌합니다. 동네별로 밴드를 조직해 캐롤송을 연주하며 다니고 또 어떤본당은 교회종을 치면서 9일기도 시작을 알립니다』
남편 벨가라씨는 이런 정경은 1월 1일까지 사라지지않고 계속된다면서『빈 드럼통을 끌고다니는 시끄러운소리에 잠을 깨어 성당으로 달려간 것이 한두번이 아니다』라고 기억한다.
새벽기도가 끝나면 신자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차가운 새벽공기를 가르며 근처 작은 가게에 들러 쌀케익과 뜨거운 생강차를 마시는 것도 별미.
9일기도와 함께 엄마 아빠 아이들까지 총 동원해 크리스마스 트리를 멋지게 꾸미는 일도 성탄때면 흔히 볼수있는 정경이다.
상록수가 있기는해도 비싸기 때문에 보통 가정들은 마당에 있는 소나무로 대신하거나 코코낫 나무 잎사귀에서 뽑아낸 딱딱한 흰줄기를 엮어서 색다른『필리핀』식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든다.
색지 오린것부터 나무조각ㆍ소석고ㆍ청동ㆍ유리 등 갖가지 재료를 사용, 트리의 밑둥을 감싸고 집집마다 베틀레헴으로 삼왕을 인도한 큰별을 상징하는 별모양의 종이랜턴을 창가에 내건다.
『밤이 되면 온 도시가 하나의 별무리를 이뤄놓은 것처럼 아름답습니다. 이때 어른과 아이들이 한팀이 되어 이집 저집으로 다니며 캐롤송을 불러주면 그집 주인은 돈만 빼놓고 과자나 달콤한 사탕을 준비해주는것이 예의지요』
이렇게 돋궈진 분위기가 절정에 이르는 크리스마스 이브날은 가족들이 본당에가서 자정미사를 보고 집에 돌아와「노체 부에나」라는 크리스마스 음식을 먹게되는데 벨가라씨 가족은 치즈과자를 포함해 좋아하는 음식을 장만한다.
성탄절 당일에는 온가족이 성당에서 미사를 보고 집에 돌아와 기름바른 대나무를 타고 올라가 돈을 가져오는「팔로세보」나「그린망고」게임 등 전통적인 필리핀 놀이를 하면서 하루를 유쾌하게 보내게된다.
엄마와 함께 곧잘 대림기도를 바치는 프란시스는『올 성탄때는 로버트 탱크를 선물로 받고싶다』면서『파티에가서 가족들이 같이 놀 수 있는 것이 제일 기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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