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어느 추운 12월의 겨울밤이었다.
일본 동경에 있는 스끼야다리 부근 스미따 공원에 있는 경찰서에 한 품위있어 보이는 젊은 여인이 들어왔다.
『개미 마을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요?』
젊은 여인의 물음에 당직 경할관은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도대체 이 늦은 밤 시간에 실업자들의 은신처에 여자 혼자서 들어가서 어쩔 작정 인지.
『당신! 개미마을이 어떤 곳인지 아시긴 아시겠지요?』
경찰관의 그 말에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는 표정을 보이자 경찰관은 개미마을로 가는 길을 가르쳐줬다.
『왼쪽으로 곧장 바로 가면 공원 울타리에 붙은 길거리가 나오고 그 끝에 개미마을이 있소』
경찰관은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그녀의 얼굴이 매우 우아하다고 느꼈다. 거리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마을로 가는 길거리에는 매우 어둠침침하고 더러웠다. 다닥다닥 지은 바라크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다.
도시꼬양, 그녀는 이제 겨우 20살이었고 약학을 공부했으며 어릴 때 마리아라는 본명으로 세례를 받았었다.
그녀는 가난하고 직업도 전도 없는 사람들을 돕고 싶어 2차 대전 후 아직 재건되지 않은 동경에서 개미마을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이날 경찰서를 찾았던 것이었다. 개미마을엔 1백 20명의 사람들이 있었으나 거의 대부분 술주정뱅이거나 절도범 아니면 무법자들이었다.
『내가 이 모든 이들의 명예와 긍지를 구하리라』
도시꼬는 결연히 내심으로 약속했다. 이튿날 그녀는 한 가방의 비누와 소독제를 갖고 개미마을을 다시 찾았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녀에게 들을 집어던지곤 했고 더러운 옷을 입은 여자들은 문 앞에 앉아서 그녀더러『꺼져라!』고 외쳐댔다.
고통스런 날들이었지만 그녀는 결코 지치지 않았다.
서서히「거리의 여자」들도 찾아와 그녀의 선물을 받아가거나 그녀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때로는 그녀를 따라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런데도 탈출 회원은 줄어들지 않았다.
도시꼬는 무엇 때문 일까를 생각했다. 내가 그들과 다른 옷을 입고 다른 생(生)을 사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일까?
이튿날 도시꼬는 누더기 옷을 입고 광주리와 갈고리 작대기를 들었다. 그리고는 다른 아이들과 같이 쓰레기나 넝마통을 메고 주으러 다니기 시작했다.
어른들은 그녀가 미친 짓을 하거나 한번쯤 해보는 변덕으로 여겼다. 그러나 그녀는 계속 개미마을에 머물며 넝마통을 메고 동경시내를 누볐다. 그리고 거리에서 만난 떠돌이 어린이를 데려왔다. 그리고 같이 자고 먹으며 같이 지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있었고 부모나 교사들도 그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탐탁찮게 여겼다.
도시꼬는 학교에 다녀야 한다는 것을 설득해서 책값을 마련하기 위해 넝마를 더 열심히 주으러 다녔다. 그리고 방학 때는 며칠씩 해변에서 휴양을 보냈다.
그러나 어느날 밤 그녀는 심한 각혈을 했다. 건강이 나빠진 것이다.
이때 청천벽력처럼 동경시가지 정비계획에 의해 개미마을 막사가 천거되게 됐다. 1백 20명 가족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녀는 청원서를 냈다.
『눈오는 날 밤 차라리 나를 스끼야 다리위에 데려다 놓아라. 그곳에서 죽을것이다. 그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다』고.
그러나 새 개발정책은 에다가와에다 새로운 넝마주이 거주지를 세우되 2천 5백만엔을 내야한다는 통보를 주었다.
『2천 5백만엔이라』고 중얼거리며 죽어가는 도시꼬는『큰 종이에다 목표액을 써서는 침대위 벽에다 붙여라』고 당부했다. 손에는 묵주를 들고 그녀의 병과 대원의 궁핍과 양식에 대해 기도했다. 어떻게하면 에다 가와로 우리 개미대원들이 옮겨갈 수 있을것인가 하는 문제를 고심했다.
이틀후인 1958년 1월 23일 28세의 젊은 나이로 도시꼬는 숨을 거두었다. 그녀는 숨지는 순간까지 손에 묵주를 꼭 잡고서 마지막 기도를 올렸다.
『마리아여 가난한 이들의 어머니여, 당신은 우리들이 아직 우리들의 새로운 터전을 위해 1천만 엔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도시꼬가 죽자 그녀의 남은 대원들은 울었다. 전일본이 그들과 함께 슬퍼했고 동경교구 주교는 그녀의 관 앞에 무릎을 끊었다. 장례행렬엔 구름같은 조객들이 줄을 이어 그녀의 거룩한 사랑과 삶에 대해 슬픔과 찬사를 보냈다. 장례식 즉석에서 그녀에게『우리들의 작은 여황』이란 칭호가 불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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