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바로 이해에, 부엉골의 신도수는 유아 포함하여 92명에 달하였다. 담당구역도 1천명을 넘을까 말까했다. 자기의 할당구역을 벗어난다는 두려움없이 선교사가 마음대로 왔다갔다 할 수 있는 영역의 범위는 오히려 적은 신도수로 위안 받을 수 있었다.
그 범위는 프랑스의 2개 행정구역(Deparement)에 해당되었다. 새로 개척하는 나라에서의 거리란 별 중요치 않았다. 내가 유일하게 이러한 환상 속에 빠져있었을까? 여행상의 어려움 때문에, 하느님께서 그 거리들을 단축시켰음에 틀림없다. 토목기사들도 없는 이 나라의 오솔길위의 1백km가, 유럽에서의 포장된 거리보다 더 짧게 느껴졌다. 부엉골에 위치한 사제관은 신학교로 사용되던 오막살이에 의해 의도적으로 은닉되어졌다. 이렇게 위험한 시기에는 신부가 완벽히 몸을 숨기고 있고, 필요에 따라 산속으로 도망갈 수도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 궁전은 기껏해야 길이 3m 폭 2m 50cm, 높이 1m 71cm의 초가로 구조되었다. 그 안에서 서볼려고 해도 여분의 키 2cm를 줄일 수 없었다. (신부의 키는 1m 73cm임) 게다가 이 대궐같은 집의 출입구는 이미 나에게 결손함을 강요하고 있었다. 문의 크기는 높이 1m 10cm 폭 50cm에 불과했다. 그 문은 프랑스 왕정의 창시자에게 성(聖)레미(st. Remi)께서 세례를 주실 때의 명령적 표현을 생각게 했다.『Baisse late te, fier Sicambrei(거만한 씨깡브르여, 머리를 숙여라!)』
진흙으로 뒤덮인 평평한 돌로 바닥을 깐 방의 아궁이에 불을 피울 때나, 바로 옆에 붙은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부엌에선 성당(예배당)바닥을 데우기 위해 불을 지필 때 이 누추한 집속으로 연기가 마구 들어왔다. 싫든 좋든 여우굴에 연기를 피울 때의 여우처럼 바깥공기를 매번 마시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운동을 위해 필요한 길이 8m, 폭 1m 50cm의 마당이 있었다. 간단히 말해 모든 것이「부엉골」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구비되어 있었다.
측량할 길 없는 무한한 하늘을 바라보면서, 이 작은 공간에 대해 스스로를 위안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전기(前記)한 그 매혹적인 모습들에도 불구하고, 부엉골은 두 개의 결정적 단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 첫째는, 복음을 전파하기에는 그 지역의 극단에 치우쳐있다는 점이었다. 둘째는 가장 심각한 문제였는데, 그 지형의 험준함이 여느 다른 하느님 사업의 발전도 저해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1896년 2월 이미 언급한 장호원의 그 집에 대한 구매제시가 있었는데, 나에게는 하느님의 계시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 당시 우체국이란 것은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었다.
사업상 서울로 가는 그리스도인을 우연히 만났을 때 그편으로 편지를 발송하고 받았었다. 바로 그때 기회가 주어졌다. 한국이 1887년 프랑스와 조약을 체결하게 되었고, 그 이후 우리들은 왕실의 커다란 낙인이 찍힌 여권을 소지하고서 수단(사제복)을 입고 여행할 자유를 얻게 되었으며, 주택을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뮈뗄(Mutel) 주교께 편지를 썼다.「이미 겨울은 갔고, 비가 그쳤습니다. 지하 묘지로 나올 기회, 그리고 교회사업을 햇볕보게 할 기회가 다다른 것 같아 보입니다. 각하께서 이 집 구입을 허락해 주시겠습니까?」당연히 존경하는 주교께서 흔쾌히 허락해주셨고, 요구할 액수로 추정되는 8백 달러에 2백 달러를 추가해 주셨다. 선교 본부에 돈이 없어서, 각 신부가 알아서 돈을 각축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
그러나 실망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집을 팔려고 내놓긴 했으나 그 가격은 최소한 3천 달러였고, 가격은 실제가치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었다. 그 집은 평범한 오막살이가 아니었다. 그 집의 담장과 받침돌은 아주 훌륭했고, 조그마한 소 궁전을 이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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