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하신 하느님
교회는 하느님에 대한 진리를 탐색한다. 이러한 노력은 공의회를 통해 드러난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는 하느님에 대해 이렇게 가르친다.『거룩한 교회는 단 한분의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느님, 하늘과 땅의 창조주이시며 주님이신 분 전능하시고 영원하시며…무한하신 분이 계심을 믿고 고백한다.』이것은 성서와 성전에 맞춰 발전시킨 표현이다.
성서는 여러 가지 형용사들을 사용하여 하느님을 묘사하고 있지만 한계있는 인간의 언어로는 하느님의 초월적 실재를 완전히 표현하지 못한다.
1차 바티칸 공의회는 하느님을 파악할 수도 없고 적절히 표현할 수도 없다고 가르친다. 그렇다고 하느님을 부정적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고 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즉 『하느님은 시간 속에 계시지 않는다.』는 부정적인 표현에 만족하지 않고『하느님은 영원하시다』라고 긍정적으로 표현한다. 이 진리는 성서 안에도 여러 곳에 표현돼 있는데 예를 들면『그분은 살아계시는 하느님, 영원한 하느님이시니』라고 다니엘(18, 1)이 말한다. 여기서 영원은 본질적으로 하느님을 세상과 구별시키는 요소이다. 세상은 우연적이고 하느님은 영원자체시다.
하느님은 물질위에 계시며 절대적으로 비물질적이다.『하느님은 영이시다』(요한4, 24) 영적인 본성은 하느님의 속성 중 하나이다.
하느님은 영(靈)이시다
1차 바티칸 공의회는『하느님은 극히 단순하시고…영적인 본체』이며『지성과 의지와 완전성에 있어서 무한한 분』이라고 가르친다.
영적인 본성은 지성과 자유의지를 의미한다. 하느님의 지성과 의지와 자유는 무한하시다. 이사야서는 하느님의 지성이 무한히 완전하심을 이렇게 표현한다. 『하늘이 땅에서 아득하듯 나의 길은 너의 길보다 높다』(55, 9)
하느님의 생각, 지혜, 지식은 무한히 완전하다.
하느님의 정의와 윤리 면에서도 무한히 완전하시다. 신명기는 하느님을 『거짓이 없고 믿쁘신 신이어라. 다만 올바르고 곧기만 하시다』(32, 4)라고 선포하고 있으며 예수께서는『선하신 분은 오직 하느님 뿐』(마르꼬10, 18)이라고 말씀하신다.
◆창조주 하느님
자신을 계시하신 하느님은 자신을 주고 싶어 하신다. 하느님은 하늘과 땅, 볼 수 있는 것과 볼 수 없는 모든 것의 창조주이다. 없는 것을 있게 하는 무한한 능력을 갖고 계신다. 하느님은 당신이 창조하시는 피조물 속에 당신을 주심으로써 넘치는 선이심을 드러내신다. 그분은 사물의 창조로 우주의 역사를 시작하시고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심으로써 인류의 역사를 시작하시고 역사의 주님이 되신다.
하느님은 창조를 포함한 모든 행위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자유로우시다.
창조하고 싶어서 창조하시며 사랑 때문에 창조하신다. 창조 업에서 하느님이 혼자라는 사실은 그분의 높은 자유와 아버지다운 전능을 드러낸다. 『나는 혼자서 하늘을 펼치고 땅을 밟아 늘였다』(이사야44, 24) 이 전능하신 하느님은 모든 것을 꿰뚫어 아시고 어디에나 계신다. 먼저 자신에게 현존하시고 우주 안에, 인류의 역사 속에 현존하신다. 이것은 가장 위력적인 하느님의 현존이다ㆍ 『우리는 그분 안에서 숨 쉬고 움직이며 살아갑니다.』(사도행전17, 28)
]◆하느님의 이름
하느님을 호렙 산기슭에 서양을 치던 모세를 불러 당신 백성을 이집트의 속박에서 해방시키려고 보내신다. 사명을 받은 모세가 하느님께 이름이 무엇인가 묻자 하느님은 이렇게 대답하신다.『나는 내가 있다하는 자다』이 하느님의 대답에서 우리는 하느님에 대한 더 풍부하고 정확한 생각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이 이름의 힘으로 모세를 파견함으로써 하느님은 무엇보다 계약의 하느님으로 계시된다. 이 이름의 계시에서 하느님은 알고 사랑하고 모든 사람을 당신에게로 끌어당기는 위격자, 계약의 하느님이라는 사실이 특히 뚜렷하게 부각되는 것 같다.
하느님께서 아담의 죄 이후 인간과 체결하신 모든 계약들은 하느님께서 인간의 구원을 원하신다는 진리를 드러낸다.「계약의 하느님」은 신비스러운 방법으로 인간에게「자기 자신을 주시는」하느님이다. 그분은 인간에게 자신을 알리실 뿐 아니라 인간으로 하여금 당신 신성(神性)의 동참자가 되게 하신다.
◆하느님은 한분 뿐
하느님은 자유로이 창조하셨듯이 자유로이 인간과 계약을 맺으신다. 호렙산에서 이름을 계시하신 것은 시나이산 계약의 준비다. 그 안에는 유일신적(唯一神的)인 의미가 강하고 뚜렷하게 드러난다. 『너희 하느님은 나 야훼다…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을 모시지 못 한다』(출애급 20, 2~3) 구약의 신앙고백은 다음과 같은 기본정식(定式)으로 표현된다.『너,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의 하느님은 야훼시다. 야훼 한 분 뿐이시다』새 계약(신약)에서 성 바오로는 이렇게 말한다. 『만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 분 이십니다』(에페소 4, 6) 하느님이 한 분 뿐이라는 진리는 신ㆍ구약 계시의 기본진리다. 이 진리는 이성으로도 깨달을 수 있다. 하느님은 완전 무한하시고 자립 존재이므로 한 분 일 수 밖에 없다.『나는 한 분의 하느님을 믿나이다.』는 온 교회가 고백하는 신앙이 되었다.
◆하느님은 사랑
성 요한 1서(4, 16)는『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말은 하느님에 대한 진리의 열쇠다. 이 진리는 모든 계시의 극치다. 창조에서 하느님의 전능이 드러나는데 이 전능은 사랑으로 행사된다. 「계약의 하느님」은 교육적으로 차츰 당신의「속성들」을 드러내신다.
관대함, 자비, 충실, 의노(義怒) 질투, 온유, 정의, 용서와 같은 하느님의 속성들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이 계시된다. 구약을 통한 하느님의 사랑의 계시는 신약의 그리스도에게서 완성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서 그분은 당신 자신을 결정적으로 「사랑」으로 드러내셨다.
바오로는 그것을 에페소서에서 알려준다. 『하느님께서는 그 크신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셔서 잘못을 저지르고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주셨습니다.』(2, 4~5)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성 요한의 정의는 참으로 엄청난 것이다. 이것과 함께『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 천지의 창조주에 대한 우리의 신앙고백을 완전히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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