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성당의 신부님은 어느 날 자기의 먼 친척뻘 되는 퇴역군인의 묵주에 얽힌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었다.
우리 신부님의 친척이라는 그 퇴역군인은 곤라드ㆍD라는 병사였는데 2차 대전 말기 무렵 동부 전선에 배소돼 있었다. 그는 군에서 항상 묵주를 지니고 있었는데 매일 밤 보초를 설 때마다 묵주기도를 바치곤 했다.
그는 기도를 하면서도 단순히 기도 그 자체가 좋은 일이라는 생각만으로 기도를 바치곤 했으며 간간이「기도가 실제적으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지만 항상 무엇인가 성취하기 위해 반복하는 것」이라는 상념을 떠올리곤 했었다.
그러던 중 2차 대전이 끝날 무렵 독일의 동부전선은 점차 궤멸되기 시작했고 소련과 대치했던 곤라드의 부대도 적에게 밀려 투항하게 됐다.
콘라드도 다른 수많은 병사들과 함께「베를린」에서 가까운 소련군 휘하의 포로수용소에 수용됐다.
수용소 안에서는 즉시 모든 포로들이 소유하고 있는 값진 소지품을 신고해서 영치시키도록 돼있었다.
곤라드는 포로가 될 때 아주 값진 금시계 한 개를 갖고 있었는데 그는 도저히 그 귀중한 기억이 담긴 시계를 소련군에게 내주고 싶지가 않았다. 그는 그 금시계를 장화 속에 넣어 숨겼다.
얼마 안있어 수용소 안에서는 전 포로들을 집합시켜 대열을 지워 정렬시켰다.
두 손을 높이 치켜들고 줄을 세운 뒤 소련군 통역이 나와 서툰 독일어로 경고사항을 통보했다. 『누구에게서든 시계 등이 발견되면 그 자리에서 총살시킨다!』
이어 대열 한 줄 한 줄 소련군이 이 잡듯이 돌며 한 사람 한 사람 호주머니와 장화 등을 수색, 소지품을 뒤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한 소련군 인이 콘라드 차례가 돼 앞에 다가왔다.
그는 바지 호주머니를 다 뒤지고 윗저고리의 주름진 부분까지 다 수색했다.
그때 그의 윗주머니에서 묵주를 찾아냈다.
다음 차례는 장화를 벗겨볼 차례였다.
「이제 죽었구나」하고 총살의 공포에 떨고 있는 콘라드에게 소련 군인은 잠깐 곤라드를 쳐다보더니 뜻밖에『너 가톨릭 신자로군, 내 생각엔 넌 신자니까 시계를 감추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는 콘라드에게 다시 묵주를 건네주고는 다음 포로에게 돌아서갔다.
콘라드는 그의 묵주가 정말 그저 아무런 뜻이 없는 것이 아니구나하는 감명을 받았다.
그는 보초를 설 때마다 묵주기도란 그저 기도 그 자체가 좋은 것이니까 해보는 것뿐 이라던 생각에서 「그저 좋은 것」이상의 그 무엇이 있음을 인식하게 됐다.
그는 그날 이후 그의 생활 속에서 단 하루도 묵주를 떠나서는 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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