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석자
-김수창(金壽昌) <신부ㆍ서울 이문동 주임>
-장익(張益) <신부ㆍ서강대 신학연구소 교수>
-양한모(梁漢模) <교회사연구소 후원회장ㆍ사회>
일시 및 장소
-1977년 3월 16일 CCK 6층 회의실
기록-허종렬 기자
포교 2백주년을 불과 7년 앞둔 한국 교회에는 초창기 교회의 자랑스러운 고난의 역정과 신심을 되찾아보려는 기운이 다각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평신도 스스로 진리를 터득, 그들의 힘으로 전래된 한국 가톨릭은 고통받고 억눌림을 당하고 있는 서민의 종교로 전파되어「사회적 복음」으로 받아들여졌으나 박해를 받으면서 신앙적 측변으로 수축, 자기 구령에만 집착하려는 경향이 짙어졌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그릇 변질된 현실 도피적인 신앙생활은 사회 속의 현대교회 진로에 수많은 문제점을 던져주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고 사회 속의 교회로 성장 발전하기 위해 한국 교회는 그동안「봉사하는 교회상」을 심기 위해 노력해옴으로써 상당한 성과를 거두어온 것도 사실이다. 이에 본보는 창간 50돌을 맞아 한국 교회의 어제를 되돌아보고 오늘을 진단하며 포교 2백년을 앞둔 한국 교회의 새 진로를 가늠해 보기로 한다.
▲梁=포교 2백년을 몇 해 앞두고 가톨릭시보가 창간 50주년을 맞이하면서 기념 좌담회를 마련했습니다.「포교 2백년과 한국 교회」라는 주제가 어마어마합니다만 (일동 웃음) 우선 전래의 특징부터 김 신부님께서 얘기해 주십시요.
▲金=다 아는 바와 같이 한국인이 스스로 천주교 신앙을 배워서 자발적으로 도입한 것이 특징이죠. 다른 나라 역사에는 없는 일입니다.
▲張=지난 봄 월간「基督敎思想」에 쓴 바 있습니다만 한국 교회는 교회 사상으로나 영성 사상으로 볼 때 별난 때에 들어왔습니다. 당시는 배타적 쇄국의 상황이었고 기존 윤리 질서도 그 한계성이 드러나 실학과 천주학은 하나의 탈출구로 보였습니다. 천주학은 양반 상놈 남녀를 가리지 않고 인간의 평등과 존엄을 깨우쳐주었고 불멸의 진리와 구원을 제시하는 내세관을 가르침으로써 겨레와 교회가 일체감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종교 자유를 얻은 후에는 박해에 의한 기나긴 혈사(血史)와 진부한 신학 등의 여파로 신앙이 개인의 영신 사정이라는 관점을 넘지 못했습니다. 기존 질서와 사회 현실에 대해 방관하거나 외면하는 입장에서서「고통을 참고 견디면 천당에 간다」는 식이었죠. 그 결과 3ㆍ1운동과 같이 국가 향방을 결정하는 일에 개신교처럼 결정적인 역할을 못했습니다.
개신교 측은 일찍부터 학교와 병원 등을 세워 육영사업과 교육사업을 벌이기도 했죠.
▲金=또 한 가지 유감스러운 일은 천주교를 도입한 평신자들이 가성직자단을 조직해서 전교를 하려 했지만 좌절된 사실입니다. 가성직자단을 조직했다가 北京 주교에게 야단만 맞고 해체했지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성직자를 어렵게 모셔와 그냥 복종만 하고 살아야 했습니다. 당시에 평신도의 가성직자단을 받아들여서 어떤 지위나 여건을 주었더라면 교회가 얼마나 발전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절실합니다.
▲張=그런 사정은 비단 한국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겠지요.
▲梁=아까 장 신부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 교회가 전래될 당시는 사회적 경제적 모순 때문에 종래의 체제에 대한 회의와 재검토가 절실했던 시기였고, 양반 계급과 중인 이하의 서민 계급 사이에 갈등과 긴장이 고조될 무렵이었습니다. 따라서 반봉건적인 가톨릭 사상은 반체제적인 인상을 줄 수밖에 없었고, 또한 정권으로부터 소외된 실학자들에 의해 받아들여진 사실이 그런 인상을 더욱 짙게 했습니다. 초창기의 신도 중엔 양반 계급도 적지 않았으나 천주교는 계급을 초월한 서민의 종교로 전파되었으며 그것이 중세적 신분의 동요를 초래했습니다. 이런 점에 주목하는 학자들은 천주교가 처음에는「사회적 복음」형태로 받아들여졌다고 주장합니다. 사상적인 측면에서 볼 때 당시의 천주학은「사회 복음」이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습니다.
이「사회적 복음」형태는 박해를 받으면서 그만 사상적 도전을 포기하고「영혼」「천당」으로 도피하는 신앙적 측면으로 수축, 반체제적 요소는 체제 지향적으로 변신하면서 자꾸 탈(脫)사회화 했습니다.
▲張=전래될 당시의 천주학 신봉자들은 유교 사상의 한계성을 너무나 잘 인식했으므로 그것을 초월하려 노력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긍지를 갖는 것은 좋은데 오늘의 교회는 그릇된 사상과 가치관에서 초월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느냐 생각해볼 문젭니다. 초기교회가 의식적으로 반체제적인 성격을 띠었다기보다는 교회의 평등사상이 기존하는 가치제도에 대한 도전으로 돌려졌고 기존체제는 그것을 위협으로 느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구원의 말씀이 심판의 말로 들려진 것이지요. 그것은 복음이 늘 띠게 되는 성격이라 하겠습니다.
▲梁=이제 포교 2백년을 앞둔 교세에 대해 얘기를 해봅시다.
▲張=교세는 숫자도 중요하지만 숫자의 내적 구조도 중요합니다. 처음에는 양반 지식계급에서 천주교를 받아들였지만 즉시 반상을 초월해서 모두가 동일성을 느꼈던 점은 숫자를 따지기 전에 생각할 문제일 것입니다. 당시엔 백정이면 사람으로 인정을 받지 못했는데 천주교를 믿는 양반집에 가 보니 사람 대우를 해줘『이것이 천당이구나』하고 감격했을 것입니다. 거기다가 죽고 나서 또 천당에 간다고 했으니…(일동 웃음) 교세가 늘었다는 것은 대단히 반가운 일이지만 그 숫자 안에는 그런 사실이 포함돼 있는 것도 중요합니다. 숫자의 질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梁=교세를 보니까, 1800년에 신자 수가 1만 명이었다가 1801년 신유대교난을 겪은 후에는 6천6백56명으로 줄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는 박해가 계속되는데도 교우 수는 오히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는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일제의 식민지 탄압 때도 그랬어요.
▲金=최근에 신자 수가 부쩍 느는 것은 왜 그렇습니까? (웃음)
張=요즘은 성세 받기가 훨씬 수월해졌는데, 그것과 관계 있는지 모르지만 냉담자가 많이 늘어나는 것도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옛날에 어떤 신부는 냉담자가 세 사람 생겼다고 밤잠을 못 자기도 했는데…(웃음)
▲金=옛날에는 본당 신자 수가 빤했는데 지금은 수가 많아져 사정이 다릅니다. 기성신자에 대한 교육도 못하는데다 교리교육도 소홀해요. 그리고 냉담의 개념도 달라졌습니다.『주일날 교회에 못 갈 뿐이지 신앙은 갖고 있지 않느냐』이런 식입니다. 산아제한이나 사업관계 때문에 냉담 상태에 있는 사람도 많습니다.
▲梁=이른바「죄중에 있는」지식인들은 3년 4년 동안 성사를 안 보면서도 신자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가 냉담자란 의식이 없어요. 전례에 대한 인식도 부족하고 생활화 돼 있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이제 포교 2백년의 반성이랄까 이런 데로 화제를 바꿔 봅시다.
▲張=반성이라고 말하기 어렵고 바라고 싶은 것을 얘기하겠습니다. 신자는 교인이기 전에 사람입니다. 그러니「교인」「교인이 아닌 사람」「교회 아닌 세상」이런 생각을 좀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현시대의 다른 모든 사람들과 일체감이 좀 더 짙었으면 좋겠다 이겁니다. 그러면서 교회로서의 어떤 과시가 아니라 현세 긍정적인 누룩으로서 사회의 일부라는 일체감을 가지고 교회의 값어치를 생활로 증거하는 그런 교회가 됐으면 합니다.
▲金=아까 미사 전례가 형식화되고 제대로 소화가 안 됐다고 말씀들을 하셨는데 지난 2백년간 우리 교회는 너무「로마」중심이었던 점에서 기이한 결과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張=北京 중심이었지…(웃음)
▲金=박해를 받아 그런지 우리 교우들이 너무 소극적입니다. 처음에는 복음을 사회적으로 받아들였다가 나중에는 자기 구령적인 소극적으로 흘러 우리 교회는 개신교에 비해 한국 민족 교육에 훨씬 뒤떨어졌습니다. 당시의 성직자들은 땅을 많이 사 놓고 성당 운영 문제 같은 물질 면만을 생각했지 사람을 교육시키는 데는 소홀했다는 점이 못내 아쉽습니다.
▲張=묘지도 많이 사 놓았지요. (웃음) 솔직이 말해서 현재도 모든 주교님들이나 본당 신부들이 경영 관리에 소모하는 정력과 시간을 본질적인 주교직이나 사제직을 위해 쓰는 정력과 시간을 비교해 보면 아마 3대 1이나 4대 1이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梁=저는 영세한 지 얼마 안 되니까 느끼는 게 좀 센시티브한지 모르겠지만…몇 가지 측면에서 교회가 반성해볼 점을 지적해보고 싶습니다.
먼저 교회의 가치 구조 내지 가치 의식 면에서 볼 때, 가톨릭인으로서의 실제 행동의 차원이 모두가 초자연적인 경향인 것 같습니다. 초자연적 가치를 중시하고 자연적인 가치를 경시하지 않았느냐 이겁니다.
둘째로 교회의 사목 구조를 사회적 측면에서 보면, 한국 사회의 전통적인 신분 계층 제도라고 할 수 있는 가부장 제도에다 교회의 관료적인 권위가 연결돼 주교와 신부, 신부와 일반 신도 사이에 사회적인 거리감이 있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밑으로부터의 자발적인 의견이나 요망 건설적인 비판이나 충고가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봅니다. 그래서 문제가 많았다고 생각되는데 지금은 많이 나아졌습니다.
셋째로「하느님 백성」의 성격 구조를 보면 과거의 교회가 순명하고 수계를 잘하는 신자, 얌전하고 착한 신자를 많이 양성한 탓으로 신자들은 복종하는 성격을 갖게 되고 주교 신부는 권위주의적인 성격을 띠게 되지 않았나 이렇게 봅니다.
張=「신부 공경하는 신자」를 많이 길러왔죠. (웃음) 요즘은 신부를 좀 깎아내려야…(웃음)
▲梁=그리고 교회 바깥, 즉 환경 사회에 대응하는 자세 면에서 보면 일반 평신도로 하여금 사회생활을 통한 사도직 수행을 촉진시켜 주는 열성이 너무 적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가톨릭 신자는 사회적 연대 책임성이랄까, 신앙인으로서 사회에 대응하는 힘이 약하지 않았는가 생각됩니다.
▲張=이 세상을 겪는 대상으로 보았거던요. (웃음) 잘못을 따지려는 게 아니라 그때 여건이 그랬습니다.
성직자의 희소 가치도 문제가 있었던 것 같아요. 개신교를 보세요. 교파도 많고 목사도 많으니 잘하고 애쓰지 않으면 어디 발 붙힐 수가 있습니까?
▲梁=계속해서 종교 탄압을 받는 순교시대의 사회적 여건도 작용되었겠지요. 이제 복음화 문제를 거론해 봅시다.
▲張=『복음「복」자를 쓰려거든 얼굴 좀 찡그리지 말라』는 말이 있듯이 복음을 정말 기쁜 소식으로 받아들이면 신앙의 증거는 달라질 것입니다. 어떤 개신교 신자는 딱한 사람에게 돈을 털어주고 집에 가서 감사의 기도를 바쳤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애련히 여기시고 굽어살피소서』하며 자꾸 졸라대는 기도가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감사하는 기도를 바칠 줄 았았으면 좋겠어요. (웃음)
▲金=근본적인 복음화는 개인적인 것도 있겠지만 민족과 국가 전체를 대상으로 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가 행정이나 의식을 떠나 겨레의 복음화를 위해 얽매인 상황에서 풀려나기를 원하는 민족적 소망에 투신하여 봉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梁=포교 2백주년이면 1984년입니다. 앞으로 7년이 남았는데 이 7년을 국제 정세나 한국 정세로 보아 유례 없는 격동기가 될 것이고 교회 내부도 본질적인 변화를 겪고 있어 참으로 중요한 시기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경제 제일주의로 산업화되면서 사회에 불신풍조가 더욱 심화돼가는 이때, 교회의 윤리적 영적 힘이 한국 사회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정말 주목됩니다. 장 신부님의 말씀대로 정말 기쁨인 복음을 심을 수 있을런지…그러면 이제 사회 참여 문제로 화제를 옮겨 봅시다.
▲張=우리는 교인이니까 이웃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고 세계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니까 사회 참여를 해야 한다 이런 것으로 족한지 우선 묻고 싶습니다. 마치 수덕하는 사람들이『오늘 세 번 착한 행실을 해야 하는데 누가 걸려오나』하는 식의 사회 참여는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사회 참여는「우리도 이 세상의 일부다」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梁=참 좋은 말씀입니다. 사회 참여라는 말 자체가 석연치 않아요. 교회가 본질적으로 사회와 더불어 살고 있고 사회 안에 있는데…. 교회가 사회와 떨어져 있어서 사회 참여를 한다는 건 말도 안 되지요.
▲張=사회생활 공동체성을 벗어난 구원이 인간에겐 없습니다.
▲梁=사회 참여란 교회의 공동체적인 차원을 정말로 살자는 것이지요.
▲金=사회 참여 문제가 나온 것은 교회가 사회 안에 있으면서도 사회 안에 있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사회 안에 있다는 자각을 하라는 얘기 같습니다. (웃음)
▲梁=결국 이 문제는 이렇게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①교회는 사회와 더불어 존재하고 더불어 가야 하는 사회의 일부다. ②교회는 현실 사회와 상호 교류를 해야 하며 진실한 교류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그것을 실현할 사회 환경을 조성해가는 것이며 ③우리 교회가 한국 풍토 안에서현대 세계의 교회 사목 헌장이 말하는「바티깐」공의회의 가르침을 드러내는 것이 사회 참여라 하겠습니다. 신자 재교육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張=재교육이란 말도 석연치 않아요. 재교육 다음에는 3차 교육으로 들어갑니까? 우리가 매년 성 토요일 밤에 늘 성세 갱신을 하듯이 신앙으로 계속 성숙해가는 과정에 그 성숙을 돕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것이겠는데 재교육이라기보다 계속 교육이죠.
▲金=그냥 교육이죠. 일반적으로 신자들 중엔 사업 등을 위하거나 병을 고치기 위해 미신적으로 믿는 사람이 있고 이런 차원을 벗어나지 못한 신자들이 많으므로 신자 교육은 믿음을 실천하고 거기서 기쁨을 얻는 신앙인으로 성장시키는 것이라야 할 것입니다. 즉 미사에 참여하는 것으로 신앙이 다 된 걸로 여기는 형식화되고 주술적인 것을 탈피하여 생활화된 복음에서 기쁨을 얻도록 교육을 시켜야 할 것입니다. 이런 교육을 시키려면 어떤 때는 좌절을 느낄 만큼 힘이 들어요.
▲梁=좋은 말씀을 하셨는데…가톨릭 교우뿐 아니라 한국 백성의 심정 안에는 샤마니즘이랄까, 기복(祈福)주의가 민간신앙을 통해 전해 내려온 것 같아요. 교우들이 점치고 토정비결을 보고는 죄의식을 가집니다. 미사 참여도 천당가기 위해「마귀 세상」에 젖은 것을 드라이크리닝 하러 가는 기분으로 해요. 그래서 자기만이 받은 은총을 뺏기지 않으려 움추리고….
▲張=저금하러 오는 거죠. (웃음) 이런 걸 부채질 하는 경우도 많고…
▲梁=신자 교육은 참 중요한 문제인제…우리 교우들이 신앙인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의식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張=교육, 교육하면, 무지몽매한 사람을 깨우치는 것으로 들립니다. 교육을 한쪽에선 닦고 한쪽에선 가르치는 것으로 볼 것인지.「신자 재교육」이라 하면, 누가 나와서 교육을 해줘야 된다는 뜻이 됩니다. 교수법을 전공한 어떤 존경하는 선생님이『내가 너희를 가르쳐는 줘도 배워는 못 준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교육은 자신을 형성해 나가는 일이기 때문에 도와는 주더라도 근본적으로 남이 대행하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뭔가 다른 표현이 있었으면 합니다. 신자들이 자기 자신을 신앙 속에서 올바르게 성숙해가고 형성해 나가도록 도와주는 것이지요.
▲金=이문동에 처음 갔을 때 전임신부님이 신자 교육을 많이 하던 본당이라 성서 강의를 시작했더니 약 1백 명이 몰려왔었어요. 얘기가 재미있으니까 듣긴 하는데 남는 게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성서모임을 해요. 남자 11명 여자 4명이 성서모임을 하고 있는데 이 과정을 마치면 한 사람이 10명씩 성서 공부를 지도하도록 할 작정입니다. 이 모임에선 누가 가르치는 게 아니고…나는 토론만 시켜줍니다.
이런 방법으로 했더니 스스로 공부하려는 의욕이 강해집니다.
▲梁=근래에 일부 평신자 사이에 신학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고 있는데 신자들이 신학 공부를 할 수 있도록 교회 당국의 지도편달과 편의 제공이 아쉽습니다. 신학교가 문을 열어 놓긴 했지만.
▲張=그 방법을 강구해 봐야 할 문젭니다. 그런 요청에 응하기 위해 별도의 강좌를 개설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金=독일에서 성직자가 자꾸 줄어드니까 평신도 중에 대학 출신 지성인들에게 신학 공부를 시켜 유사시에 부제품을 줘서 봉사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런 교육을 시켜 필요한 사람에게 봉사직을 정식으로 수여하는 게 어떨까 합니다.
▲▲梁=시경시복운동에 대한 의견은 어떻습니까?
▲張=좋은 일하는데 나쁘다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성인은 우리가 만들자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고 참성인이면 우리가 뭐라든 성인입니다. 순교 선열의 얼이랄까, 그때 상황에서 그런 결단을 내릴 만큼 신앙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 수 있는 운동을 일으키는 게 더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로, 시성시복 자체만을 목표로 삼을 것인지 그것보다 달라진 현 상황에서 그분들과 같이 철저하게 신앙을 삶으로써 자기의 모든 것을 바쳐 아무런 사심 없이 신앙을 증거하는 걸 목표로 할 것인지…
그때 상황도 지금과 같이 결단이 어려웠을 것입니다. 처자도 있고…. 오늘날에는 자기 양심대로 살려면 자기뿐 아니라 자기 주변에까지 어려움이 있게 되고…. 어떤 행사를 위한 것 같이 들리는 시성시복운동보다 그러한 정신에서 살고 그런 신앙생활을 하자는 운동부터 일으켜야 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시성시복운동은 문제를 잠깐 과거로 돌리는 것 같은 인상을 줍니다. 물론 시성이 되면 얼마나 반갑고 기쁜 일이겠습니까? 성인이 있기 때문에 교회가 인정하는 것이지 우리가 성인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金=시성시복은 법적인 절차일 뿐입니다. 절차를 밟기 위해「로마」에 왔다갔다 하는 것인데… 못 마땅한 점이 있어요.
▲梁=마지막으로「봉사하는 교회상」정립문제를 얘기해 주십시요.
▲金=과거에는 교회 안에「디아꼰」이라는 직책이 있어서 사도들은 말씀을 전하는 봉사를 했고, 집안 살림살이는 디아꼰이 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에도 그런 직제를 부활시켰으면 해요. 교회와 사회에 봉사하는 교회상을 심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성직자와 주교들이 살림살이를 모면하면 사목도 다양화해질 것입니다. 성직자가 살림살이에 매달리다 보니, 강론 때는 돈 얘기가 자꾸 나오게 됩니다. 성직자만을 주인으로 여기는 풍조도 불식될 것이고…
▲梁=지금까지 우리 교회는 사목 관리와 경영에 치중해 왔는데…과거의 교회법이 다 그런 입장이었어요 무엇보다 한국 가톨릭 교회에는 현실적인 신학의 정립이 절실하다고 봅니다. 예언자적 사도적 메시지를 깊이 통찰하고 교회 내외를 비판하는 기능도 강화돼야 할 것입니다. 봉사하는 교회를 한마디로 얘기하면 모든 문제를 교회 중심으로 생각하지 않는 남을 위한 교회일 것입니다. 앞으로의 교회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그리스도를 향해 나가는 교회, 성직자 중심이 아니라 하느님의 백성을 중심으로 나가는 교회, 교회 자신에 대한 관심보다는 이 사회와 인간에 관심을 가지는 교회 그 관심을 전인류에게 확대시켜 나가는 교회라야 할 것입니다. 즉 교회의 비중심화, 주교의 비중심화, 사제의 비중심화가 필요합니다.
▲金=우리 교회도「로마」사목,「로마」전례를 좀 떠나서 한국적으로 한국화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한국은「로마」가 아니니까, 모든 사목을 한국 특유의 문화적 유산과 체질에 맞춰 구체화시켰으면 합니다.
▲梁=「로마」자체가 비중심화 돼야지요. 한국 교회는 한국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한국 땅에 복음 선포를 해야 하는데 너무「로마」일방통행으로 돼 있어요. 사귐의 교회이지만 사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때문에 일본의 안자이 교수가『로마는 얘기하지 말고 로마는 들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열등의식에서 이런 생각을 갖는지 모르지만….
▲金=우리는「로마」를 알고 있는데「로마」는 우리를 모르니까요. 우리 교회가 복음을 받아들일 때 사회적으로 받아들였던 것과 같이 오늘날에도 사회에 봉사하는 교회가 되고 그런 방향으로 신도를 이끌어 가야 할 것입니다.
▲張=「봉사하는 교회상」은 Rㆍ아돌프스 신부가「신의 무덤」에서 주장한 교회의 케노시스(空虛化)로 정립된다고 생각합니다.『예수에게 있어서 케노시스는 모든 권력에 대한 추구, 자존심, 모든 자기중심적인 것을 공허화한다』는 것을 뜻했습니다. 우리 교회의 미래는 이 케노시스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梁=가난의 영성에 살며「봉사에 의한 순명, 순명에 의한 봉사」로 구령만이 아닌 인간 구원에 진력하는 교회가 3세기를 내다보는 미래의 교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장시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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