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가기 전에 머리맡에 찬물 한 대야를 떠다놓고 자다가 못견디게 유감이 심할 때는 벌떡 일어나 찬물에 손발을 담그면서까지 육욕을 이기려고 애씁니다』『육욕이 심할 때마다 가시덤불 위에 옷을 벗고 뒹구셨다는 어느 성인의 전기(傳記)가 육욕에 의지박약한 나 자신을 경멸하게 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일주일이 멀다 하고 일어나는 자위행위 때문에 수십 개의 시내 성당을 고백하러 다닙니다.』
좀처럼 말문을 열지 않으려드는 젊은이들이 큰 용기를 내어 털어놓는 대화 중의 일부이다. 성(SEX) 문제로 인한 죄책과 좌절감으로 신앙의 기쁨을 조금도 맛볼 수 없다는 이런 예는 비단 젊은 층만의 고민은 아닌 것이다. 기혼자들의 입에서도 부부생활의 부조화를 자주 들어왔다. 어쨌든 성 문제는 아직도 자신 있는 해답이주이진「완결된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수 년 전 어느 날 밤 내 집으로 젊은이 하나가 찾아왔다
어릴 때부터 잘 알고 있었던 침착하고 내성적인 사람이다. 근자에 좀 생활에 안정감이 없고 우울한 상태로 보여 무슨 문제가 있는 줄로 짐작하고 있었는데 그 정도가 꽤 심한가 보다. 조용한 곳으로 가기를 원해 내 사무실로 안내했다.
용건을 물으니 핵심이 없는 말로 이것저것 더듬거린다. 인내성 있게 듣고 나서 가까이 가 손을 꼭 잡아주며『시몬! 이성문제로 고민하는 중이 아닌가?』하니 순간 홍당무가 된 얼굴을 떨구더니 잠시 후에 얼굴을 들고 신뢰에 찬 눈빛이 되었다.『나도 같은 경험이 있었다네』안심시켜 놓고 그의 고민을 입 열게 했다.
듣고 보니 예상대로 예의 그런 식의 문제였다. 성문제의 고민 때문에 학업도 신앙생활도 뒤죽박죽이란다.
『그저 죽어버리고 싶어요!』비통과 좌절에 찬 그 음성 속에는『정녕 이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죽으리라』(창세기) 하신 지엄한 당부에도 먹지 않을 수 없었던 아담의 슬픔과 갈등이 있었다.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고는 일어나서 몇 장의 그림을 찾았다.
『시몬, 이리 와서 이 그림들을 보게. 이 전라(全裸)의 비너스 상을 눈을 크게 뜨고 똑똑히 보아주게. 그리고 정직하게 말하게. 이 여인의 육체는 한없이 깨끗하고 신비에 차 있지 않은가. 여기에는 불결한 것이 조금도 없이 남성의 넋을 흔드는 아름다움이 있질 않는가. 여성에게는 남성에게 근본적으로 없는 특수한 것이 있는 것일세. 그것이 남성을 여성에게로 그렇게도 강력히 끌려가게 하는 힘이 되는 것일세. 마찬가지로 남성에게도 남성만의 특수성을 주신 것일세.
이 희랍의 남성 조각 그림을 보게. 몸 전체로 균형 잡혀 흐르고 있는 우아한 근육의 남성 특유의 힘을 토하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남성과 여성은 육체만으로도 서로 가지고 있지 않는 별개의 고귀함을 지니고 있는 것일세. 그런데 이 중세기 기사도(騎士圖)를 유심히 보게. 오른팔(정복의 팔=남성적 팔)에 검(劍)을 움켜쥐고 왼팔(보호의 팔=여성적 팔)에 방패를 잡고 우뚝 서 있네. 이 그림에서 만약 양팔 중에 하나가 없다면 무슨 꼴이 될까? 이 기사도는 양성 조화 속의 인간상을 보여주는 것 일세』
『그렇담 회장님, 독신생활은 외팔이 생활이란 말씀입니까?』
『반드시 그렇지도 않지. 그 문제는 별도의 문제야. 이성의 직접 소유만이 인간됨의 완성은 아니지』
『아 그러니까 남성과 여성의 균형 있는 조화 속에서만 우리는 창조주의 위대하심을 찬미할 수 있다는 말씀이군요』
그의 눈이 빛났다.
『그래 바로 그 점이야. 만약에 이 세상이 남성들뿐이라면 얼마나 딱딱하고 삭막할까. 이 세상에 적어도 여성이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세계는 더욱 빛나는 것일세. 여성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이성을 볼 때 음성적 요소(육욕ㆍ경시감)보다는 양성적 요소(특유의 고귀성)로 신을 찬미하는 자세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이 성화를 보게. 성모 마리아(제2 에와)가 왼팔(자비와 사랑의 팔)로 아들 예수(제2 아담)를 안고 오른팔(권능의 팔)로 그 아들에게「에덴의 과일」을 주고 있네. 첫째 사람(아담)은 불순명으로 죽음을 가져왔으나 둘째 아담(예수)은 순명으로 죽음을 이기신 것 (로마 5ㆍ17)일세. 이런 일의 배후에는 항상 여성이 개입되고 있네』
『자! 시몬, 용기를 내게. 이성에 대한 소극적인 곁눈질로 너무 마음쓰지 말고 인간 완성의 고귀한 대상으로 눈을 크게 뜨고 정면으로 바라보게. 별빛은 더욱 빛나게 보일 걸세』
달빛 아래 눈을 밟으며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이 생기에 넘쳐보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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