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은 성부, 성자, 성령
1. 교회는 한분이신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데 그 하느님은 동시에 지극히 거룩하시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3위, 성부와 성자와 성신이십니다. 교회는 가장 오래된 신경 속에 담겨있고 우리시대에 바오로6세께서 상기시켜주신 이 진리로 말미암아 삽니다. 바오로 6세께서는 거룩한 사도들 베드로와 바오로 순교 1900주년(1968년)에 「하느님백성의 신경」을 제시하셨고 온 교회가 알고 있습니다. 오로지『당신을 우리에게 알려주시고자 하셨고「가까이 할 수 없는 빛 속에 계시는」 (Ⅰ디모테오6, 16)그분이 모든 이름과 모든 사물과 창조된 모든 지성을 초월해 계시며…그분 홀로 당신을 우리에게 바로 또 충분히 알려 주실 수 있으므로 당신은 성부 성자 성신이심을 계시하심으로써 당신의「영원한 생명에 참여하도록 우리를 은혜로이 불러 주셨으니 이승에서는 신앙의 어두움속의 영생을 누리고 저승에서는 영원한 빛 속의 영생을 누릴 것입디다』 (하느님 백성의 신경).
사랑은 하느님의 내적생명
2. 우리에게 파악될 수 없는 하느님께서는 한분의 창조주며 전능하신 아버지로서 뿐 아니라 아버지, 아들, 성신으로서 당신을 계시하고자 하셨습니다.
이 계시에서 사랑이신 하느님에 관한 진리가 그 본질적 원천으로 계시되었습니다. 하느님은 한 하느님(신성)의 내적 생명 자체로 사랑이십니다. 이 사랑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3위의 친교로 계시되었습니다.
세례 통해 삼위(三位)생명에 동참
3. 이 신비-가장 깊은 신비, 하느님 자신의 내밀한 생명의 신비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우리에게 계시되었습니다.『아버지 품안에 계신 외아들로서 하느님과 똑같은 그분이 하느님을 알려주셨다』(요한1, 18). 마태오복음에 따르면 그리스도께서 부활 후 당신의 지상사명을 마무리 지으신 마지막 말씀을 사도들에게 하셨습니다.『그러므로 당신들은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의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푸시오』(마태오28, 19). 이 말씀으로 교회의 사명이 시작 됐고 이 말씀은 교회의 기본임무와 본질적 임무를 암시했습니다.
교회의 첫 임무는 가르치고 세례를 베풀어-세례를 준다는 것은「물에 잠근다」는 뜻이므로(물로 세례를 줍니다)-모든 이가 하느님의 삼위의 생평에 동참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신약의 3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마지막 말씀에서 그분이 이미 하느님에 관해서, 아버지ㆍ아들ㆍ성신에 관해서 가르치신 모든 것을 표현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사실 이스라엘의 전 승과 일치하여, 한분의 하느님에 관한 진리를 처음부터 알리셨습니다.『모든 계명 중에 어느 것이 첫째가 는 계명입니까?』라는 질문에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첫째가는 계명은 이것입니다.ㆍ「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느님이신 주님은 유일한 주님이시다」』 (마르꼬12, 29). 동시에 예수께서 는『아버지와 나는 하나입니다』 (요한10, 30)라고 단언하실 정도로 끊임없이 하느님을『당신의 아버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분은『아버지께로부터 나오는 진리의 성신』-우리에게 다짐하신대로-『내가 아버지께 청하여 당신들에게 보낼 진리의 성신』 (요한15, 26)도 계시하셨습니다.
성사와 기도생활은 삼위의 이름으로
4. 예수께서 지상사명을 마치실 때 사도들에게 맡기신『아버지와 아들과 성신의 이름으로』세례 주라는 말씀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말씀은 지극히 거룩하신 성삼을 교회의 성사생활 밑바탕에 둠으로써 성삼에 관한 진리를 확고히 하셨기 때문입니다. 모든 크리스찬들의 신앙생활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신비에 잠김으로써 세례로 시작됩니다. 이것은 사도들의 서간 특히 바오로서간으로 증명됩니다. 그 서간에 나오는 성삼 양식문 가운데 가장 유명하고 전례에서 계속 사용되는 것은 꼬린토후서에 있는『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아버지)사랑과 성신께서 이루어주시는 친교를 여러분 모두가 누리시기를 빕니다』 (13, 13)입니다.
꼬린토 전서, 에페소서와 베드로 1서 1장 서두(Ⅰ베드로1, 1~2)에도 나옵니다.
간접적으로 교회의 기도생활 전체가「성신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아버지께로」 라는 성삼적 방향을 띠고 발전해왔으며 성삼을 의식하고 발전했습니다.
전례는 본질적으로 성삼적
5. 그래서 3위 1체의 하느님께 대한 신앙은 멘 처음부터 교회생활과 크리스찬 생활의 전통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 결과 전체 전례가 하느님의 경륜(經綸)의 표현인 만큼 전례는 본질적으로 성삼적이었고 성삼적입니다. 구원(구속)에 대한 신앙 즉 그리스도의 구원업적에 대한 신앙은 이 복된 성삼의 최고 신비를 이해하는데 기여해왔습니다.
그것은 구윈(구속)과 성화에 현존하는「성삼의 경륜」을 드러냄으로써 아들의 사명과 영원하신 성삼의 품안에서「아버지께로부터」나오는 성신의 사명을 보여줍니다. 성삼은 무엇보다 먼저 구원론을 통해, 즉「구원 경륜」에 대한 지식을 통해 알려집니다. 그것을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메시아적 사명으로 알리시고 효력을 내게 하십니다. 이러한 지식으로부터「내재적」신비, 하느님의 내적 생활의 신비에 대한지식에 이르는 길이 시작됩니다.
신약은 성삼을 완전히 계시
6. 이런 의미에서 신약은 성삼에 대한 계시를 완전하게 담고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 안에 당신 자신을 계시하심으로써 하느님은 한편으로 하느님이 우리에게 누구신지 계시하시고 다른 편으로 하느님이 자신 안에 누구신지, 즉「그분의 내적 생명 안에 누구신지를 계시하십니다. 요한l서에 표현돼있는『하느님은 사랑이시다』 (I요한4, 16)라는 진리는 말하자면 여기서 쐐기돌(宗石)입니다. 이 진리를 통해 하느님이 우리에게 누구신지 계시된다면 하느님이 당신 자신 안에 누구신지도 계시됩니다(인간 정신이 그것을 이해하고 인간언어가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한). 그분은 일치입니다. 그분은 아버지와 아들과 정신의 친교입니다.
성삼은 신앙의 밑뿌리에
7. 구약은 이 진리를 명시적으로 계시하지 않았으나 당신 백성과의 계약에서 하느님의 부성애를 보여줌으로써 「지혜」와 「말씀」과 「영」으로 세상 속에 그분의 활동을 드러냄으로써 (지혜7, 22~30:잠언8, 22~30 시편33, 4~6:147, 15:이사야 55, 11 지혜12, 1 이사야11, 2 집회서 48, 12참고) 그 길을 준비했습니다. 구약은 무엇보다도 먼저 이스라엘 안에 그다음에는 이스라엘밖에, 유일신 종교의 요점인 한 하느님에 관한 진리를 주로 강하했습니다.
그러면 신약은 복된 성삼 게시의 완성을 가져왔고 성삼진리는 맨 처음부터 세례와 전례를 통해 크리스찬 공동체의 살아있는 신앙의 밑뿌리에 있었다고 결론지어야 합니다.
우리가 사도들의 서간과 복음 선포(Kerygma)증언에서 자주 만나는 신앙의 규범들은 교회의 교리교육과 기도와 보조를 맞췄습니다.
성삼(聖三)은 가장 깊은 신앙의 신비
8. 초세기 이단과의 싸움과 관련된 성삼교리의 형성은 별개의주제입니다. 삼위이신 하느님에 관한 진리는 가장 깊은 신앙의 신비이며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오류적 해석의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특히 그리스도교가 희랍문화와 철학과 접하게 됐을 때 그랬습니다. 그것은 삼위이신 하느님의 신비를 「존재의 용어로」 올바르게 「새기는」 케이스 있습니다. 즉 당시 철학언어로 우리 「계시의 하느님」의 일치와 삼위성을 명백하게 정의내린 개념들을 구체적 형태로 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무엇보다 위대한 공의회, 니체아(325년)와 콘스탄티노풀(38l)에서 일어났습니다. 이 공의회 교도권의 결실은 니체아ㆍ콘스탄티노풀 신경입니다. 교회는 그때부터 그 신경으로 삼위이신 하느님 아버지와 아들과 성신께 대한 교회의 신앙을 표현합니다. 공의회들의 업적을 상기하면서 특히 교부들 가운데 아주 저명한 신학자 몇 분을 언급해야 합니다.
니체아시기 이전에는 떼르똘리아노ㆍ치쁘리아노ㆍ오리제네스ㆍ이레내오틀 들 수 있고 니체아시기에는 아타나시오와 시리아인 에프렘을 들 수 있으며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앞에는 대바실리오와 나지안스의 그레고리오와 닛사의 그레고리오가 있고 암브로시오와 아우구스띠노와 대래오에끼지 내려올 수 있습니다.
세 번 거룩하신 하느님
9. 5세기 소위 아타나시오신경은 누구든지 (Quicumgue)라는 말로 시작하는 것으로 니체아 콘스탄티노플 신경에 대한 일종의 해설입니다.
바오로 6세의「하느님 백성에 대한 신경」은 다음과 같이 선포하는 초기교회의 신앙을 확인합니다. 『각기 한 분이시고 동일한「신적 존재」이신 3위를 영원히 구성하는 상호 유대들은 우리가 인간 척도로 개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무한히 농가 하는, 세 번 거룩하신 하느님의 복된 내적 생명』, 참으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지극히 거룩하신 성삼-한분의 하느님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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