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은밀한 방법을 통해 해방절 음식을 나눌 장소를 마련해 놓으시고는 간절한 마음으로 그날을 고대하셨다.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이면 금새 죽을 수밖에 없는 위험한 상황을 아신 예수님은 최후만찬이 끝나는 무렵『자! 이제는 일어나 갑시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도 사랑하셨던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해방절의 따뜻하고도 뜻깊은 분위기를 깨뜨리고 어디로 가자고 하신 것일까?
그곳이 위험해져 다른 곳으로 피하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다. 당신 자신의 죽음과 고난을 뜻하는 암흑의 세력 이 세상의 죄악의 세력을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 만나려고 하신 것이다. 이 사실과 똑같은 내용은 구약 에제키엘서(47장 1절~12절)에서 볼 수 있다.『자! 이제는 일어나 갑시다』라고 하신 실제로 있었던 역사상의 사실과 에제케엘이 혼자 보았던 비역사상의 사건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어 보이며 시간상으로도 6백년의 차이가 있다.
에제키엘이 보았던 그 현시는 역사상으로 있었던 예수님의 이 말씀에 대한 상징적인 효과이며 그 효과를 나누는 교회에 대한 상징이다. 즉 그 죽음의 효과를 책임져야 할 교회의 역할을 보여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는 지금 이 세상에 살아계신 부활하신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로 인해 세상에 사시는 그리스도란 말이다.
여기서 잠깐 교회에 대해 생각해 보자. 교회를 정의하는 말 몇 가지를 본다면 그리스도의 신부, 새로운 이스라엘, 그리스도의 신비체, 주님의 백성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교회는 그리스도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란 것을 완전히 믿기 때문에 그리스도처럼 사는 사람들의 공동체이다. 중요한 것은 믿음인데 이 믿음은 학문적 이론적 예술적 수동적인 것이 아니며 실천적이고 적극적인 것이라야 한다.
영화를 구경하듯 복음을 보고 감상하는 데 그친다면 진짜 크리스찬이 아닌 것이며 크리스찬의 믿음은 믿는 그 내용을 삶으로 옮기는 내부의 필연성을 수반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사신 것처럼 살아야 한다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사는 것을 뜻한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살 때만이 부활하신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시는 것이 아니겠는가!
약 2천년 전에 예수님께서는 몸소 하느님 아버지의 정의ㆍ진리ㆍ사랑을 보여주셨으며 오늘날에는 당신의 삶을 닮은 우리의 삶을 통해 계속 보여주고 계신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교회는 예수님을 닮아야 한다. 우리가 닮아야 할 예수님은 가난한 약한 피땀을 흘리는 십자가에 못 박하신 예수님이다. 주인이며 파견한 분이신 주님께서 가난의 길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을 걸어오셨는데 종인 교회가 이를 외면할 수 있겠는가?
우리 교회는 지금 고난의 예수님을 닮았다고 겸손하게 말할 수 있는가? 예수님의 고통 고난 가난을 닮은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편으론 그 고통 고난 가난을 피하려는 면도 없지는 않다.
두 번째의 결론은 교회 즉 우리는 예수님처럼 일어나 가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고난과 희생이라도 달게 받을 각오를 하고 진리 정의 사랑을 증거하며 그 증거로 당하게 될 모든 고통을 만나기 위해 예수님처럼 적극적으로 일어나 가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사실이며 진리라고 판단되고 정의며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선포하고 실천에 옮기지 못한다면 그리스도를 닮아 그리스도처럼 일어나 가는 교회도 아니며 따라서 그리스도의 교회도 아니다.
세 번째 결론은 에제케엘이 보았던 성전에서 스며나오는 물처럼 우리 교회도 흘러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 물은 스며나오자마자 흘러 나갔으므로 깨끗했고 깨끗했으므로 가는 곳마다 생명을 줄 수 있었다.
이것은 흘러감으로써 없어짐으로써 생명을 주는 참된 원칙을 보여준 것이다. 오늘날 교회는 높다란 울타리 안에서만 활발할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볼 필요가 있는 사람들, 생명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 나서야 한다. 또한 사회의 썩은 상처가 있는 현장으로 직접 찾아가야 한다.
권력의 희생 제물이 된 많은 형제들을 찾아봐야 하며 배움을 빼앗긴 수많은 학생들과 그 부모들의 터질 듯이 답답한 가슴을 찾아봐야 한다. 그뿐인가? 부정부패의 현장, 경제 성장의 그늘 아래 창백해진 얼굴들도 찾아봐야 하며 거대한 수출의 짚더미에 깔려 신음하는 노동자들도 찾아봐야한다. 또한 무기력하며 패기 없는 젊은이들의 마음에도 부자들의 기막힌 퇴폐와 방탕에도 찾아가야 하며 비대해져버린 행정력의 그늘 속으로 사라져버린 인간의 참된 인격도 찾아봐야 한다.
나아가 사람과 돈에 쫓겨 시골과 변두리로 밀려난 판자촌 형제들도 역시 찾아가야 한다. 이렇게 험하고도 어려운 곳으로 가는 용기와 힘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우리 교회는 어디서 그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겠는가? 십자가 밑으로 가자.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찾아가자. 거기서 우리는 우리가 필요한 모든 힘과 용기를 충분하고도 넘쳐 흐르도록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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