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군대」「성모회」「안나회」의 소속 회원이면서「재속 프란치스꼬 3회」에 종신 서약했고, 충북 음성에 있는 「꽃동네」의 열심한 회원으로서 또 다른 4백여명의 회원들을 모집한 할머니. 74살이라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매일매일 이리ㆍ전주ㆍ대구ㆍ부산 등 전국을 돌아다니며 얼마 안되는 회비를 거두어 꽃동네로 보내는 심부름의 역 자청한 할머니.
자기에게만은 누구보다 철저해서「경로 우대증」하나만으로 전국을 누비지만 버스 안에서는 쉴새없는 묵주기도를 봉헌하며 각 회원 가정의 행복을 기원하는 박이규(루시아) 할머니의 삶은 예수님을 그대로 본받고자하는 한 인간의 정성어린 몸부림이었다.
매일 새벽2시에 일어나 성모도에 의한 기도, 공산주의자들의 회개를 위한 기도, 박종철 학생을 위한 기도에서부터 시작해서 장장 3시간동안 총 30여 기도문을 봉헌하고 로사리오 기도만 하루 57탄을 바치는 박루시아 할머니는 자기가 줄 수 있는 안구와 신장도 이미 5년전 꽃동네에 기증 복음을 따르는 삶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
마치 자신은 자기의 것이 아니요 오로지 하느님의 것이니 그대로 돌려드리겠다는 마음가짐인 듯 『나는 아무 보잘 것 없는 늙은이입니다. 아는 것, 가진 것 없는 늙은이가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은 건강 뿐이예요』
안구와 신장을 기증하고부터는 웬일인지 두 눈이 밝아지고 건강이 되살아나 지금은 아주 조그만 글자조차도 안경없이 그냥 볼 수 있게 됐다는 박루시아 할머니는 평소 어떤 고난과 위기가 닥쳐오더라도 항상「감사기도」를 바치는 것을 생활신조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얼마 전에는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쳐 피가 입에서부터 쉴새없이 쏟아져나왔어요. 그렇지만 그때도 난 하느님께 삼사기도를 바쳤습니다. 알 수 없는 일은 바로그때 그 많은 피가 일순간에 멈춰버렸던 거예요』
전라도 전주의 5대째 내려오는 구교집안에서 14남매의 맏딸로 태어난 박이규 할머니의 신앙은 집안의 자연스런 종교적 분위기속에서 이루어졌다.
집안 친척 가운데 성직ㆍ수도자가 몇 명 배출되었을 만큼 열심한 신앙생활을 몸에 익혀온 할머니는 항상 행동과 말로써 삶의 표양을 보여야한다고 배워야한다고 배워왔다.
그래서 3남매를 남기고 남편 윤석우(요한)씨가 병사한 뒤 여자 혼자의 힘으로 목포와 광주를 오가며 수실장사를 하던 어려운 시정에도 박할머니는 한번도 남에게 손을 벌리거나 폐를 끼치지 않았다고 한다. 『첫딸을 시집보낼 때 덮던 이불을 다시 기워서 보내야 할 만큼 처절하게 가난했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돈이 없었던 그때가 지금보다 하느님께 더 매달릴 수 있었던 것 같군요』
박이규 할머니의 단 한가지 소망이 있다면 그것은 온전히 주님과 함께 생활하는 것.
그래서 할머니가 매일 갖고 다니는 수첩에는『주여 언제나 주님과 함께 숨쉬고, 주님과 함께 생각하며 주님의 뜻대로 말할 수 있게 하소서』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박할머니는『신앙인으로서 살아갈수록 하느님의 더욱 두렵고 어렵게 느껴진다』고 말하면서『그러나 하느님은 우리에게 항상 좋은 것만을 주려하시는 더욱 절실하게 느낄 수 있다』고 힘주어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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