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2)
(요한 4장7~15절)
예수께서 사마리아「세컴」근처 우물가에 도착하신 것은 6시경이였다. 우리의 시간으로는 정오때이다. 예수시대에는 하루를 해뜰때부터 해질때까지로 잡고 이를 12시간으로 구분하였다. 제1시는 우리시간의 아침 6시, 그다음 시간이 제3시로 우리의 오전 9시이며, 그다음 시간이 제6시로 우리의 정오 12시에 해당된다. 그리고 9시(오후 3시)를 끝으로 저녁시간인데 일몰시간이다. 신약성서에는 이밖에도 7시(오후1시:요한4,52) 10시(오후4시:요한 1,39) 11시(오후5시:마태 20,9)도 언급되어있다.
하여튼 예수께서 이곳 우물가에 도착했을 때는 먼길에 지치셨다고 요한 복음서는 전한다. 사도 요한은 예수의 사랑받는 제자로서 이 여행길을 예수와 동행했던 모양이고, 다른 제자들이 동네로 먹을 것을 사러간 사이에도 예수곁을 떠나지 않고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를 귀담아듣고 있었을 것이다.
그 자세한 내용을 4복음서 중에서 유일하게 요한복음서만이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약시대부터 우물가는 여행자들이 쉬기 좋은 곳이었으며, 그동네 사람들에게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만나 이야기를 주고받고 하기에 좋은 장소였다. 샘이 솟아나는 것을 보면 그 근처에 나무도 있어서 햇빛에 시달린 여행자들이 앉아쉴수 있는 그늘도 있었을 것이다. 이렇듯 우물은 그들에게 소중한 곳이었다. 더군다나 예수께서 멈추었던 우물은 사마리아인들 역사의 샘이며 자랑이었던 야곱의 우물이었다.
그러나 이 우물은 그들만의 것이었고, 역대로 적대시해오던 유대인들에게는 물을주고 싶지않은 그러한 폐쇄의 우물이기도 하였다. 유대아인의 복장을 한 예수께서 우물가에 쉬고있을때 마을에서 물을 길으려고 한 여인이 왔다. 육신이 지쳐있고 목마른 예수만큼이나 피곤하고 목마른 여자였다.
죄스러운 생활여행과 희망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목말라하는 영혼의 소유자였다.
예수께서는 이 여인에게 영원한 삶을 갈망하는 전인류의 방황하는 모상을 보고있었다. 유대아인들만이 하느님의 선민이고 사마리아인들은 아단자란, 폐쇄적이고 쓸모없는 민족감정같은 것은 예수님의 안중에 없었다. 사마리아 여인은 유대아인에게는 부정한 존재라는 금기를 깨고 예수께서는 그 여인에게 한모금의 물을 청하였다. 우리나라 여자 같았으면 외간남자가 물을 달라고 할때 아무 말없이 주고 돌아섰을것이다.
그런데 이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께 논쟁의 말을 걸었다. 유대아인이 어찌 사마라인에게 물을 청하느냐고 온랜동안 종교적인 한이 맺혀서 깰 수 없는 지역감정의벽을 가로막고 살아온 여자였기 때문이었다. 물은 줄 수 있지만 따질 것을 따지고 보자는 심산이었다. 이 여자가 지금 자기에게 물을 청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았더라면 이 사람을 낳아기른 마리아 만큼이나 행복감에 젖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람의 정체를 알 턱이 없다.
예수님은 이세상에 오신 주된 목적은 당신이 누구인지를 세상에 알리는 일이었다. 『나는 세상에 영원한 생명의 물을 줄 사람이다』 율법을 가르치는 랍비들은 율법만이 하느님의 생명을 주는 샘이라고 가르쳤고, 또 백성들은 이것을 굳게 믿고있었다.
그러나 율법의 세상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은총의 세상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요한복음서는 그 첫머리에서 이 점을 복음서의 주제로 내세웠다.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왔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는 은총과 진리가 주어진다(요한 1,17)』
그런데 세월의 율법 이전에 성조 야곱은 이곳에 우물을 파고 그 우물을 후손에게 몰려주고 백성의 젖줄로 삼게하셨다. 그들은 그물을 퍼먹고 살았고, 가축도 먹였다. 그런데 이 낯선 사람은 물 한잔값에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을 준다고 한다. 야곱보다도, 모세보다도 위대한 사람인가? 이 우물을 펄 수 있는 두레박도 없이 빈손으로 어떻게 영원한 생명수를 주겠단 말인가. 이 우물은 깊이가 30미터이니 거의 불가능한 일 같지만, 그 여자는 마음이 솔깃해지기 시작했다. 거의 모든 시간을 물과 함께 지내는 여인에게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 물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수도물이 콸콸 쏟아지는 물을 마시면서도 목마름을 느끼는 우리이거늘, 매일매일 우물가로 물길러 다녀야하는 여인에게는 목마르지 않는 물이 있다면 더 원할 것이 없을 것이다.
그 여인은 정신이 예수님께 이끌려 들어가면서 자기도 모르게 신앙고백을 하고 만다. 『주여 그 물을 주십시요』라고. 이 물은 예수께서 이미 니꼬데모와의 대화에서 사람을 물과 성령으로 다시 나게 할 새 생명의 물이다.
이 물은 또한 예수께서 나중에 『누구든지 목마른 사람은 다 내게로와서 마셔라. 이 물을 다 마시는 사람은 그속에서 샘솟는 물이 강물처럼 흘러나올 것이다(요한 7, 38~39)』라고한 바로 그 물이며 이물은 다름아닌 성령의 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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