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사람은 방황하는 존재인가? 어디 한곳에 진득하니 머물러있지 못하고 안달을 잘한다. 제자리를 묵묵히 지키면 얼마나 좋으련만 자꾸만 떠나고 싶어한다. 그러길래 결혼할때는 검은 머리가 호호백백이 될때까지 당신만을 사랑하겠다던 부부도 시간이 지나면 심각한 상태에 이르는 수가 많다. 신혼생활이 지나면 차츰 눈길을 이곳 저곳에 돌리고 남들앞에서 총각ㆍ처녀행세를 하고 싶어하는 가련한 인생들이 있기도 하다. 그뿐이던가! 세월이 지나고 나면 『저런 사람과 결혼한 내 눈이 삐었지』하는 처량한 부부도 있으니, 그들은 남편, 아내의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어 용트림하는 사람들이다.
구약 성서 창세기를 보면,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의 재미있고 행복한 그 아름다운 순간들을 영원히 간직하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제자리를 떠나버린다. 이것이 원죄이다. 이는 인간이 스스로 원한 것이지 하느님께서 원하신바 아니었다.
하느님께서는 제자리를 박차고 떠나가서 온갖 고난 속에서 좌절하고 사는 인간을 제자리에 돌려보내시려고 비싼대가를 치르셔야 했다. 외아들을 십자가에서 처참히 죽게하였으니 말이다.
루가복음, 15장11절부터 나오는「탕자의 비유」를 보면 그 집은 참으로 부자였다. 농사도 많았고 소나 양도 많았으며 일꾼들도 수두룩했던 모양이다. 그런 부자집에서 부모 봉양 잘하고 열심히 일하며 살다가 장가들어 자식놓고 가족이 화목하며 이웃과 우애있게 살 수도 있었으련만 그놈의 제자리 지키기 싫어하는 버릇 때문에 집을 나가버렸다 제자리 지키고 있는 것이 지긋지긋했던 모양이다.
제까짓게 제자리를 박차고 나가서 무슨 땡수가 나겠는가? 급기야 남은 것이라고 찌들대로 찌든 몸뚱아리 뿐이었다. 그는 알거지가 되어 집으로 돌아온다. 제자리를 찾아 온것이다. 제자리 찾아온 그에게 아버지는 잔치를 베푼다.
탕자에게 있어서 진정한 행복이란 제자리에 있을 때였다. 그것을 나중에야 깨달았던것이다.
신자의 제자리는 어딘가?
군은 적을 감시하는 자리에 있어야 한다. 그 자리를 떠나 정치마당을 기웃거리면 그는 제자리를 떠난것이다. 경찰관이 대낮부터 술을 퍼마시며 술집에서 고성방가를 하고 있다면 그는 제자리를 떠난것이다. 신자는 있어야 하는 자리가 있다.
『우리 하느님은 유일한 주님이시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라』 (마르12, 29~30)하였으니 신자는 이 세상에서 하느님을 무엇보다도 먼저 생각하고 사랑해야 한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제자리를 떠난것이다. 십계명을 지키라 하였으니 지키지 않을 때 제자리를 떠난것이다. 『남을 판단하지 말아라』(마태7, 1)하였으니 남을 함부러 판단하고 비방한다면 제자리를 떠난것이다.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번씩 일흔번이라도 용서하여라』(마태18, 22)하였으니 아직도 남의 잘못을 마음속 깊이에 간직한채 냄새를 풀풀 풍기면서 미워하고 있다면 그는 제자리를 떠나있는 것이다.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마르12, 31)하였으니 아직도 원수가 내게 있다면 나는 내 자리를 떠나 있는 셈이다.
제자리 찾기위해 회개해야 땅딸이 자케오는 세관장으로서 온갖 비리로 돈을 착취하여 떼돈을 벌었다.
그는 세리로서 제자리를 떠나 있었으나 마음이 늘 괴로왔던가 보다. 그는 어느날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나무에 올라갔다. 결국 그는 예수님을 자기 집에모시는 영광을 얻었으며 그 자리에서 자기 재산의 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남을 속여 먹은 것은 네갑절로 갚겠다고했다.
그는 회개하여 제자리를 찾았던 것이다.
한때 예수님을 면전에두고 배반했던 베드로는 사도로서 지키고 있어야 했던 자리를 떠났으나 회개하여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사순절을 하나의 연중행사로 지나치지 않으려면 신자로서 지켜야 하는 자리가 무엇인지를 냉철히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나의 현주소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를 짚어 봐야 한다. 만일 내가 있어야 하는 자리를 떠나 여기 저기 방황하고 있다면 사순절동안「돌아온 탕자」처럼 본래의 자리로 돌아와야한다.
우리가 세례를 받았을 때 이미 하느님의 자녀, 천국의 시민, 예수님의 형제가 되었으니 이 엄청난 지위를 망각한채 살아서는 안된다. 신자로서의 행복감을 어느샌가 잊어버리고 마치 아담과 하와처럼, 탕자처럼 길을 헤매고 좌절하며 알거지 신세가 되려해서는 안될 것이다.
주님의 품안에서 따스함을 행복으로 여기며 주님만을 의지하고,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진리에 최고의 가치를 두어야 한다. 우리의 이상은 이세상에 어떤것에 있지 않으며 오직 주님께 있음을 발견한 사람답게 살아 가야할 것이다.
『주님, 당신만을 믿습니다. 당신의 은총만을 기대합니다. 그리고 당신 말씀대로 우리의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겠습니다.』하는 기도와 함께 실천하도록 결심하자.
신자가 제자리를 떠났다가 다시 신자의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것, 즉 회개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계속되는 사탄의 유혹 때문이다. 사순절은 은혜의 시간이다. 이 은혜의 시기를 회개함으로 주님을 다시찾는 귀한시간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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