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수녀원에 가시려는 것이지요?』
『그리스도께 가장 일치된 깨끗한 생활을 하고 싶어서요』
『그러시담 결혼하셔서도 그런 깨끗한 생활을 하실 수 있지 않으십니까?』
『글쎄요. 그렇지만…아무래도 결혼생활로는…』
신앙생할에 좀 열의 있는 미혼 남녀치고 수도생활을 한두 번 꿈꿔보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막상 그 길을 결정하는 데는 환경 요소와 작은 결단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 작은 결단이 주체적으로 볼 때는 굉장한 결전을 치룬 다음의 것으로 여겨지는 수가 허다하다. 그 이유는 결혼 성소나 수도 성소가 다 같이 특수 소명이요 다 같이 경험하지 않은 미지 생활에도 불구하고 유독 수도생활만이 더 고행의 길이며 고귀한 길로 암시되어져 있기 때문이다.
수도생활이『받아들일 만한 이들』(마태오 19ㆍ12)의 비범한 생활임에는 틀림없으나 그렇다고 비롯 양상은 다르지만 결혼생활이 결코 하위적인 생활이라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양길은 다 같이 성스러운 길이나 그 향기가 다를 뿐이다.
이렇게 말하면『그건 사실이지요』하면서도 아직도 많은 이들은 내면의 깊은 동의가 없는 건성 대꾸일 때가 많다. 그래서 여고 동창생이었던「행주치마」와「수도복」이 마주 앉으면「행주치마」는 부지불식 안에 자신을 비하시켜「수도복」에게 어색한 경사(敬辭)를 간간이 섞어 쓰게 되고 이래서 정다운 우정 사이에는 어느새 서먹서먹한 긴장이 감돌게 된다.
왜 그런 묘한 일이 생기는 것일까? 여기에는 교회사의 문제, 전통에서 생긴 인습, 혼인성사에 대한 신학적 무지 등의 원인이 있지만 무엇보다 동양 전래의「동정우위」「동정우위」사상이 지배적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9년 전 어느 날, 우연히도 꿈 많은 젊은이 한 쌍을 만나게 되었다.『우리는 너무도 서로 깊이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이 사랑이 결혼생활로 깨어지지 않도록 하나는 신학교로, 하나는 수녀원으로 가기로 합의했습니다.』『사랑은 영원한 합의를 원하는 것인데 우리가 막상 결혼하게 되면 그것이 불가능하게 되지요. 그래서 우리의 사랑을 영원히 지키기 위해 그 길을 택하기로 했습니다. 말하자면 아가페적 사랑을 하려는 것이지요.』
기가 막혔다. 그러나 무어라 일러줄 수가 없었다. 그만큼 그들의 신념은 비장한 것이었다. 학(鶴)이 구름 타는 얘기라고나 할까. 거기에는 헬만헷세의「바드리시오와 방그라시오 형제」의 함정이 있는 것이다.
『철저히 버림』(마태오 19ㆍ27) 없이 어찌『영원』(마태오 19ㆍ29)을 얻을 수 있으랴!
신성으로 위장된 오만한 사고(思考)에 취한 몽유병자! 본역의 자기에로『깨어 믿는 자』(마태오 25ㆍ13)가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는 한『이 여인이 내게 먹으라고 했나이다』(창세기) 라고 한 아담의 변명이 생생하게 재현될 것이다. 보다 정직한『자아에로의 회기』(루까 15ㆍ20) 가 있어야 할 것이다.
10년 전 어느 날 밤 급한 전같이 왔다. 달려가 보니 강보에 싸인 애기를 안고 부부가 글썽이며 쩔쩔매고 있다. 『10일 전부터 애기가 보채고 젖을 토해 병원마다 찾아다녔지만 이제는 희망이 없습니다. 마지막 부탁이니 회장님이 성수를 뿌리고 기도해 주십시요』얘기를 고상 앞에 누이게 한 다음 촛불을 켜게 했다. 우선 방안에 성수를 뿌리고 나서『구약에 열성조들이 강복을 얼마나 열렬히 구하였는지를 두 분은 잘 알고 계십니다.
사제의 강복에 진배없이 혼인성사자들의 강복도 힘이 있습니다. 애기에게 가까이 가셔서 우선 그 이마에 성수로 십자성호를 그으십시요. 그리고는 두 분의 손을 애기 머리에 얹고 혼인성사로서 얻은 강복의 힘에 의지하며 주께 간절히 기도하십시요』부부가 한 마음이 되어 열렬히 기도하는 모습을 뒤에 두고 살그머니 빠져나왔다.
3일 후 생글거리는 애기를 안고 부부가 찾아왔다. 절망에서 부르짖는 간절한 소청을 들어주신 것이다. 아깝게도 새 신부의 강복을 그리도 열성 있게 받기를 원하는 교우 중에는 혼인성사의 강복을 무심히 묻어두고 사는 이가 많다.
평신도 재발견이 제 궤도를 찾으려면 아직도 길은 멀고도 먼 것일까? (평신도 사도직 교령 5장 25절 참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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