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재順
①都市集中化
②정돈의 過程
③司牧指針
④明洞大聖堂
⑤奉仕하는 敎會
명동대성당-1892년에 착공되어 6년 만인 1898년 5월에 준공됐으니 금년에 창건 79년을 맞이했다. 그동안 명동성당은 한국「천주교회의 얼굴」로서 한국 교회사와 함께 나라와 민족의 영욕을 때로는 지켜보고 때로는 더불어 나눴다. 착공 당시는 쇄국정책과 그 지긋지긋하던 종교 박해가 겨우 막을 내릴 즈음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종고개 언덕에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은「뾰죽탑」이 대궐보다 높다 해서 정부와의 긴장이 없을 수 없었다.
일제시대는 징발의 위협 속에 36년간의 수난을 민족과 함께 겪었고 8ㆍ15 해방이 됐을 때는 하지 중장이 인솔한 미군 환영미사와 김구 선생을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 환영미사가 명동대성당에서 봉헌됐다. 명동성당 문화관은 그 당시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정당들의 집회처이기도 했다.
이런 외적인 사실을 미루어 보더라도 건국 초의 혼란기에 교회의 얼굴로서 명동대성당이 국가 민족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대사에 적잖게 관여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창건 당시 명동대성당은 장안 어디서나 바라볼 수 있었다. 고딕식「뾰죽탑」은「마귀 같은 세상에서」하늘만 쳐다보며 사는 것을 신앙으로 여겼던 시대에 걸맞는「건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뾰죽탑」도 도시화에 정비례하여 빌딩의 숲에 가려지고 파묻혀가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명동대성당이「얼굴」이란 외적 기능이 이미 끝났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 같다. 특히 제2차「바티깐」공의회 이후 교회가 세속을 본격적으로 긍정하려는 기운과 함께 근대화에 의한 도시화 현상은「얼굴」의 기능이 아니라「얼」의 기능을 강요(?)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에도 명동대성당을 찾는 관광객이 적지 않다. 그러나 그들의 관광 목적은 옛날처럼 신기한 고딕식「건물」을 구경하려는 게 아닌 듯하다. 사회정의구현운동의 진원지요 인간회복운동의 요람이라는 측면에서 봐야 할 것 같다. 세칭「명동사건」이 상당한 기간 동안 세계의 이목을 끌어온 것만 보더라도 명동성당이 관광 대상으로서의 가치가 있을 것이다.
어떤 신혼부부가 김 추기경을 만나는 것이 신혼여행 스케줄에 들어 있었다면서『꼭 뵙겠다』고 떼를 쓴 것도 이런 측면에서 봐야 할 것이다.
70년대에 들어서면서 무엇보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명동대성당으로 몰려드는 이유를 이「얼」의 기능을 빼고는 달리 해석할 방법이 없을 것 같다. 60년대만 해도, 우리 교회에는 교회가 늙어가고 있다는 우려와 개탄의 소리가 높았다. 주일미사 참여자 중 4분의 3 내지 5분지 4가 노인이나 부녀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동성당의 경우, 71년도부터 젊어지기 시작하여 요즘 주일미사 참례자 약 1만여명 중 80% 이상이 청소년과 장년들이다. 영세 예비자들도 90%가 남녀 청년들이고 금년 중엔 약 2천 명이 영세할 것이 예상된다.
4년 전의 약 5백 명 입교에 비교해 보면 그 증가의 폭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번 부활절을 기해서도 8백여 명이 교리를 배워 그 중 약 7백 명이 영세했다. 그렇다고 예비자 교리반을 어떤 특별한 방법으로 모집하는 것도 아니다.『교회가 사회에 주는 이미지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교회의 이미지가 중요합니다』명동주임 김몽은 신부의 이 말은 아무래도 정곡을 찌른 것 같다. 따라서 명동성당이 젊은이들에 대한 배려가 각별하지 않을 수 없다. 등산객을 위해 도봉산으로 가서 주일미사를 봉헌한 김 신부의「행동」이 한마디로 이를 증명한다. 어쩌면 이 같은 특별한 배려 때문에도 젊은이들이 더 많이 모여들 것이다. 최근에는 사제관 2층을 젊은 근로자들을 위해 개방했다.
도서실과 상담실을 마련하고 영어ㆍ레크리에이션ㆍ편물 강좌도 개설했다. 예비자 교리 교육도 젊은이들에게 촛점을 맞추고 1편이 끝날 때마다 종합교리와「오리엔테이션」은 본당 신부가 직접 지도한다. 본당 신부가 교리 교육과 담을 쌓고「소일거리」로 무료를 달래는 현상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명동성당의 초본당적 초교구적 성격도 날로 심화되면서 기존 본당 개념이 자꾸 희박해지고 있다. 전국적인 행사도 많고 혼배미사만 해도 1년에 6ㆍ7백 대나 된다. 1억 원이 넘는 예산 중 약 절반이 교구로 상납되고 전국 기구나 타교구 등을 돕는 둘째 헌금도 1년에 7ㆍ8백만 원이라고 한다. 명동성당의 이 같은 모든 표징 등은「건물」로서의 교회의 표징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오늘의 사람들에게「참인간의 얼」을 심어주는 교회의 표징일 것이다.
特別取材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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