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바오로는 2차 월북하여 밀봉교육을 받고 같은 방법으로 남파되어 대단히 미온적으로 활동하다가 결국 수사기관에 검거되었다.
간첩으로서의 불안감 2차 월복에서 당한 두려움 등이 바오로 자신의 간첩활동을 더 이상 지탱하지 못하게 했다. 자수를 결심하고 시기를 택하다가 결국 포섭해서 함께 월북했던 동료에 의해 고발 당했다. 바오로는 사형 선고를 받고 죽음을 기다리면서 나날을 보내는 초조한 생활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절대적 구원 사상이나 되는 것처럼 아낌 없이 희생해 왔던 공산주의를 위해 목숨을 버린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듯했다. 공산주의가 세상을 지배할 때 지상의 낙원이 실현된다는 공상에 한동안 깊이 빠져 있었다. 온 인류가 구원되는 거룩한 지상낙원적 작업이 마무리가 한시라도 앞당겨진다면 자기의 죽음은 장한 죽음임을 자부하고 있었다.
이렇게 왜곡된 사고의 습관에 젖은 바오로였지만 바오로 자신의 생각이 일방적이고 전도된 가치관에서 빚어진 크나큰 과실이라는 것을 상당한시간 동안의 상담을 통해서 생각의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틀림없이 바오로의 마음은 밑바닥부터 술렁거리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편협된 생각, 왜곡된 가치관에 변명할 수 없는 모순이 생겨났다. 이를 악물고도 일방적으로 치닿던 보람찬 생각의 주행선에 형언할 수 없는 혼란이 일게 되니 억지로라도 마음의 평정을 지탱하려고 노력했던 마음에 극도의 불안과 고뇌가 일어났다.
이제 공산주의를 버려야 할 것인가? 공산주의를 막상 포기하려고 하니 이제까지 공산주의를 위해 맹목적이나마 삶을 다 바쳐 가면서 충성을 다했다는 바오로 자신의 지나온 세월이 너무나 억울하기도 했다.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느님의 존재가 분명하다고 깊이 인정되어지면서도 공산주의를 고집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 아닐까? 심각하게 번민하다가 결국 용단을 내려 공산주의를 정식으로 포기한다는 전향 신고를 했다. 용단을 내리고 나니 오히려 마음은 생각했던 것보다는 홀가분했다. 이제 남은 것은 오로지 신앙의 깊이를 더해가는 것뿐이다. 현실적인 삶으로서만 인간의 한없는 욕구를 감당한다는 것은 당치도 않은 일이다. 반드시 저편의 더 높은 차원의 행복이 있다는 것은 바로 끝없는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 본능을 달래는 유일한 실제적 보증인 것이다. 이제 바오로의 생각의 촉수가 여기까지 찾아 확인해 오는 것이다. 공산주의를 했던 과거가 있었고 동료 간첩이 자수함으로써 검거된 것이다.
검거된 후 사상적 전향을 할 때까지 바오로 자신의 인생관을 지배해 왔던 공산주의와 밀착된 사고의 습관을 격리시킨다는 것은 많은 아픔을 경험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주의 은총이 이 같은 아픔의 상처를 재빨리 치유시킨 것이 틀림없었다. 바오로는 과거의 모든 것을 잊어 버리려고 안간힘을 다 기울이며 새로운 생명의 주체인 주님의 은총에 너무나 겸손되이 순응했다.
이제 하느님의 가치를 거침없니 받아들이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새로운 신앙으로 굳게 무장한 것이다.『저의 과거는 너무나 어리석었습니다. 신부님 최선을 다해 주님을 믿는 신앙에 귀의하겠습니다.
공산주의를 위해 죽는 것은 일전에 신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공산당이라는 몇몇 분자들을 위해 바쳐지는 충성밖에 더 많은 가치를 찾을 수 없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 생명이 다할 때까지 주님을 믿는 신앙의 깊이를 더해가는 데 심혈을 기울이겠습니다』정바오로는 여러 차례 다짐한 것처럼 성세를 받고 신앙인으로서 최선을 다하다가 1974년 5월 14일 형장에서 사형이 집행되었다. 집행 당할 때 좀 당황하긴 했지만 바오로는 끝까지 주님을 증거하면서 죽음을 이겨낸 장한 이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