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도록 주의하면서 우리는 우선 음식 맛을 생각해 봅시다. 음식의 경우 요리 솜씨가 좋다고 할 때 그 요리의 겉모습, 색감적 조화도 문제가 되겠지만 그 맛이 훌륭해야 할 것입니다.『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하는 우리 속담은 겉과 안이 통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만 사실 좋은 요리는 보기도 좋고 맛도 훌륭한 것이며 모양도 우수한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한 요리를 만드는 요리사는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음식을 요리하는 데 우선 손끝의 재주 즉 기술이 있어야 합니다. 음식의 빛 모양을 미적(美的)으로 나타날 미감(美感)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하나의 재료에 대한 깊은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인간의 기호(嗜好)와 신체 위생적 지식도 있어야 영향을 조화시킬 수 있습니다. 하나의 요리를 만들어 훌륭한 맛을 내자면 이상과 같이 여러 가지 갖추어야 할 것이 대단히 많습니다.
한 가지 음식을 먹는 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입에 넣어서 삼켜 버리는 것과 맛을 볼 줄 아는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목 안으로 삼키기만 하는 것은 결코 행복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을 보내기만 하는 것은 결코 인생의 맛을 보는 것은 못 됩니다. 나에게 닥쳐오는 시간을 토막토막 맛을 보고 과거에로 밀쳐 주는 그런 인생이 소망스럽습니다. 그래서 스쳐가는 수가 있고 인간에게 완전히 정복 당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우리의 시간은 일 분 일 초라도 그냥 지나가는 것이 아니고 의미 있는 시간, 맛을 더하는 데 소용되는 시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술을 마신다 하고 어떤 사람은 술을 맛본다고 합니다. 술은 배 부르게 마시는 것이 아니고 인생의 맛을 더욱 더하는 데 그 묘미가 있다면 술 자체의 맛을 보면서 마셔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단 술이겠습니까? 밥도 그렇고 고기도 그렇고 나물도 그렇습니다. 씹을수록 맛을 더하는 것이지요. 그것이 참맛입니다.
인생의 모든 것에 맛이 있습니다. 그 맛을 충분히 음미함으로써 행복에 접근합니다.
행복은 이와 같은 개별적으로 보면 다양성을 띄고 있고 또 사람에 따라서 독자성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개인의 행복이 절대적 고립성을 가지고 있느냐 하면 결코 그런 것이 아닌 것을 보게 됩니다. 말하자면 행복이란 향유하는 것이고 창조하는 것이란 뜻에서「맛 들임」이란 정의를 해 보았지만 그「맛 들임」은 반드시 사회적인 연관을 생각한 위에서만 타당한 것입니다.「나 혼자의 행복」같은 건 당초부터 아무 데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 그것은 행복이 아니라 백일몽(白日夢)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요? 현대와 같이 연대성이 강조되는 시대에 로빈손ㆍ크루소오 같은 위인은 이미 살아갈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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