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해년 10월 18일 유세시리아가 근 80 평생 기나긴 덕행과 헌신의 생애의 보수로서 바로 그날 박해자들은 마치 그의 순교를 의식하는 듯 이른바 척사윤음을 반포하게 되었다.
척사윤음이란 천주학을 사도로 단정하고 이를 배척하기 위하여 국민에게 내리는 임금의 말씀을 뜻한다.
원문은 본시 진서이지만 일반 대중도 쉽게 읽을 수 있게 언문으로도 번역되어 전국 방방곡곡에 제시되었다.
관변 측 기록에 의하면 척사윤음은 그때 규장각 제학인 조인영이 제진한 것이라고한다. 인영은 바로 얼마 전 이지연을 몰아내고 우의정에 올라 교우들을 교수형에 처하도록 지시한 장본인이다. 그런데 다블뤼(안) 주교는 그의 비망록에서 인영이 척사윤음을 직접 제작한 것이 아니요 실은 중인 조수삼에게 위촉하여 작성케 했다는 새로운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수삼은 당시 문장으로 명성이 높아 인영의 스승인 동시에 친구가 되었으며 인영이처럼 천주교인을 아주 미워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조수삼은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문장과 시에 천재적 소질을 지녔던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다불뤼 주교는 윤음에서 드러난 그의 문장 실력을 형편 없는 것으로 평가하였다.『그것은 신유년의 윤음에 비하여 문체로 보거나 편집으로 보거나 아주 뒤떨어진다. 번역 불능의 모호한 문체여서 나는 가장 유식한 한국인들로부터 완전한 의미를 알아보려 했지만 결국 허사였다. 읽은 사람은 누구나 그것이 전후 연착도 상호 연관도 없는 귀절과 잡말뿐이라고 고백했다』박해가 조직적이고 그 규모가 전국적일 경우에는 반드시 전후 2회의 장엄한 칙서의 선포로써 박해를 개시하고 또한 끝을 맺는 절차를 밟게 되어 있다.
따라서 박해 말엽에 선포되는 척사윤음은 내용상으로는 척사문임에는 틀림없으나 절차상으로는 싫으나 좋으나 박해를 결말 짓겠다는 박해자의 의사 표시이기도 하다. 그것은 이제 여론이 그렇게 많았던 사형 집행을 염려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박해자들의 열광이 제 아무리 치열했다하더라도 또는 선동된 무리의 군중의 증오심이 제 아무리 무분별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양심은 언제나 자기 권리를 간직하고 있는 법이어서 이제 학살로 인한 무고한 희생자들을 동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니 정부도 이제는 모든 박해자들이 하는 것처럼 거짓말을 빌려서라도 자신을 변호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척사윤음의 저자는 자신의 반박이 답변 불능의 것으로 자신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가「上宰相書」를 읽었다면 과연 답변할 수 있었을까. 기술한 바이지만「上宰相書」는 정하상이 이와 같이 반박에 대비하여 재판관에서 제출한 것이다. 아래 윤음 중 몇 가지 반박을 들어 정하상의 글로써 반박해 볼까 한다.
척사윤음은 말하기를,「우리나라가 공맹의 도를 따라 태평성대를 누려 오던 중 正祖 때 돌연 천주학이란 이단이 들어오므로 신유년에 징치를 감행하게 되었고 그 후로 40년이 지난 오늘날 사교가 또 치성하니 법으로 다스리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상은 말하기를『먼저 천주교의 의의와 이치가 어찌한가 묻지도 않고 사교로 돌려서 사형법으로 처치하니 신유년 전후에 인민의 생명을 많이 없애면서도 그 기원과 전통을 조사하여 본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고 한 번 연구해 보지도 않고 무조건 이단으로 규정해 버리는 정부의 태도가 극히 비합리적임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유교 정도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이것도 이단이라 하였거니와 하물며 외국의 도이랴』이렇게 천주교가 외국의 도라고 배척하는 말에 대하여 하상은『어찌 외국의 종교라 하여 그러는 것입니까. 김은 산지를 가리지 않고 오직 순금이 보배가 되고 종교는 방위를 꺼리지 않고 오직 거룩함이 참되니, 그러한 종교가 전래함에 어찌 이 나라 저 나라 경계가 있겠습니까』라고 반박한 다음 다시금 정부가 교리의 참되고 거짓됨과 사리의 바르고 그름은 한쪽으로 치워 놓고 얼토당토 아니한 말을 가지고 공격하고 배척한다고 비난하였다.
하상의 말과 같이 척사윤음은 천주교인에 대하여「無父無君」「매국노」「마술자」「사회 질서와 미풍의 문란자」「通色資」등등 얼토당토 아니한 중상과 모략으로써 그들의 잔인했던 지난 날의 학살 행위를 변호하고 정당화하려면 점, 과연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공통된 박해자들의 심리 상태를 여실히 드러낸 것이라 하겠다.
여하간 척사윤음을 반포한 이상 정부로서는 박해를 마감하기 위해 결안자들에게는 사형 집행을 그리고 미결안자들에게는 재판을 서둘러야 했다. 11월 24일 이미 결안된 7명의 교우가 서소문 밖 형장에서 처형되었다. 한편 일이 뜻대로 빨리 진행이 안 되는지 초조해진 조인영이 공식 사형 집행이 두려웠던지 교우들을 가능한 한 옥중에서 목을 졸라 처리하라는 교수형을 다시 지령하게 되니 많은 교우가 교수형에 처해졌다. 연말이 박도하자 박해를 빛나는(?) 방법으로 끝 맺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때문일까. 10명의 교우를 공공연하게 사형 집행했다. 이리하여 척사윤음 반포 이전 48명에 이어 반포 이후에도 22명의 순교 복자를 낳게 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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