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행복의 사회성이란 말을 쓰고 있습니다만 그 말은 바로 이와 같은 사정을 두고 하는 말이랍니다. 이 행복의 사회성이란 말을 이들에게 설명해 주는데 대단한 적당한 나의 경험 한 토막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942~1945년 사이의 일들입니다. 그 당시로 말하자면 우리나라는 일본의 식민지하에 있었고 일본은 연합군을 상대로 벅찬 2차대전을 치루고 있을 무렵의 일입니다. 연합군의 우수한 군사력을 감당하기엔 너무도 부족한 일본으로서는 피없는 식민지 한국민의 수탈에 갖은 악랄한 수단을 다 썼습니다. 젊은 사람은 징병으로, 나이 많은 사람은 징용 보국대로, 물건은 징발되었고 식량은 공출로 다 빼앗아 갔습니다.
거기다가 흉년은 들고 일손은 모자라고 하니 이중 삼중의 고생이었습니다. 그 당시 양식을 넉넉히 가진 사람도 없었지만 가령 있다고 하더라도이 판국에 누가 마음 놓고 쌀밥을 지어 먹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안 될 말입니다. 만약 그 당시에 쌀밥을 제 혼자 지어 먹은 사람이 있었다면 그야말로 반역자가 아니면 극단적인 일파로서 욕 먹어 마땅할 것입니다.
그 뿐이겠습니까. 6ㆍ25 때의 일이지요. 의기충천의 기세로 공산군이 남쪽으로 남쪽으로 밀고 왔습니다. 대구에 소개령이 내렸다고 소문이 날때 이미 공산군은 경남 창녕 낙동강 저편까지 쳐들어 왔습니다. 남쪽으로 남쪽으로의 피난민 대열이 아귀지옥 문자 그대로입니다. 황소 한 마리에 쌀 서 말 금비녀 하나에 쌀 한 말 그런 세월이 아닙니까?
금비녀가 무슨 소용 있습니까. 셋이만 모였어도 송아지를 까 먹는다는 이야기가 동굴에 들어가서 숨고 밤이면 나와서 하늘을 보고 원망하는 이 나라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때는 여름이라 보리가 제철입니다만 아무도 그것마저 넉넉하게 가지지는 못했습니다. 방이건 헛간이건 한 칸이 한 세대입니다. 처마 밑까지도 한 세대이지요, 그때 그런 상황하에서 누가 부자며 누가 빈자입니까? 누가 밥을 먹고 누가 죽을 먹습니까? 나 혼자서 쌀이 있다고 밥을 지어 먹는 일은 아무 데도 없었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누구가 가르치지도 않았습니다. 오로지 하늘을 두려워하는 착한 백성의 심정뿐입니다. 그러한 심정들이 서로를 위안하며 의지하며 나날을 살아왔던 것입니다.
모두들 혼자서 사는 세상이 아니란 것을 실감했습니다.
연전에 쌀파동이 일어나고 연탄 파동이 일어났습니다. 왜 일어났습니까? 그럴 때마다 나는 듣게 되는 소리가 있습니다.
『우리도 연탄을 좀 들여 놓아야 할 텐데 또 우리도 쌀을 좀 사서 비축해 둡시다』하고 조르는 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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