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창장!
『위의 사람은 불우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인내와 성실로 난관을 극복하여 30여만 원의 저축까지 하면서 학업을 이수하여 그 투철한 근면성과 자립정신이 타인의 모범이 되므로 이를 표창함』
작년 이맘 때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학교장으로부터 표창을 받았습니다. 졸업을 하기까지 20년 간 헐벗고 굶주리고 일에 쫓겨 살아온 기억들-그러나 오직 배우려는 일념, 가난을 몰아내려는 일념만으로 살아 이 같은 결실을 맺은 것입니다.
두 분 형님과 누님은 가난에 쫓겨 국민학교도 졸업 못하고 양장점이나 이발소에서 심부름을 해서 푼푼이 돈을 벌어와 살림에 보탰습니다.
아버지는 가난에서 오는 압박감을 잊으려고 매일 술을 퍼마시고 들어와 그나마 어머니가 동냥하다시피 얻어 온 반찬으로 저녁상을 차린 날이면 동네에 망신시키고 돌아다닌다고 밥상에 발길질을 하기가 일쑤였습니다.
그나마 저는 막내라는 특권으로 형과 누나가 보태 주는 돈으로 학교를 다니긴 했으나 가난하다는 열등감에 성격은 비뚤어지고 공부도 염두에조차 두지 않았습니다.
저의 별명은「욕쟁이」였습니다. 반 친구들이 거지 새끼, 누더기라고 놀려대는 데는 분통이 터져 견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저의 나쁜 버릇은 심지어 여자 담임 선생님에게까지 듣지 못할 욕을 한 적도 있습니다.
하루는 어머니가 저를 조용한 숲 속으로 데려가 타이르셨습니다.『용기야 부탁이데이 욕하는 입으로 글자 하나라도 외우고, 아이들 때리는 기운있으마 그 손으로 글씨 하나라도 더 쓰는기라, 공부로 분풀이 하는기라!』
그 후 저는 굳은 결심을 하였고 이때부터 행동과 생각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어머니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이를 악물고 공부하여 어느새 욕쟁이라는 별명이「공부 벌레」로 변했습니다. 학교 성적이 우수한 것은 물론 주판이 4급까지 되었고 성적이 뒤떨어지는 급우들을 방과 후에 가르쳐주는 입장까지 되었습니다. 장학금도 타고, 아이들 공부 가르쳐 준 대가로 약간의 보수를 받아가면서 저는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까지 진학했습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신문 배달을 시작했습니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점촌역까지 3㎞나 되는 거리를 걸어야 했고 역에서 신문 뭉치를 받아들고 이집저집 배달을 하면 족히 두 시간은 걸렸습니다.
신문 배달은 마치도 헐레벌떡 집에 들어와 아침밥을 먹고 학교에 달려가서 공부해야 하는 노고에도 불구하고 그 보수는 1천3백 원에 불과했지만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그나마 벌어야 했습니다.
교복은 사촌형 것을 물려받아 몇 년째 기워 입고 훈련복은 홑태바지에다가 체육복은 아예 가지고 있지 않아 체육시간마다 옆 교실에서 이 친구 저 친구에게 구걸해 입고 가방은 밑창이 다 떨어져 헝겊으로 깁고 끈이 떨어져 철사로 칭칭 감은 것을 들고 다녀도 저는 엄연한 학생이었습니다.
신문 배달 일년 만에 저는 수입을 올릴 욕심으로 신문 중계 일을 시작했습니다. 새벽 2시에 일어나 신문을 싣고 오는 임시열차를 기다리기 위해 산길을 걸어 역에 도착했고 인계 받은 신문 뭉치를 실어 나르기 위해 만원 버스 차장과 실랑이를 벌여야 했으며 시간이 바빠 이젠 아침밥까지 굶어야 했습니다.
궁여지책으로 저는 지게에 책가방과 남비 곤로를 지고 다니기로 결심했습니다. 역에 도착해서 열차가 닿을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곤로에다 밥을 지어 먹는 것이지요. 때로는 열차가 늦어지거나 일러지면 밥을 채 먹지도 못한 적이 많았습니다.
하루는 이런 모습을 출장가려고 역에서 기차를 타던 교무 주임이 보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제 소문이 학교 안에 파다하게 퍼지게 되자 담임선생님이 관심을 쏟게 되었고 여러 가지로 많은 도움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우선 진학에 관계되는 잡지를 본사와 직거래하여 입학 시험을 치루는 학생들에게 직접 판매할 수 있도록 알선해 주셨고 제가 중계하는 신문을 학생들에게도 읽도록 적극적으로 권해 주셨습니다.
그러기를 2년여 … 저의 각고의 노력은 서서히 결실을 맺기 시작했습니다. 한 달에 1만여 원씩 모은 돈으로 새로운 일에 착수한 것입니다. 한우(韓牛)를 몇 마리 사서 종주할아버지 땅을 빌어 사육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동안 군수, 도 저축추진위원회로부터 표창도 받았습니다.
졸업식 날 교장으로부터 받은 표창장과 그동안 모은 저금 통장을 부모님 앞에 내놓았습니다. 그동안 빚으로 차압을 당하고 끼니가 간 데 없는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모른 척해 왔습니다. 그동안 통장을 내 놓을까 말까 하고 몇 번씩 망설였지만 오직 목돈을 모아 앞날을 위한 살림에 보태 쓰려고 참아왔던 것입니다.
졸업 후 우리는 3십만 원으로 축사를 짓고 소를 사들였습니다. 시멘 블럭을 가족이 돌아가며 손수 찍어내었고 매일 술만 마시던 아버지도 다시 마음을 바로잡고 열심히 집안일을 도우셨습니다.
그리하여 1년이 지나는 동안 번성하여 한우는 다섯 마리 돼지 두 마리에 앙고라 토끼도 여러 마리 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통신대학에 등록하여 농학과에 재학 중입니다. 가난을 몰아내고 싶었습니다. 다시는 우리 집안에 가난이나 슬픔이 발을 못 딛도록 하렵니다. 불굴의 의지 성실성 자립성-이것들이야말로 우리 가정에 튼튼한 살림과 희망을 안겨준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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